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눈물은 2013년 신년특집 ebs 스페셜 다큐 3부작으로 제작된 프로그램 제목이다. 2012년 대구에서 학교폭력을 견디다 못해 자살하는 사건이 생겼고 정부에서는 '학교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일진회와 학교폭력 실태를 대대적으로 조사했다. 그러고보니 우리 아들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괴롭히는 아이는 없는지 등등의 설문을 했던 기억이 난다. 스페셜 다큐로 제작한 이유도 이제야 알았다.
그 당시 8박 9일의 시험적인 '소나기 학교'도, 호통판사 천종호 판사도 다큐를 통해 인상깊게 봤다. 학교폭력이 아들 일이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더구나 한국판 쇠이유 '2인3각' 프로그램 참여하며 천종호 판사를 만나게 될 줄이야.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 나의 일이 되었으니...
[학교의 눈물]은 다큐를 책으로 출판한 것이다. 내가 글을 쓰면서 인용하고 참고한 책이기도 하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나와있었다.
"부쩍 듬직해진 어깨가 훈훈한 우리 아들들도, 공부 잘하는 똘똘한 우리 딸들도 어느 날 학교폭력의 가해자가 되어 법정에 설 수 있다. 오늘 소년법정에서 만난 저 부모들도 불과 며칠 전까지 그 사실을 몰랐다고 하지 않는가? 사회적 지위도 가족관계도 건강해 보이는 저들이 그것을 미리 알았다면 아이를 그냥 방치했을 리 없다. 만약 이 상상이 현실이 된다면, 우리 중 어떤 부모가 그들처럼 처절하게 선처를 호소하지 않고 내 아이를 속히 엄벌해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죄는 미워도 아이의 미래를 위해 타원서 한 장 써 달라고 선생님께 읍소하는 일은 결코 없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이런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불편한가?
하지만 진실은 늘 불편하기 때문에 쉬쉬하며 오랫동안 감춰진다.
아이가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것만큼이나 가해자가 되는 것도 똑같이 두려운 일이다. "
'소나기 학교'는 8박 9일 동안 피, 가해학생이 함께 생활하며 건강한 관계를 맺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도록 시범적으로 진행된 학교다. 참여한 학생들에게 설문을 했는데 '개인상담'이 가장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물론 한국에서 알아주는 전문 상담사가 프로그램의 취지를 알고 참여했으니 효과는 더욱 컸을 것이고 학생들 역시 그렇게 개인상담을 받아본 적이 없었을테니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학교에 최소한 학년별로 1명의 상담사를 의무적으로 두어야 한다고 하는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전혀 별개의 학교폭력 사건을 겪은 가해자와 피해자라면 서로 좋은 연습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피해자의 경우 나를 괴롭혔던 가해자는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아이를 만나 두려움을 극복하게 되면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가해자의 경우, 내가 괴롭혔던 아이와 비슷한 아이를 만나 건강한 관계를 맺는 경험을 통해 행동을 고쳐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학교의 눈물] 2013. 프롬북스
그럼 2013년 이후 정부가 나서서 학교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의무교육하고 학교폭력예방법까지 강화했는데 '학교의 눈물'은 사라졌을까?
교육청에서는 2012년 이후 매년 2회에 걸친 설문조사를 하고 있다. 그래프를 보면 2012년 10%가 넘던 것이 2013년 1자리로 바뀌었다. 이와 관련한 설명을 찾아볼 수가 없고 정부차원에서의 조사는 이전 자료가 없다.
푸른나무재단(청예단)은 1995년 설립된 이후 2001년부터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자체적으로 하고 있었고 교육부의 조사와 수치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2012년을 기점으로 1자리 수로 감소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학교의 눈물은 방송이후 그만큼 줄어야 한다. 사회적으로 느껴지는 체감은 2012년보다 수치도 더욱 늘어난 것처럼, 양상도 심각해졌다고 느껴진다. 왜 그럴까 생각해봤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2012년 이후 언론에서 선정적으로 기사화된 것이 한 몫하리라 여겨진다. 2012년 이전엔 학교폭력에 관한 인식이 부족했고 실태조사와 더불어 부각이 되면서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리고 가해자 처분을 받게 되니 학생이나 학부모 모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은 양날이 있기 마련이다. 수치가 줄어든 것이 학교폭력이 없어진 것인지 살펴봐야 한다. 수치에 잡히지 않는 학교폭력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다시 책과 다큐로 돌아와서 캐나다 몬트리올에 위치한 맥길대학의 프랭크 엘가 교수의 연구를 보여준다.
모든 데이터가 성인의 폭력에 관한 연구와 일치했어요. 소득 불평등이 더 커질수록 학교 따돌림도 증가해요. 이 결과는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습니다. 1998년, 2002년, 그리고 가장 최근 2010년 설문 데이터를 봤는데 결과가 비슷해요. 국가들의 위치는 매번 똑같아요. 사회 구성원 간에 소득 차이가 많으면 사회적 거리가 생겨요. 그래서 학교폭력도 더 쉽게 일어나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소득불평등이 낮은 나라일수록 사회적 신뢰도가 높다는 점입니다. 사회구성원이 서로를 더 잘 믿는다는 거죠.
학교폭력과 소득불평등이 비례한다는 사실이다. 소득불평등은 사회에 관한 신뢰도와도 연관이 있다. 결국 아이들에게 신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주고 소득 불평등을 줄이는 노력을 하는 것이 학교폭력에 직접적인 정책은 아니지만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 믿을 수 있는 사회, 소득 분배가 이뤄지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현재 한국에선 꼭 필요하다.
사춘기가 되면 아이들이 자기 목숨을 버려서라도 꼭 얻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레 뭐냐면요. ‘내가 참 괜찮은 아이’라고 생각을 하고 싶은 거예요. 그게 바로 자존감입니다. 거꾸로 아이들에게 절대 물려주지 말아야 할 유산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열등감입니다. 자존감 대신 열등감을 물려받은 아이는 자기조절을 못합니다. 나는 어차피 괜찮은 애가 아니니까 조절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이렇게 자기조절을 못하는 일이 반복되다 보면 아이 마음에 상처가 쌓여갑니다. 하지만 이런 아이들도 자기 마음을 불편한 상태로 유지하기를 싫어해요. 그러다보니까 자기 행동을 자꾸 정당화시키려고 합니다. 가치관이 바뀌는 거예요. 이런 아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도움을 거부하는 겁니다. ‘날 좀 그냥 내버려두세요.’ 왜냐하면 도움을 받아서 변화해야 할 과정이 너무 힘들기 때문이에요.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구본용 원장
마지막으로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아이의 자존감을 키울 수 있도록 '괜찮은 아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지식채널 본 영상이 생각난다. 도덕시간 숙제가 부모님 칭찬을 한 달동안 하고 그것을 쓰는 것이었다. 면박을 받기도 하고 하기 싫다고 생각하던 아이들이 그 기간을 지나고 나서 부모님을 칭찬한 자신이 꽤 괜찮은 아이라는 걸 느꼈다는 내용이었다. 무언가 특별히 잘해서가 아니다.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아이라는 걸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면 아이는 자존감 있는 아이로 성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