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0년을 뒤돌아볼 때 가장 후회하는 것은 술을 좋아했던 것입니다. 벤처기업 월급이 뭐 어디 대단하겠습니까만은, 청년 시절에 그렇게나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지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그렇게 빚은 없었지만 술자리에서 시간과 돈을 많이 낭비했던 거 같습니다.
40대가 되어서야 술자리를 멀리하게 되었고, 직원들과 한잔을 해도 정말 1차만 하고 들어오는 습관을 정착시킬 수가 있었죠. 40대가 넘어서도 술에 잡아먹히는 동료들을 보면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들을 저 역시 20대, 30대에 보였다는 걸 생각하면 아찔하기도 합니다.
술자리의 즐거움보다 더 즐거운 것이 있어야 술자리를 삼갈 수 있습니다. 집에서 기다리는 어여쁜 막내딸이 더 보고 싶어야 술을 줄일 수 있습니다. 좋은 사람들과의 대화는 술이 없어도 커피만으로 충분히 이뤄질 수 있습니다. 대화는 많을수록 관계 형성에 도움이 되죠.
요 며칠 막내가 장염이 걸려서 방학중 돌봄 교실에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돌보느라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절대 시간이 확 줄어들더군요. 막내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매일, 충분히 받아야 마땅한 존재이지만, 제가 평소에 매일 읽었던 그리고 기록하던 활동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아~ 아이들을 돌보는 선생님들과 여러 보조 교사님들의 노고가 단박에 이해가 갑니다. 가만히 있지를 않고 이방 저 방 돌아다니며 하루종일 물건들을 꺼내고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저는 그 뒤를 따라다니며 정리하고 수습하고 있지요. 확실히 아이를 돌보는 일은 풀타임 잡입니다.
뭐 며칠 글을 쓰지 못한들 어쩔 수 있겠습니까? 젊은 시절에는 뭐든지 예상 안에 들어오는 것을 강하게 원했지만, 이제는 압니다. 세상 모든 것이 내 맘대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칼같이 시간을 지킬 수 없는 경우도 생기는 법이라는 것을. 그 모든 것보다 중요한 것은 가족 또는 소중한 사람들의 마음이 다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그러려면 신경 쓸게 많아요. 그걸 쉽게 하는 방법은 소중한 사람이라고 설정한 사람의 수를 제한하는 거죠. 나의 시간과 체력은 유한한데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을 배려하고 챙겨주며 살 수는 없잖아요?
사람마다 허용 한계는 다르겠지만 저는 대여섯 사람 넘어가는 것은 어렵습니다. 이 설정 범위가 넓은 사람이 사회생활 잘한다고 일컫는 사람이겠죠? 모든 사람에게 관심과 애정을 표현하는 인싸들이 그럴까요? 저는 자발적 아싸에 가까운 사람이라 한계를 좀 좁게 잡았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편합니다.
사람은 성장합니다. 20대의 나와 50대의 나는 사실상 완전히 다른 사람입니다. 어쩌면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고 하면 좀 무서울지도? 수많은 인풋을 수용하고 소화하고 이해하며 사고하고 행동하고 말하는 방법까지도 모두 달라졌습니다.
안주하지 않지만 젊은 시절처럼 막무가내로 도전하지도 않습니다. 내가 수용할 수 있는 도전을 매일 시도합니다. 작은 도전이라도 좋습니다. 그것이 어디로 나를 이끌지 미리 알 수는 없거든요. 호기심을 앞에 내세웁니다. 호기심이 관심이 되고, 새로운 지적 흥미로 이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오늘의 질문: 지금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소 싶지는 않으신가요?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도 그러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