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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핏 Mar 12. 2020

상상했으나, 막을 수 없었던 미래

팬더믹이 선언된 코로나-19와 영화 컨테이젼

영화 <컨테이젼>(2011) 스티븐 소더버그 연출.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일상을 위협하고 있는 가운데 방구석에서 영화 <컨테이젼>을 봤다. 이탈리아의 확진자가 1만 명을 돌파했고, 이제야 WHO는 팬데믹 [pandemic](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말로, 세계 보건기구(WHO)의 전염병 경보단계 중 최고 위험 등급에 해당된다.)을 선언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서 못 가는 나라가 120개국에 육박하며 마스크는 발품을 팔아야만 살 수 있는 귀한 물건이 되었다.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던 봄철에도 마스크 착용률이 낮았던 한국이, 이제는 누구든 어떻게든 마스크를 구해 쓰는 나라가 되었다. 주말의 명동 거리는 텅 비었고 전 세계적으로 생필품 사재기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모두 코로나 19가 만든 변화다. 이러한 변화를 예측(?)해서 최근에 다시 역주행하고 있는 영화가 있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2011년 작, <컨테이젼>이다.


실제로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 중인 우리들에게 익숙한 표어다!


극 중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들의 모습


작가가 예언가?


 영화 <컨테이젼>은 병의 진원지인 아시아와 대유행을 시작한 미국을 오가며 전염병의 실체를 파헤친다. 영화에 등장한 전염병이 대유행하고 있는 세계의 모습은, 지금 현실에서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영화가 인간의 삶을 반영한다는 것은 상식이지만, <컨테이젼>이 그려낸 끔찍한 허구가 현실이 되는 과정을 보고 있으니 실소가 나온다. 영화 속에서는 관료주의적인 조직의 모습과, 희생적이고 영웅적인 개인들(백신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 시험체가 되는 의료인)의 모습이 등장한다. 각각 현실 속에서 WHO의 늑장대응과 영웅적인 의료진의 모습이 겹쳐진다. 

 이밖에도 박쥐에게서 시작된 바이러스라는 점과 중국에서 최초 발생된 바이러스라는 점이 현실과 일치한다.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경우 아직 백신이 만들어지지 않았고 백신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낮지만 영화 속 바이러스는  백신이 만들어졌음에도 그 수가 모자라 우선순위를 정해 맞게 된다. 코로나 사태의 한가운데서 이 영화를 보니, 그런 요소 하나하나 상당히 공들인 설정이며 현실적이라고 느껴졌다. 


자료를 바탕으로 창작


 사실 이 영화를 쓴 사람들은 예언가가 아니라 조사에  충실한 작가였을 뿐이다. 인류가 지금까지 전염병을 대해온 역사가 위와 같은 허구를 창작하게 만든 것이다. 이렇게 '상상' 가능한 미래는 왜 또 반복되어야 했을까? 영화 이후 다시 똑같은 사태가 반복되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알려주는 바가 있다. 


<컨테이젼 >이 엄청난 걸작은 아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SARS(사스)나 니파 바이러스 등의 사례를 참조하여 충실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창작했음은 충분히 알 수 있다. 영화는 현실적이고 논리적이다. 코로나 19 사태를 겪으면서 분명 각자가 느낀 것들이 있을 테지만 앞으로도 대비를 제대로 안 한다면 우리는 또다시 영화 속 장면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영화가 준 교훈


 메르스와 코로나 19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전염력이다. 보통 바이러스의 치명력(숙주를 죽이는 능력)과 전염력은 반비례한다고 한다. 숙주를 죽일 만큼 강력한 바이러스는 숙주를 바깥에 못 돌아다니게 해서 대인 전염력이 낮고, 비교적 치명력이 낮은 바이러스가 슈퍼 전파자(걸리고도 수월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를 다수 만들어 내어 전염력을 높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 컨테이젼에서 나온 바이러스는 (영화답게도) 치명력과  전염력이 모두 높았다. 숙주를 거의 무조건적으로 며칠 내에 사망에 이르게 하면서도 주변에 있는 이들을 다 감염시켰다. 현실에서 그런 바이러스가 생겨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겠지만, 만약에 현실에서 영화 속에 등장한 것과 유사한 치명적 바이러스가 등장한다면 인류의 반 이상이 죽을지도 모를 일이다. 


 음모론에 가까운 이야기일까? 

 확실히 미지의 바이러스는 인류의 존속을 좌지우지할 만큼의 위력을 갖고 있다. 때문에 여태까지 하던 행동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를 괴롭히는 '코로나 시국'이 위생에 대한 개념 자체를 바뀌는 계기로 작용해야 할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고, 중국은 말할 것도 없다.


 영화 속 바이러스의 시작은 한 다국적 기업의 숲 개발로 인해 숲이 파괴되며 그곳에 살던 박쥐가 삶의 터전을 잃고 인근 농가의 돼지 축사로 날아간 것에서부터다. 결국 인간들의 '자업자득'인 것이다. 어떤 바이러스든 마찬가지다. 인간이 들쑤셔서는 안 될 곳을 들쑤셨고 그 후 불안과 공포의 나날이다. '인간'이 '인간'한 것이다. 이것이 컨테이젼뿐 아니라 수많은 영화들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교훈인데도 인간의 행동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정말이지 지구에 가장 도움 안 되는 존재야 말로 인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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