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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떫음 Nov 23. 2022

서울역 가는 길

회현역에서 이어지는 그 다리, 그래 거기 알아?

설마설마했는데 어제에 이어서 또 퇴근이 늦어질 판이었다. 자료가 많을 줄은 알고 있었지만 자료실로 신청한 자료가 자그마치 204개였다. 정리는 월요일에 한다고 쳐도, 어쨌든 다운 받는데만 한참 걸릴 테니 금요일에 해두고 퇴근해야만 했다.

목요일에 녹화를 하고 나면 황pd님께서 금요일 중으로 찾아야 할 자료목록을 넘겨주신다. 그리고 피디님은 갑작스럽게 빙부상을 당해 이번주는 쭉 못 나오게 되셨다. 대신 이pd님께서 나오셨는데, pd님께선 크게 이런 부분들이 필요할 거다, 정도로 짚어주셨고 그에 맞춰 금요일 하루 동안 자료를 찾았다. 하필 이번엔 야구 관련이라 경기만 받아도 1차전에서 1회초부터 9회말까지...이런 식으로 수가 너무 많았던 탓인지 200개는 거뜬히 달성해버렸다.

4시 50분쯤 편집실에서 자료 다운을 걸어두고 대충 분류할 폴더들을 미리 만들면서 기다렸다. 그래도 1시간 걸리겠지, 라고 생각했다. 금요일엔 오후 8시에 연기 수업이 있다. 그때까지 집에 들렀다 가는 게 오늘따라 귀찮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진짜 일이 7시쯤에 끝나서 1시간은 뒤늦게 퇴근을 하고 회사에서 바로 학원으로 향했다. 편집실 컴퓨터를 마무리하고 서둘러 사무실에 짐을 챙기러 돌아왔을 땐 기자님 두 분과 부장님이 자리에 계셨다. 부장님께 퇴근하겠다며 인사를 드리니 왜 이렇게 늦게 가냐고 물으셨다. 그럴 만도 했다. 사실 전날에도 30분은 늦게 갔다. 이틀 다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까지 억울하진 않았다. 내가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는 것뿐이었으니까. 그냥 자료량이 너무 많았다고만 말씀드렸다. 부장님은 고생했다고 한마디 해주셨다. 넵, 하고 후다닥 밖으로 나오니 하늘이 어두컴컴해졌다. 그래도 회사 앞이라 그런지 거리가 시끌벅적했다. 배도 고프고 허약해진 몸을 이끌고 버스를 탔다.

퇴근 시간이라 도로는 지나치게 막혔다. 한 정거장마다 서야 하는 버스가 그 사이사이에서도 찔끔찔끔씩 섰다. 멀미도 나는 데다 너무 지쳐서 눈을 감고 창가에 머리를 기댔다. 헤드셋을 꼈지만 무슨 노래가 나오는지도 못 알아들을 정도로 정신이 혼미했다.

한참을 갔을까, 눈을 뜨니 회현역이었다. 그쯤에서부터 기어가는 버스와 시선을 같이 했다. 보자마자 회현에서 서울역으로 가는 길인 걸 알아봤다. 회현에서 서울역으로 가는 데에 육교 같은 큰 길이 이어져 있는데, 19살, 한창 입시를 하던 때에 시험을 치러 서울에 올라왔다가 처음으로 그 길을 걸어봤었다.

서울에서 일을 하고 계셨던 큰이모부께서 회현역 근처에서 저녁을 사주셨다. 그러곤 길을 안다며 엄마와 나를 서울역까지 걸어서 바래다주셨다. 그때 그 길을 처음 걸었다. 13살 겨울에 가족과 처음 놀러와봤던 서울은 대도시였다. 그 이후 몇 년이나 흘러 시험을 치러 온 서울은 또 처음인 것만 같을 정도로 화려한 곳이었다. 지하철도 어색하고 사람은 많고 건물은 크고 복잡했다. 그래도 시험을 치고 짐 하나는 덜었다, 하며 3시간을 걸쳐 기차를 타고 내려가면 또 공부를 해야 한다는 집념에만 붙잡혀 있었던 참이었다. 분명, 그날도 딱 이맘때쯤의 계절이었다. 하늘은 어둑어둑하고 밤공기는 점점 차가워졌다. 눈 한 번 보지 못하는 경남에서 살던 나에게 서울 추위는 꽤 강했다. 애매한 자켓을 걸친 나는 서울역까지 향하는 길에 들어섰을 때 중간에 우뚝 선 엘리베이터를 따라 탔다. 다리 기둥이었다. 띵, 하고 문이 열리니 도심 속 공원 같은 곳이 펼쳐졌다. 역까지 이어진 도로 위의 다리를 쉼터처럼 꾸며놓은 곳이었다. 거대한 건물들이 가득한 한가운데 떠 있는 이 공원은 어린 나에겐 마치 공중정원 같았다. 길에는 벤치나 화분 말고도 가끔 작품을 전시해놓는 등 볼거리를 배치해놓거나, 심지어는 피아노도 놓여 있었다. 어린아이 몇몇이 신나서 띵똥대는 사이 하나둘 켜지는 조명들이 꼭 두둥실 피어오르는 것만 같았다. 쌀쌀하지만 시원하게 느껴지는 바람이 막막한 뇌를 환기 시켜주는 듯했다. 늦은 시간까지도 화려하게 빛을 내고있는 건물들의 어중간한 위치 사이에서 걷고 있으니 우주에 떠있는 듯, 그 빛들이 하나의 별처럼 보였다. 나도 모르게 옅은 한숨을 쉬자 입김이 모락 피어오르더니 밤공기 속에 녹아들었다. 광활한 우주. 따뜻할 건물 내에서 각기 볼 일을 보고 있는 이들의 모습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cctv를 보고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언젠가 저 수많은 별들 중 하나가 될까?

