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나보다 어려진 선생님
선생님이 나보다 어려졌다.
무언가를 가르치는데 나이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열세 살짜리 아이들이랑 띠동갑이던 선생님은 너무 어렸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내 담임 선생님은 겨우 스물다섯이었고 처음으로 담임을 맡은 초보 교사였다. 어느 날 문득 그때 선생님을 생각하니 짠해졌다.
당시 이제 막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들은 빈번하게 사고를 쳐댔다. 일탈에 미친 사춘기 아이들이 선생님 말을 들을 리 없었다. 아이들보다 체구가 작았던 선생님이 매를 들어야 하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아이들은 끝까지 반항했고, 선생님은 울었다. 당시 나는 선생님이 왜 우는지 잘 몰랐다. 다만 나는 그녀가 울던 얼굴을 기억한다. 돌이켜보면 그 얼굴은 분명히 상처 받은 사람의 얼굴이었다.
선생님의 책임 일리 없는 아이들의 일탈을 자기 일처럼 느끼고, 선배들에게 혼나고, 처음 겪는 일들을 감당해내느라 하루가 바쁜 와중에도 선생님은 늘 웃었고 진심으로 아이들을 좋아해 주셨다.
나는 항상 내 발이 걸리는 바람에 멈추던 단체 줄넘기가 무서워 선생님 품에 안겨 울기도 했고,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교우관계에서 스트레스가 많았던 당시의 내게는 그런 일들이 무척 소중했다. 선생님은 내게 글을 쓰라고 진지하게 격려해준 첫 번째 사람이기도 했다.
당시에는 각 반에서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소통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선생님 생각이 나 그때 쓰던 우리 반 카페를 다시 들어가 봤다. 선생님이 쓰신 수많은 글과 사진이 있었다. 아이들을 향한 선생님의 순수한 애정과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낙천적인 기대가 느껴졌다. 선생님은 심지어 휴일에 약속을 잡아서 아이들과 만나기도 했다. 당시의 우리에게 선생님은 늘 친구 같고 좋은 선생님이셨다. 카페에 대한 애착이 컸던 나는 중학생이 되고 나서도 몇 년 간 가끔 카페를 찾았다. 점차 시간이 지나자 카페에 발길을 끊게 됐다.
우리가 졸업하고 2년 뒤 스물일곱쯤 된 선생님은 결혼을 했고, 중학생이 된 제자를 착하게 맞아주셨다. 연차가 쌓이자 훨씬 여유로워진 모습이었다. 그게 내가 기억하는 선생님의 마지막 얼굴이다. 그 후로는 찾아뵌 적이 없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선생님보다 몇 살 나이가 많다. 그런데 전혀 어른이 된 거 같지 않다. 대체 선생님은 어떻게 그 시간을 견디셨을까. 그 당시의 선생님보다 몇 살 더 나이를 먹고 보니 그 나이가 얼마나 적은 나이였는지 새삼 깨닫는다. 선생님이 6학년 담임으로서 느꼈을 부담과 스트레스를 가늠하기도 어렵다.
이제는 너무 오래 지나 어떤 기억도 정확하지 않기에 더 그렇지만, 그 시기를 떠올리면 상당히 감상적인 마음이 든다. 그리고 그 힘겨움을 너무 늦게 이해하게 되어 죄송하다. 그 시간을 어떻게든 견뎌준 그 당시의 선생님을 만약 지금의 내가 만날 수 있다면 적어도 그녀가 울고 있을 때 어깨를 빌려주고 싶다.
스무 살이 될 무렵 초등학교 6학년 때 반 동창회에 간 적이 있다. 대학에 붙고 심심하던 차에 가서, 초등학교 졸업 후 약 7년 만에 다 커버린 아이들의 얼굴을 봤다. 낯설고, 반가웠다. 선생님의 바람대로 아이들은 정말 잘 자라 주었다. 나까지 뿌듯할 정도였다. 물론, 선생님의 뜻대로 모두가 잘 자라준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삶을 함부로 평가 내리기는 어렵겠지만 당시 선생님을 울렸던 일탈의 길로 쭉 직진한 아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삶을 살고 있건 모두들 입을 모아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좋다고 했다.
이제 6학년이던 13살 시절로부터 16년의 시간이 지났다. 꽤 긴 시간이다. 그 시절 이후로 내게는 작은 변화들이 모여 큰 변화가 많이 생겼다. 뭐든 추억으로 남겨두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면서도 선생님을 한 번쯤 찾아뵙고 싶기도 하다. 당시의 선생님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데 16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고 죄송하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