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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금들판 Feb 01. 2024

09. 조고만 섬, 소무의도

길을 걷는 다는 것,  꼭 앞으로 가는 것만은 아니다.  


가볍게, 소무의도?


정말로 오랫만에 막걸어 막걸리 친구들과  무의도 걷기에 따라 나섰다.  지난 2년간 진주목 관노로 열심히 일하고, 얼마전 면천하여 고향에 돌아올 즈음이었다.  오늘은 무의도에서 떨어진 섬 소무의도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소무의도는 차로 영종도에서 무의도로 들어가 인도교로 건너갈 수 있는 아주 작은 섬이다.




無, 舞 그리고 물



왜 무의도(舞衣島)인가?  무희가 춤을 추는 형상이기 때문이라 하는데 딱히 그런것 같지도 않으므로, 말들이 많았다. 1871년(고종 8)에 편찬한 『경기도도지(京畿道道誌』)를 보믄,  무의도를 춤추는 무(舞)라 쓰고 있다. 이때를 기준으로,  일본이 식민 통치를 위해  1911년에 작성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등에서 무의도(舞衣島) 라 쓰고 있었다. 그래서  춤추는 섬이 되었다. 무의도엔 20년이 족히 넘은 춤축제도 있다.

 

경기지에 나오는1842년  영종진는 舞衣島라 쓰여있다.   출처 - 인천관광공사


그러나,  세종대왕 계실적에 이곳은, 없을 무를 쓰는 무의도(無衣島)였다. 세종(1431년) 『대동지지(大東地志)무의도(無衣島)의 쓰임은 '목장'이라 쓰여있다. 세종실록에 그 연유가 자세히 나오는데,  병판이 아뢰길  “소는 국가에 있어 그 용도가 심히 큰 것이온데...."  키우기 힘드니 빈 섬들을 목장으로 쓰자하였고, 이를 허락하여 목장으로 쓴 섬 중 하나가  무의도(無衣島) 였다. 정리하자면, 무無였는데 어쩌다가 무舞가 되었다는 것인데, 없는것 보단 댄스가 좋아보이긴 한다, 



결론은 다른 곳에 있었다.  일본이 꼼꼼하게 조선을 해처먹을 결심으로 만든 『조선지지자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 지명마다 한글이름까지 적어 놓았다.  무의도는 '큰무리' , 소무의도는 '떼무리'로 말이다. 우리말을 기록해둔것은 결과적으로 고마운 일이다. 다수의 의견으로 무리지어 있는 섬들 중 가장 큰 섬을 '큰무리' 또는 '무리도'이라 했을 것이고  애매한 거리에 있는 떼어 놓은것 같은 섬을 '떼무리' 불렀으리라는 것이다.  다른 의견도 있다.  ‘무리’는 우리말로 ‘물’을 의미하며, 밀물과 썰물이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 시기를 큰 물때, 작은 물때라하여, 그 이름에서 섬이름이 생긴것이라는 게다. (출처- 강덕우, 기호일보)  그렇다, 우리말 이름을 한자로 쓰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리라.  일단 한자의 뜻은 의미 없다는 것을 알았다.

 떼무리란 한글이 보인다. <자료 출처 조선지지재료(朝鮮地誌資料) 중 경기문화재단 발행 경기도지지>



다시 소무의도로 돌아오자면,  무의도에서 애매하게 떼어 놓아있는 섬이긴 해도, 예전엔 그 섬에 가려면 배가 유일했다. 가까운지라 수영도 가능했을 것 같....  그러다  2011년 '소무의도 인도교'가 들어서고,  2020년 섬을 일주하는 '무의바다누리길'이 조성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고 한다. 우리도 그 중 한 무리였다.  

 

무의도인도교는 걸어서만 갈 수 있다.  소무의도는 나름 차없는 섬이다.


추천코스는 룰입니다만



소무의도엔 두 번 왔다. 처음엔 걷기 모임을 위한 임원진의 답사 같은 거였다. 임원에겐  착한 코스는 어울리지 않는다. '추천 코스' 라니, 새로 뜬 인디 밴드 이름인가? 아무튼, 우린 그딴 건 쳐다보지도 않고 바로 소무의도의 에베레스트급 봉우리라 할 수 있는 안산(74M)를 올라갔다.  결국 나는 기어서 올라갔다.

그래서, 두 번째 답사땐 정석대로, '떼무리선착장' 에서 시작하여, 풍어제를 지내던 부처깨미길을 넘었다. 이곳서  봄, 진사일(뱀)에 풍어제를 지냈다고 한다. 뱀사당이라 돼지고기 대신 소의 생피와 고기를 올렸단다. 임경업 장군당도 있었다. 멀리 연평도까지 조기를 잡으러 가는 큰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볼 수 없다.


