저는 서울 촌놈입니다. 태어난 곳은 동대문구의 경희 의료원이죠. 수원에서 일할 때 몇 년 수원에 살아본 적이 있지만 그 외의 지역에서 산적은 없습니다. 거기에 외국에서 어릴 때 6년, 학생 때 5년을 살아서 그런지 고향이라는 느낌을 가진 지역이 없습니다.
어쩌면 지금 살고 있는 동대문구가 가장 오랫동안 사는 지역이다 보니 여기가 내 고향인가? 하지만 15년을 한 지역에 살았다고 해서 고향이 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익숙한 내 동네쯤은 될 수 있어도 어렸을 시절의 추억이 얽힌 지역은 아니니까 말이죠.
여행을 자주 하고 돌아다니며 사는 삶을 동경했던 적이 있습니다. 노마드 인생.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고. 새로운 장소를 매번 방문하는 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오늘 읽은 어떤 사람은 미국인인데 참 많이도 돌아다녔더군요. 우선 대학교부터 4군데를 다녔다고 하니 참 대단합니다.
그래서 고향이 있는 사람을 부러워했습니다. 명절에 찾아갈 시골이 있는 사람들 말이죠. 다행히도 그런 사람을 만나 결혼해서 반쯤은 시골에 찾아갈 명분(?)이 생겼답니다. 이제 처가가 있는 강원도는 반쯤은 저의 고향입니다.
결혼을 하고 자녀가 생기니 이제 노마드의 꿈은 접어야 했습니다. 어쩌면 아이들이 모두 독립하고 나면 다시 꿈을 꿀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동안은 그냥 언젠가는…이라는 단서를 달아 둔 채로 미뤄둔 작은 소망이 될 겁니다.
인생에서 커다란 절벽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그럴 때 고향을 다시 찾으려는 심정이 올라올 것 같습니다. 만약 고향에서 그런 절벽을 마주했다면 어쩌면 고향을 떠나겠다는 결정을 할 수도 있겠군요. 결국 어떤 큰 충격을 받으면 사는 곳을 옮겨 새 출발을 해보는 것이 고통을 완화하고 새로운 결심을 하게끔 도와주는 방법 중에 하나인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은 워낙 많은 도시들이 있어서 어디에 가도 일자리를 찾을 수 있으니 좀 유리한 것 같습니다. 한국은 아무래도 수도권에 일자리가 가장 많고 대중교통이 편리해서 다른 도시로 이사 가는 것이 조금 꺼려지는 면이 있죠.
저희 아버지는 시골에서 살고 싶다고 이야기하면 늙으면 병원 근처에 살아야 한다며 한사코 말리시곤 합니다. 80이 되셨는데 친구들이 이미 시골에 60대에 갔다가 70대에 모두 도시로 나왔다고 하시네요. 정말 현실적이죠? 그런 면에서 경희 의료원이 걸어갈 수 있는 지금 집의 위치가 좋긴 하겠죠.
생각해 보니 태어나길 이 동네에서 태어났는데 50이 되어서 여기 살고 있으니 동대문구가 제 고향이 맞는 것 같네요. 예전의 모습은 기억이 나지 않아도, 유년 시절의 집은 철거된 지 오래여도, 나가 놀던 뒷산은 밀어버려 없어졌어도. 저는 동대문구 출신입니다.
어디가 나의 마지막 고향이 될까?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내가 늘 가보고 싶은 강원도 양양? 전남 여수?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태국 치앙마이? 아니면 그냥 계속 서울에서 늙어갈 건가? 그러긴 싫은데 말이죠.
오늘의 질문: 여러분의 마지막 고향은 어디이고 싶으신가요?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도 그러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