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부르면 운명적 모험, 디즈니 명작 ‘모아나’
태평양의 평화로운 섬 모투누이에서 태어난 모아나.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에메랄드빛 맑은 바다에 끌렸습니다. 할머니는 재밌는 이야기꾼이어서 아이들에게 여러 신화를 들려줬습니다. 배꼽 잡을 만큼 재밌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도 있었고 때론 서로를 꼭 부여잡고 숨 죽이며 듣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도 있었죠. 그중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이야기 중에 망나니 같은 반인반신 마우이(Maui)가 태초의 신 테피티(Te Fiti)의 심장을 훔친다. 이후, '불에 타는 자'라는 뜻의 테카(Te Kā)가 등장하고, 테카는 주변에 화산돌과 용암을 흩뿌리고 섬과 바다에 검은 오염을 퍼트립니다. 테카의 저주로 많은 섬들이 황폐해졌지만, 모투누이는 아직 안전했고 항해 없이도 마을 공동체는 부족함 없이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난데없이 섬에 검은 재앙이 닥칩니다. 건강하던 코코넛 나무는 갑자기 검은 재가 되고, 바다에서는 물고기가 사라졌습니다. 이에 모아나는 마을에 닥친 생존 위기를 해결하려면 산호초 밖으로 나가 물고기를 잡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격노하며 모아나 의견을 꺾어버립니다.
아버지 투이의 상처
마을 추장이자 모아나 아버지인 투이 역시 젊은 시절 바다가 너무 설레었습니다. 산호초 너머로 더 멀리 모험을 떠났다가 거센 풍랑에 소중한 친구를 잃었습니다. 친구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은 평생 가슴을 짓눌렀고, 그 무게는 모아나가 바다에 대한 호기심을 보일 때마다 더 거칠어졌습니다. 모아나는 아버지의 큰 상처를 알지 못했기에 자꾸 자기를 주저앉히려는 아버지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모아나의 용기와 할머니의 지혜
무작정 모아나의 호기심을 꺾으려 드는 아들과 달리 모아나 할머니 탈라는 모아나를 숨겨진 비밀 동굴로 데려갑니다. 본래 우리 선조들은 멋진 항해사들이었다는 걸 알려주죠. 모아나는 바다로부터 선택받은 존재이며, 테피티의 심장을 되찾아야 저주가 풀리니 모험을 떠나라고 격려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괴팍하고 나르시즘에 잔뜩 취한 마우이를 만나 둘은 함께 여러 모험에 뛰어듭니다.
되찾은 심장, 그리고 용기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러 모아나는 테피티의 심장을 되찾습니다. 분노와 용암을 내뿜는 테카와 정면 대결을 하죠. 왼손 안에서 심장의 찬란한 녹색빛이 빛나자, 테카는 더 크게 포효하며 짐승처럼 모아나를 향해 돌진합니다. 그 순간, 모세의 기적처럼 바다가 열리며 둘 사이에 길이 생겨납니다. 그 길을 모아나는 침착하고도 가볍게 발걸음을 떼며 테카를 향해 노래를 부릅니다.
“수평선 건너 너를 찾았어.
너를 알아.
너는 심장을 빼앗겼지만 결코 너는 변하지 않아.
이건 네가 아냐.
너는 널 알잖아.”
모아나의 노래는 테카의 분노 아니 아픔을 어루만졌고, 테카는 속도를 서서히 늦추고 둘은 이내 서로의 얼굴을 가까이 마주합니다. 모아나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테카의 ‘심장 잃은 슬픔’을 처음 알아봐준 거죠. 모아나는 심장을 테카의 가슴에 되돌려줍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테카의 슬픔과 고통이 사라지자 테카는 아름다운 생명의 여신 테피티로 변화합니다. 이글거리던 테카는 풍요의 신 테피티였던 거죠. 검게 황폐했던 섬은 다시 생명으로 가득 찹니다. 자연은 회복되고 생명이 찾아듭니다.
