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지원 Jan 09. 2019

02. 당신을 보내는 길 -2

 장례업체를 먼저 선정해야 했다. 병원에서 할지, 가입 해 놓은 상조회사에 알아봐서 정해야 할지, 삼촌 및 이모와 상의를 해야 할지 정해야 했다. 아니 그전에, 그들에게 먼저 알려야 했다. 할머니의 죽음에 대해. 엄마가 삼촌에게 전화를 걸어 할머니의 임종에 대해 전달했다. 수화기 너머 그들의 반응은 의외로 간결했다. 부음을 전해 들은 삼촌이 다른 형제에게 전달을 하고, 거리가 멀었던 그들은 모두 2시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전했다. 그 시간 동안 엄마와 나는 장례업체를 선정했고, 업체에서 파견된 직원이 나와 빈소를 꾸리고 상을 펴기 시작할때즘 그들은 도착했다. 


  생명의 탄생만큼 임종 이후에도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았다. 빈소를 고르고 꽃의 종류와 규모를 선택하고, 식사는 어떤 걸로 할 건지, 음료와 술의 종류 체크, 술안주로 올라갈 고기의 종류, 떡과 과일, 과자 등의 세세한 선택부터 파견 직원의 수, 할당 시간, 장지 장소, 모시는 방법 등 선택하고 준비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이러한 준비들이 할머니를 위한 선택은 단 한 가지도 없었다. 이제 그녀는 이것들을 먹을 수도 마실 수도 없으니까. 그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맨 먼저 할머니의 사진을 찾아 인화해야 했다. 사진을 전송하고 퀵으로 배달이 되어 마침내 하얀 꽃들 사이에 할머니 사진이 놓이자 그제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할머니의 장례절차임을 깨닫게 되었다. 


  뒤늦게 도착한 엄마의 형제들은 할머니의 죽음에 대해 크게 슬퍼하지 않아 보였다. 삼촌의 큰 아들은 심지어 몇 달 뒤 결혼을 하기 때문에 상갓집에 오지 않는다고 했다. 좋은 일 앞두고 이런데 오면 안 된다는 말을 들으니 속에서 부아가 치밀어 참을 수가 없었다. 이런데는 대체 어떤 덴가. 평생을 아들만 바라보고 살아온 당신의 마지막 장례조차도, 아들의 그 아들은 좋은 일 앞두고라는 상투적인 표현으로 포장하여 마지막 인사조차도 하러 오지 않는단 말이다. 이게 그토록 사랑을 더 주지 못해 늘 애달파하던 아들과 그 아들이 당신에게 표하는 마지막 인사라고. 이제라도 알고 나니 속이 시원하신지. 여전히 그 마음 그대론지. 속에서 천불이 난다는 표현이 딱 맞았다. 표정이 일그러지고 이죽거리자 이내 엄마가 알아채고는 참으라고 다독였다. 별 교류가 없던 사촌 및 친척들은 막상 만나도 서먹했고, 그러한 서먹함이 오래가시기도 전에 얼굴도 모르는 먼 친척들이 들이닥치고, 핸드폰 충전기를 찾고, 상복을 갈아입는 사이 장례가 시작되어 그저 그렇게 시간이 후다닥 지나가 버렸다. 평소 만나지도 않던 친척들이 한 자리에 모여 검은 옷을 입고 식장에 들어서는 손님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고는, 이러한 만남조차도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금이 아마 마지막일 것이라고 이 생경한 풍경이 다시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장례가 치러지는 동안 공통의 가족 손님과 개별 손님을 맞이하면서 나 또한 몇 안 되는 얄팍한 인간관계를 통해 지인들이 장례식에 참여하러 와 주었다. 와중에도 논문은 넘겨야 했기에, 선배 선생님께 usb를 넘겨 제본을 부탁하고, 또 다른 동기에게는 인쇄된 논문을 학과 사무실로 제출하는 것을 부탁했다. 연신 거듭 미안함과 와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맛있게 드시라는 말과 함께. 사실 맛있게 드시라는 말은 속에 없는 말이었다. 먼길 와주어 너무 고마운 조문객에게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라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죽음은 어떠한 카테고리의 사람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점철되게 하며, 낯선 병원에서 다시 만나게 하여 근황을 전하고 안부를 묻는 자리가 되기도 한다. 나의 지인뿐만 아니라 할머니 고향 사람들과 먼 친척들은 오랜만에 부산의 한 요양병원 장례식장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고인과 고인의 자식들에 대해 몇 마디 언급한 이후 서로의 사는 얘기로 돌입했다. 그리고 그 와중 두 달 뒤 결혼을 앞둔 나의 먼 친척 사촌은 그의 아버지가 자신의 장남이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인사를 테이블마다 돌아다니며 하는 덕택에 장례에는 참석하지 않았던 그의 결혼식이 아마 먼 친척과 고향사람들로 많이 채워질 것임을 예상하게 했다. 할머니는 끝끝내 가시는 길까지도 애지중지했던 아들과 그의 아들에게 도움이 되셨다. 나는 못내 그 광경이 심히 불편하여 종이컵에 소주를 따르던 삼촌에게서 무심코 고개를 돌려버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01. 당신을 보내는 길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