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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원 Jan 12. 2019

10. 나는 이런 것 안 좋아한다

  

  엄마는 기울어진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열심히 일을 했다. 엄마는 다양한 재능을 가졌었는데, 노래에도 큰 재능이 있어 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가수 오디션에도 합격을 하였다. 얼마간 활동을 하다가, 당시 표절시비에 걸려 더 이상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어 엄마의 짧은 가수 인생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하지만 그때 잠깐 방송활동과 위문공연 등을 통해 얻은 수입을 토대로 엄마는 옷가게와 속옷가게 등 다양한 사업을 하셨고 그 결과 자수성가를 이루며 빠르게 집안을 일으켰다. 엄마는 서울에서 시골로 내려와 할머니에게 논과 밭을 사주었고 다시 예전처럼 친정이 잘 살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그러던 중 나의 부친을 만났고, 나를 낳았다. 할머니는 나의 출산을 매우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기를 낳아야겠다는 엄마의 결심은 확고하였다.

    

  할머니와 내가 맨 처음부터 마냥 좋았던 사이는 아니었다. 할머니는 가끔씩, 너만 아니었다면 니 어미가 팔자를 고쳤을 건데 나 혹은 그러니까 너는 엄마한테 정말로 잘해야 한다 등의 말을 하곤 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소름이 돋았고, 할머니에게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그때는 정말로 그 말이 듣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그러한 잔소리는 사그라드는 듯했으나, 중고등학교 때에는 더 자주 그러니깐 엄마에게 잘해야 한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가 너무 미웠다. 병이 시작되는 중2부터 고2까지 질풍노도의 시기였기에 할머니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다 마음에 걸렸다. 그러니깐 할머니와 나는 일종의 애증의 관계이다. 미우면서도 좋고 사랑하면서도 싫고 그렇지만 결국엔 사랑하고. 그런 것이다. 할머니는 종종 자신의 입으로 손주들 중 가장 사랑받았던 게 너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내가 봐도 그런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모두 더하면 0, 제로였기에 사랑만큼 나에게 상처도 주었으므로 똑같다고 생각했다. 차마 대놓고 물어본 적은 없다. 할머니 정말 내가 태어났을 때 그렇게 미웠어요? 아니라고 대답하시겠지만, 그래도 어떤 대답이 나올지 몰라 무서웠기도 했다. 처음이야 어쨌든 어느 순간부터 할머니는 내편이었고, 애증의, 애정의 한 편이었기 때문에.      


  할머니는 종종 거짓말을 하곤 했다. 좋으면서 싫은 척을 하는 거였다. 맛있는 음식을 사 와서 함께 먹어도  

    

“나는 이런 것 안 좋아한다”라고 말씀하시지만, 실상은 좋아하시는 거다. 혹은 선물을 사드리면,      


“나는 이런 것 안 좋아한다”라고 말씀하시지만, 그 말의 속뜻은 ‘다음엔 현금으로 달라’이다.      


  할머니의 이런 어법에 엄마는 종종 화를 냈고, 지치기도 했으며 어느 순간에는 포기했다. 그래서 당신의 no가 웬만하면 아닌 걸 알게 되고 난 후, 두 번, 세 번, 네 번 강하게 권유하게 되었다. 요즘 가끔 엄마가 그런 모습을 보일 때가 있는데, 어느새 70대가 되신 엄마가 그럴 때마다 나는 누구 딸 아니랄까 봐 그런 걸 닮고 그러냐고 엄마를 타박한다. 엄마는 내 말을 듣고는 호탕하게 웃으시고는      


“내가 그랬나” 하고 넘기신다.      


  그렇다. 엄마는 할머니를 닮았고, 나는 엄마를 닮았으니깐, 나는 할머니와도 닮은 거다. 하지만 할머니와 닮았다는 건 할머니는 썩 미인이 아니었으니 나도 썩 미인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하지만 엄마는 예쁘다. 그렇지만 나는 엄마보다 할머니를 닮았단 소리를 종종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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