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 이야기를 상상하며 걸어보는 길
큰 산과 강이 있는 진주
이첨(李詹)은 진주를 "큰 산과 큰 강의 성하고 맑은 정기로 된" 곳으로 이런 곳에서는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인물이 난나고 하였다. 여기서 큰 산과 강을 하륜의《봉명루기》의 표현을 빌려 보자면 "북쪽에서 멈춰 선 비봉산(飛鳳山)이며, 남쪽에서 절하는 망진산(望晉山)... 그 사이 흐르는 긴 강"을 의미한다. (*조선시대 인문지리서『신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여러 인물의 진주 평을 정리한 것이다.)
'큰 산'이라 평가 받는 비봉산은 의외로 아담한 산이다. 크다면 차가 다닐 만큼 넓게 조성된 에나 1길이지 싶은데, 진주시는 훼손된 산림을 복구하려 노력중이다. 대봉루에서 보는 '큰 강' 은 매우 아름다웠다. 함께 걸은 친구가 대봉루에서 남강 전경을 파리 센 강 같다며 감탄했다. 본적은 없지만 멋진 강이라 하니 좋다는 의미라 받아들이기로 한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가 보다.
한양서 내려온 누군가
설화를 읽다 보면 종종 도입 부분에 도사님이 등장하곤 한다. 그는 마을주민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다. 에나길에도 강남도사가 등장한다. 그는 대봉산(비봉산) 위 봉황 바위 때문에 진주에 인재가 많다는 말을 남기고 역시 홀연히 사라졌다고 한다. 풍수형국에 따르면 봉황형 터에서는 대대로 인재가 많이 태어난다고 한다. 진주 사람들은 비봉산을 봉황의 머리로 보고 뻗어 나온 산 줄기를 봉황의 날개라 여겼다. 그 때문인지 고려 시대에는 진주의 한 문중이 정권을 장악하다시피 했다거나, 조선 초엔 삼정승과 육조판서의 반이 진주 사람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인재가 남치던 곳이었단다.
진주의 봉황설화의 주요인물은 '한양에서 내려온 누군가'이다. 그는 진주의 권세를 질투한 조정관료가 보냈다고도하고, 심지어 세력에 위협을 느낀 임금이 보냈다고도 한다. 그 누군가는 강남 도사가 언급한 봉황 바위를 깨부순다거나 봉황이 쉰다는 연못의 이름을 물이 펄펄 끓는 가마솥(가마못)이라 바꾸기도 하였다. 그는 '한양서 온 지관'으로도 등장한다. 지관은 봉황의 날개쯤 해당하는 말티고개*에 길을 내면 조정 인재가 배나 더 나온다 속여 봉황의 기운을 끊어 인재 배출을 방해했다고 한다. 때문인가, 조선 중기 사찬 지리지 『진양지』 에 “마현(馬峴 말티)에 길을 낸 뒤 인재가 점점 그전과 같지 않다.”는 기록이 있다.
이야기가 미련없이 완결되려면 '한양서 온 누군가'를 막아낸 영웅이라던가, 지혜로 이겨낸 여인이 등장해야 한다. 그러나 진주 봉황설화는 봉황이 날아가버린 후 돌아왔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그래서일까 진주는 끊임없이 봉황이 돌아올 방법을 찾았다. 이러한 노력은 지금도 진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날아간 봉황 유성이 되어 돌아오다
에나길 1코스의 날아가버린 봉황(飛鳳)의 이야기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봉황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염원은 2014년 3월 '한 지관에 속아' 끊었다는 봉황의 날개로 이어졌다. 말티고개를 잇는 봉황교를 놓은 것이다. 신기하게도 다리가 완성된 다음 날 진주 하늘에서 운석* 4개가 차례로 떨어졌다. (*진주 운석 2014년 3월 9일 밤 유성이 떨어지는 모습이 관찰되고, 다음날부터 진주시에서 차례로 총 4개의 운석이 발견됨) 이는 진주 사람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한 우주 이벤트였다. 봉황의 날개를 이으니 '날아가 버린 봉황'이 돌아온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봉산 정상에는 소나무 한 그루만 담백하게 서 있었다. 동네 산 정상마다 있다는 조선식 정자도 없고 전설 속 봉황의 머리를 닮은 바위도 없다. (봉황 동상이 있을까봐 걱정도 했다.) 덕분에 봉황 이야기를 상상하기 좋다. 산 아래 마을에는 봉황이 돌아오길 기원하며 만든 봉황이 알을 낳을 자리가 있다. '봉알자리'라 한다. 아쉽게도 사유지라 보긴 힘들다. 대신 진주시 <익룡전시관>에 진주운석이 잠시 전시되어 관람이 가능하다고 한다.
술은 진주, 안주는 실비
우리는 봉황교를 다 걷지 않고 말티고개를 걸어 시내로 내려왔다. 날아가버린 봉황에 대한 아쉬움이 길에 남은 것인지... 말티고갯길은 쓸쓸한 기운이 느껴졌다.
진주에서 술을 마시려면 실비집을 추천한다. (여기선 일본식으로 다찌집 이라고도 한다.) 우리는 숙소 근처 금강산실비집을 갔다. 천년 행정 도시답게 실비집 벽지에 JY♥KH 같은 낙서 대신, 紅粉三行唱古詞 와 같은 (나는 그림이라 생각한다.) 같은 한시들이 그득하다. 진주는 한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실비집은 일인당 안주값 25,000원을 받고 술은 병당 5,000원이다. 가게마다 금액이 다른 것도 같다. 술은 알아서 꺼내먹으라고 각종 술을 얼음통에 가득 담아 준다. 안주는 해산물을 중심으로 떨어질만하면 새로운 요리가 나왔다. 여러 번 먹어본 결과 나름 안주 맛이 훌륭했다. 해산물 날것, 찐 것, 조린 것, 구운 것 순으로 나오더니 시원한 국물로 마무리된다. 국물까지 나오면 배불러서 술도 잘 안 들어간다. 잘 조절해서 드시라.
대부분의 식당에서는 '진주 새미골 생막걸리'를 판다. 없을 때가 종종 있었다. 부탁하면 사다주신다. 맛은 시지도 쓰지도 않고 순한다. 그래서 부드럽게 넘어간다. 진주의 술의 특색을 느끼려면 '장생도라지 진주'가 괜찮을 것 같다. 얼음을 부탁해 식전주 느낌으로 대화와 함께 마시니 부드럽게 넘어가는 맛이 좋았다. 요즘 얼음을 넣어 마시는 약주가 맛있다고 느낀다. 큰일이다.
에필로그
나는 일 때문에 지난 겨울 경남으로 내려온 후 잠시 걷기를 쉬고 있었다. 고맙게도 연휴에 막막프로젝트의 멤버인 재윤과 걷기 모임의 친구들이 여행 삼아 놀러 와 주었다. 이들은 걷기러들이라 에나길은 성에 차지 않을 것이다. 산책삼아 에나길을 걸은 후 다음날 진양호 까꼬실길을 걸었다. 꽤 재미있는 길이어서 시간이 된다면 소개하고 싶다. 진주는 고급진 풍류의 도시였기에 지금도 나름의 낭만적인 주류문화가 있다. 실비가 그랬다.
진주에나길 정보(진주시청) :
https://www.jinju.go.kr/02231/02791/02243.web
가볍게 걷기좋은 에나길 코스
아래 코스 정도면 4시간 정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