모아나가 테카에게 더 이상 분노하거나 맞서지 않은 이유 뭘까요? 틱낫한 스님의 이 말처럼 모아나는 테카를 분노의 화신으로 보지 않고, 심장을 잃은 고통의 존재로 바라봅니다. 테카의 분노 이면의 상실과 슬픔을 이해했기에 더 이상 테카를 적으로 대하지 않았고, 자비로움으로 다가갔습니다. 그 순간 분노는 녹아내렸고, 이해는 치유로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그가 의도적으로 우리에게 고통을 주어 우리 삶을 비참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이 화를 불러일으킨다. 어쩌면 그 사람은 원가족이나 환경에서 물려받은 습관 에너지 때문에 그가 그런 행동하는 걸지 모른다. 이때 우린 상대를 다른 눈으로 볼 수 있다. 그 사람 내면의 고통을 볼 수 있고, 그가 그 고통에 잘 대처하지도 못한다는 사실도 감지한다. 그럴 때 자비심이 일어난다. 자비심이 일어나면 화가 변화된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그를 벌하려 들지 않는다. - 틱낫한 스님-”
테카와 테피티의 비밀
영화의 큰 반전은 테카와 테피티가 사실 같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테피티는 창조와 생명의 여신이었으나, 심장이 도난당한 후 분노와 고통으로 인해 파괴의 신인 테카로 변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테카 안에서 테피티 창조적 능력은 잠들었을 뿐, 사라진 게 아니었습니다. 모아나의 도전과 테피티의 축복 덕분에 모투누이 마을과 숲은 되살아나고 평화를 되찾습니다. 아버지 투이 역시 딸을 잃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며, 자신의 마음의 짐을 덜게 됩니다. 모아나는 자신이 대항해 민족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모투누이 사람들은 다시 바다를 항해하는 자유를 되찾습니다.
모아나는 타인의 분노 너머에 감춰진 상처와 슬픔을 알아보았기에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상처받은 존재를 치유하고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디즈니의 창작 신화_창조와 파괴 우주에너지
모아나 속 테피티와 테카는 실제 신화 속 인물이 아니라 디즈니가 창작한 신화적 캐릭터입니다. 물론, 기존 신화를 모티브로 하였죠. 테 카는 불과 화산의 여신 펠레를, 테 피티는 자연과 창조의 여신으로 히이아카(Hiʻiaka)를 떠올립니다. 히이아카는 하와이 신화에서 생명과 치유, 훌라댄스의 여신이자 펠레의 여동생입니다. 디즈니의 멋진 음악과 생동감 넘치는 실사 덕분에 창작 신화마저 재미와 철학적인 메시지까지 잘 갖춰진 명작입니다.
훌라와 모아나, 그리고 테피티의 심장
모아나가 테카의 슬픔을 알아본 것처럼, 훌라를 추는 사람들도 각자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며 본래의 생명력을 되찾아갑니다. 훌라를 추는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어떻게 훌라춤을 시작하게 되었어요?”라고 묻곤 합니다. 암 수술 후 훌라 덕분에 초췌한 얼굴에 생기가 돌고, 항암 수술로 짧아진 머리에 꽃핀을 꽂고, 하늘거리는 춤을 추며 퍽퍽하고 힘없는 근육에 에너지를 불어넣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세상 내 편이었던 엄마를 떠나보내고 방황하던 마음을 다잡기 위해 훌라를 시작한 사람도 있었고, 가족과 자식에게 헌신하다가 70세 넘어 나를 위해 발그레한 치마를 입어보며 인생의 재미를 되찾은 분도 있습니다.
이런저런 사연을 만나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훌라는 테피티의 심장을 가져다주는 모아나와 참 닮았구나.
잃어버린 생명력과 기쁨을 되찾아 주고, 잃어버린 나다움을 되찾게 해주는 힘. 훌라를 추며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다시 빛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역시 모아나의 바다 모험만큼이나 멋지고 감동적입니다.
-훌라춤추고 명상하는 여자-
https://www.instagram.com/hula_garder2igsh=ZDVwMjdubGo0ZGo1
https://blog.naver.com/dawn0208/223788530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