하정숙. (2007). 경기 서해안 무의도(舞衣島)민속의 해체. 중앙민속학,(12), 71-106


언덕을 살살 넘으면, 금새 몽여해변에 도착한다. 바다 건너,  영화인가 싶은듯 아득한 도시 풍경이 보인다. 극작가 함세덕은 소무의도를 배경으로  희곡 <무의도 기행(1941)>을 썼다. '용유보통핵교 첫찌루 졸업한' 재능이 많은 청년, 청명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기대로 인해 배를 탔고, 결국 파선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는 쓸쓸한 이야기다. 청명이 몽여해변에서 매일 바라보았을 풍경은 - 오늘날 우리가 보는 풍경과 다를테지만,  항공사의 국적이 선명하게 보이는 비행기들, 송도국제도시의 스카이라인은 - 자신이 있는 곳만 시간이 가지 않은, 갇힌 듯한 답답함이었을 것이다. (함세덕은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린 작가다.)

 

건너편 송도국제도시가 보이는 몽여해번


쓸쓸한 희곡과 달리 몽유해변은 아늑하고 빛도 좋아 다정한 분위기다. 배고픈 듯 흰 고양이가 아는 사람 만난 듯 다가왔다.  아... 진심 미안하다.  가방에는 커피가 든 텀블러 뿐이었다. 저 깍아지른 안산 위 정자에  도착하면 마시리라. 뜨끈한 스벅 아메리카노를! 그때를 위헤서 너에게 이 커피를 양보할 수 없.....




정자는 국률이다.


몽여해변을 넘어가면 곧 얼마나 고급진 노을이기에 박대통령과 미군이 세번이나 바베큐 파티를 즐겼다는 명사의 해변이 나온다. 그러나 우리에겐  명사해변을 스칠뿐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곧 안산 정자를 정복하기 위해 사투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UFO가 우리를 따라  합류했다. 우주가 우리를 도운다는 신호가 아닌가? 외계의 영험한 기운인듯,  어찌된 영문인지 곧 정상에 도착해 있었다. 생각보다 빠르게 올라왔다.


안산 하도정엔 이미  어머님, 아버님들이 일몰 관람 포지션을 선점하고, 여기는 커피 파는 사람도 없다며 투덜거리고 계셨다. 옛 선비님들은 막힘없는 전망을 위해 높은 곳에 정자를 짓곤 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전국에 정자가 총 553동 이라 한다. 반면 『신증문헌비고』, 『대동지지』, 『동국여지비고』에선  885동이라며 (출처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서로 경쟁을 했는데.. 아..노비의 피땀눈물이 정자로구나.. 2019년 기준으로 정부 조사에 따르면 전국에 '걷기 여행길'이 약 560여 개, 1,849코스가 조성되어 있다. 국률에 따르면 거기에도 틀림없이 정자가 하나씩은 있을것이다. 한국인은 정자 수집이 취미...


정자사진, 출처 - 한국뉴스 소무의도 안산 정상(74m)의 있는 전망대 '하도정' (사진=김호선 기자


우주의 기운을 받아, 생각보다 빠르게 도착한 나는 정자옆에 널부러져 있었다. 빨리 올라갔다고 힘들지 않다는 그런 이야기는 아니다.  맴버 중 한 분이 뜨뜻한 상그리아를 따라 주셨다. 상그리아가 노래를 부르며  목구멍을 타고 혈관으로 빨려들어갔다. 아...이거면 되는거였다. 고양이에게 안주고 아꼈던 아메리카노 따위, 하도정에서 마신 상그리아 한 잔 보다 아름다울까? 이제 바랄것이 없었으므로, 빨리 집에 가고 싶었으나  마침 23년 마지막 날이기에 지는 해야 봐야 했기에.... 새해는 잘 살아야 겠다.


내 목구멍이 상그릴라의 노래소리를 들었다.   마지막 일몰보다 인상에 남을 것 같다.  



소무의도에선 잠시 머물자


걷기 길 여행은,  길을 따라 앞으로 가다보면,  목적지가 결정되고, 목표가 생긴다.

그러다보면,  옆을 잊게 된다.

길 마다 간직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지나친다면, 걷기 여행이라 할 수 있을까?

나는 이야기 가득한 소무의도를 지나쳐 그만 완주에 목표를 둔것이 후회된다.  

막걸리도 마시긴 했는데.... 뭐랄까,  즐기지 못했다.

다음엔  피크닉 바구니에 막걸리 싸들고 가야겠다.



순희 막걸리(보해)는 살균탁주 입니다.  100% 우리쌀이라고 써 있네요.  유통기한이 1년 음?
탁하지 않고 달지않고 깔끔한 맛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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