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인들과 탁구 치기 시작했다.
한국은 벌써 추워졌다는데도 여기선 어제 까지도 에어컨을 틀었다. 그러던 날씨가 오늘 아침부터 바람이 제법 차다.
아열대 기온대 답게 여기도 겨울에 비가 많이 온다. 이곳은 겨울이 그나마 살기가 좋은 곳이다.
좀 전에 집 앞 공원에 다녀왔다.
얼마 전부터 공원 안에 탁구대 두 개가 설치된 이후 아이들 학교 보내고 거의 매일 탁구를 쳤다.
탁구 친 후 모자를 탁구 대 아래에 두고 와서 다시 갔다 왔다.
탁구 치다가 사람들이 오면 자리를 양보하고 옆에서 배드민턴 치는 사람들과도 어울리고 그도 자리가 없으면 여기저기서 춤을 추는 사람들 속에 어울려 운동해도 된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에는 운동만 한 것이 없다.
한국에서 꾸준히 탁구를 쳐 왔던 덕으로 이곳 현지인들과 쉽게 친할 수 있었다. 한국에선 실내 탁구장에서 쳤었는데 이곳은 노천에서 치니 바람, 햇볕 속에서 쳐야 하고 공을 주우러 풀밭도 헤집어야 한다.
나이 들어 들꽃이 되어가는 기분도 좋다.
아침마다 벌써 친해진 사람들과 사소한 실수에도 크게 웃으며 똑딱똑딱 공치는 이 시간이 행복하다.
덕분에 나의 중국어도 좀 늘었다.
운동하면서 말을 하니 단순한 말을 반복해서 하게 되어 언어를 배우는데도 함께 운동하는 것 만한 게 없는 듯하다.
중국에서 살긴 해도 현지인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거의 없어 책으로만 중국어를 외워 대니 성조가 영 입에 붙지 않았다. 매일 몇 시간씩 그들과 함께 운동하면서 한 마디씩 묻기도 하고 그들의 말을 듣다 보니 요즘은 책 읽기가 부드러워졌다. 중국어가 많이 늘었다고 지금 다니고 있는 중국어 학원 강사도 인정해 주었다.
6,7년 전 뉴질랜드에 잠시 있을 때는 커뮤니티 센터에 가서 현지인들과 배드민턴을 쳤다. 그러다 그들의 집에도 초대받아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적도 있다.
그때는 시설 사용료를 내고 쳤고 지금은 공짜다.
노후를 위해 연금을 준비하듯이, 다른 사람과 쉽게 어울릴 수 있는 운동도 미리 준비 해 두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탁구만큼 부담 없이 어울릴 수 있는 운동도 없는 것 같다.
어울리다 보면 더 친해지는 사람이 생긴다.
나는 어딜 가든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는 편이다.
내 예상 보다 사람들이 내게 너무 친절하게 잘 챙겨 준다.
인복이 많은 편이다.
언젠가 법륜 스님께서 하셨던 말씀이다.
어떤 아줌마가 스님께
- 자신이 남편에게 그렇게 잘하는데도 남편은 자기를 무시하기만 한다고.
어떻게 해야 해야 할까요?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 뭔가를 하려고 애쓰지 말라고.
유재석이 배우 주지훈에게 물었다.
선배 배우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는다고 하는 데 그 비결이 뭐냐고.
주지훈이 말했다.
- 글쎄요. 제가 원래 제 의견을 먼저 제시하는 편이 아녜요. 그리고 예의를 잘 지키려고 하는 편이에요.
모든 인간관계에도 해당되는 태도이지만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지내는 데에도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고, 있는 그대로 받아 주고 나를 내세우지 않는다면 누가 싫어하랴.
탁구 치는 사람이 많아지면 자리를 내주고 새로 사귄 친구와 공원 산책을 한다.
아 팡 :위쳇 이름은 笑尽过往
(웃으며 지나가다)
50대 중반으로 참 예쁜 여인아다.
아팡은 고구마, 계란, 옥수수, 사과 간식도 챙겨 와서 나눠준다.
이것들을 중국어로 어떻게 말하는지도 가르쳐준다.
내가 서툰 중국어로 말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장해 보이는 모양이다.
이곳 사람들은 주로 홍콩과 같은 광동어를 쓴다. 광저우 사람 중에도 보통화를 못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래선지 내가 보통화 배우는 걸 대단하게 봐주었다.
내가 -초한지. 삼국지 - 책 이야기를 하니 모른다고 했다. 내가 다니는 중국어 선생도 이름만 알지 책은 읽어보지 않았다고 했다.
같은 스쿨버스를 타는 중국인 엄마들도 읽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책 몇 개를 대라고 하면 나는 망설임 없이
-초한지, 삼국지, 영웅문(김용 소설)-을 꼽는데.
그래서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이 책에서 나온 땅을 다 밟아보는 게 내 일생의 소원인데.
한 번은 실내 탁구장이 있으니 가보자 해서 따라갔다. 공원 북문으로 나가 고급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30층 아파트 4층이 운동 시설 층이었다. 창문도 있었고 무엇보다 좋은 건 나무 바닥이었다. 일행 중 안내했던 사람에게 네 집이냐고 물어보니 능청스럽게 친구가 이 아파트에 산다고 했다.
한 참 치고 있으니 남자 둘이 나왔다. 나랑 좀 치더니 땀이 나는지 윗도리를 벗어 버린다. 그러고도 태연하게 공을 쳤다.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겠다. 내게 잘 친다면서 자주 치자고 했다.
살면서 웃통 벗은 중국 남자와 탁구를 다 쳐 보다니.
돌아올 때는 집까지 거리가 멀어서 1회 1.5원(한국돈 300원 정도)하는 자전거를 타고 왔다.
집에 오는 내내 터지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위도 23.5도.
북 회귀선에 위치한 이곳 광저우의 뜨거운 햇살과 바람에 벌써 적응해 버린 내 몸이 대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