저 수많은 별들 사이에 내가 낄 자리가 있을까?

서울에 오고 싶었다. 그 시절 그 다리를 건너며 막연하게 바라고 있던 당장의 목표로는 내가 크나큰 입시에 성공해서 서울의 좋은 대학에 합격하는 것 말고는 꿈에 다가갈 방법이 없었다. 이 기회의 땅 근처에만이라도 밟고 싶었다. 여기를 평상시, 일상처럼 거닐고 이곳에서 자기 자리를 맡아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멋있고 부러웠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런 식으로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갑갑한 버스 안에 갇혀있는 것만 같던 나는 그때 그 다리 위의 조명들처럼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두둥실 떠올랐다. 감회가 새로웠다. 항상 바라보는 것도 마음가짐도 어릴 때와 별 다름 없이 한결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짧은 시간들을 지켜보면 나는 달라졌다. 작은 지점들 보다는 크나큰 것들이 많이 변했다. 한 때는 그 전환점에 놓였을 때 많이 무서웠다. 그 변한 것들을 알아채고 느꼈을 때 내 스스로가 무서웠다. 나 스스로도 믿을 수 없어졌던 적은 오래전부터였지만 더 무서웠다. 독보적이고 개성 있는 게 강점이라며 여기까지 올라왔던 내가 나답지 않아졌을 때의 두려움. 그런데도 무엇이 진짜인지 모르겠는 혼란. 정체성이란 건 그랬다. 단순히 사춘기 때 중2병, 이라고 하는 병 같아도 훨씬 심했다. 중2병도 청소년우울증이나 마찬가지랬다.

그리고 몇 개월만에 모든 걸 극복하고 다시 밟아 나섰다. 죽는 줄 알았는데 그 고비를 넘기고 끝까지 가시밭길을 걸으니 가시밭길이 그냥 평범한 계단이 되더라. 지금도 그 계단을 오르고 있다. 나는 매일 한 칸씩 올라가고 있는 지도 몰랐다.

새로 부장님이 오셨을 때 처음 이뤄진 회의에서 말씀하셨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들의 별이다.

나는 그 말을 곱씹을수록 나에게 부담을 주고 의미를 부여하는 누군가들이 생각나서 약간 피곤한 말일지도 모른다고 한동안은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이 길을 지나가면서 다시 떠올랐다. 사실 나는 몇 년 전의 내가 바라보던 수많은 별들중 하나에 끼여 있다는 걸. 어떤 별일지는 몰라도 하나의 별이 이미 되어있다는 걸. 물론 내가 이렇게 어느 회사에 속해서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는 것만으로 꼭 별이 된다는 건 아니다. 내가 그저 내 방에 앉아 불을 켜고 나를 위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빛내는 별이 아닌가. 그때는 단순히 서울이란 대도시를 주민으로서 거닐어보고 싶었다. 지금은 주민을 떠나 꿈을 찾고 있는 별이 다 되어있었다. 언젠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회사를 떠나게 될지라도 나는 어떻게든 나의 빛을 유지하려고 다른 무언가를 할 것이다. 그런 나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그날 지나온 나의 모습에서 가장 멋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래, 그런 멋있는 꿈을 꿨었다니, 덕분에 나는 지금 이러고 있는지도 몰랐다. 피곤하고 싫증나던 오늘 하루 일과들이 값지게 변했다. 어쨌든 필요해서 하고 있던 일들이다. 나는 대단한 걸 하고 있었던 거다. 심지어 야근까지 하다니, 나 자신은 정말 멋있는 사람이 아닌가. 그러고 또 하고 싶은걸 해보려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학원을 가고 있다니, 멋있기 그지없는 사람이다.

과거는 과거일 뿐인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는 하나의 단서였다. 역사 속에서 어떤 해결책을 찾는다는 말이 그냥 있는 게 아니었다. 그날 피어올린 옅은 한숨이 돌고 돌아 지금 나에게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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