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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아도취 Nov 11. 2021

취향은 맛있는 음식 (feat. 지난 여름 부산 여행)

취향에 관하여

나의 관심사는 어릴 때부터 참으로 다채로웠다. 그림 그리기도 좋아하고 무엇보다 손으로 만들기를 좋아해서 뜨개질과 코바느질, 십자수도 배웠다. 가정 시간에 하는 바느질은 학교 생활의 큰 즐거움이었다. 매년 크리스마스 카드는 반 친구들과 학원 친구들 것까지 손수 꾸미고 만들어 선물했다.   

  

운동 신경이 어지간히도 없고 겁이 많았던 나를 단련 시키고자 엄마는 어린 나이부터 각종 스포츠를 시키셨다. 피겨 스케이팅, 수영은 기본이고 리듬 체조도 배웠었다. 그 영향인지 여전히 겁이 많고 운동 신경은 좋아지질 않았지만 나이가 들면서도 새로운 운동에 끊임없이 도전했다. 볼링, 라켓볼, 스포츠 댄스, 스키, 인라인, 테니스, 승마, 그리고 남들 다 한다는 요가와 필라테스까지, 나의 관심사는 지속적으로 바뀌었고, 더불어 취향은 끝없이 변했다.      


그런 나도 변하지 않는 취향이 있었으니, 바로 맛있는 음식에는 늘 진심이라는 것. 나는 음식에 대한 철학이 나름 확고하다.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이 따로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돌아보니 내가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의 종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편식을 하지 않는 나인데, 유독 ‘맛이 없는‘ 음식을 격렬히 싫어한다. 같은 김치찌개라도 맛있는 김치찌개를 좋아하고, 맛이 없는 김치찌개를 극혐하는 식이다.     


“참 복스럽게도 먹네”

“얘가 뭘 좀 먹을 줄 아네”     


음식을 남기면 벌 받는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어린 시절을 지나오면서, 어른들의 이런 칭찬은 나의 자부심이었다. 한번 들은 그 칭찬을 더 들으려고 나는 더더욱 편식 없이 복스럽게 먹었다. 남편도 음식을 맛있게 먹는 내 모습이 좋았다고 했다. 요즘도 가끔 내가 먹는 모습을 보며 “당신은 참 맛있게도 먹어”라고 종종 이야기한다.     


맛있는 것에 진심인 나의 취향은 때때로 손바닥 뒤집듯 바뀐다. 오늘은 날이 적당해서, 파스타가 먹고 싶은데 내일은 또 날이 적당해서, 빈대떡이 먹고 싶다. 나에게 뭐가 먹고 싶냐고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아무거나 다 괜찮아요”라는 대답보다는 “오늘은 OO식당의 쌀국수랑 분짜가 땡기네요” 혹은 “XX 골목에 있는 파전집에 갈까요”라는 치밀하고 촘촘한 답변을 듣게 될 것이다.     


얼마 전 1박 2일로 부산 여행을 다녀왔다. 내 여행 만족도의 팔할은 먹는 음식으로 결정이 된다. 현지에 계신 분께 받은 맛집 리스트와는 별개로 나 역시 사전 조사를 조금 해두었다. 나는 맛집을 검색할 때 블로그 포스팅 그 자체보다는 나의 감을 믿는 편이다. 식스 센스에 가까운 육감으로 이 포스팅이 협찬인지 아닌지를 걸러낸다. 음식 취향은 어디까지나 개취이므로 이 사람과 나의 입맛이 비슷한지도 파악해야 한다. 그렇게 엄선된 몇 개의 후보군과 지인에게 받은 맛집 리스트를 합쳐서 여행 루트를 짰다.      


1시간 21분을 기다린 것이 아깝지 않았던 맛집.


점심으로는 줄을 서서 먹는다는 히츠마부시 집에 갔는데 정확히 1시간 21분을 대기하고서야 입성할 수 있었다. 음식은 정갈했고 장어는 입에서 녹았으며, 해가 중천에 떠 있는데 일행과 나눠 마신 생맥주는 꿀맛이었다.      

“술은 역시 낮술이죠.”

“얼마만에 마시는 생맥주인지 모르겠어요.”

“꼭 와 보고 싶었던 곳인데 덕분에 여길 와보네요.”

“남편이랑 왔으면 이렇게 기다렸다가 먹는건 상상도 못했을거예요.”     


일행들이 배가 부르다면서도 그릇을 싹싹 비운 것을 보니 첫 번째 맛집은 성공적!      

다음으로는 광안리 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해변가의 멕시칸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뜨거운 태양과 눈부신 파도를 바라보며 내 얼굴만한 마가리타 한 사발과 과카몰리 앤 칩스를 먹었다. 초리조가 들어간 퀘소 딥을 팔다니, 멕시칸을 제대로 하는 곳이다. 술보다도 좋은 사람들과의 대화와 이국적인 분위기에 한껏 취했다. 그래, 이런게 여행이지.

광안리를 바라보며 마신 마가리타는 꿀맛!!


점심 식사를 못하고 뒤늦게 합류한 일행을 위한 퀘사디야를 시켰다. 맥주와 마가리타를 마시며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접시들이 깨끗이 비워졌다. 부산 토박이인 일행들도 외지인이 오지 않으면 광안리에 올 일이 없다며 즐거워했다.      


저녁으로는 방송에도 여러 번 나와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낙곱새 집으로 갔다. 낙곱새에는 역시 소맥이지.     

“이모~~ 여기 소주 한 병에 맥주 둘요~~”     


소맥을 자주 마시지는 않지만 먹는데엔 늘 진심인지라 맥주잔 다섯 개를 앞에 쪼로록 줄을 세워 신중하게 황금비율로 소맥 제조에 들어갔다.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국물을 한 국자 떠서 대접으로 나온 밥 위에 올린다. 콩나물과 부추무침, 김가루까지 더해서 슥슥 비벼서 한 수저 크게 떠 입으로 밀어 넣는다. 맵단짠 양념과 곱창의 고운 기름기를 적당히 머금은 밥알에 부추와 콩나물의 아삭함, 김가루의 고소함까지 입안에서 춤 춘다. 매운 맛을 중화 시켜 줄 소맥을 한 모금 마시면 캬~ 소리가 절로 나온다. 남은 국물에는 라면 사리를 추가했다. 완벽한 마무리였다.     


유명한 낙곱새 집. 소맥 사진이 빠졌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먼저 가야 할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남은 사람들끼리 맥주집으로 향했다. 수제 맥주 양조장이자 펍을 겸하는 곳이었는데 샘플러를 시켜서 또 이 술 저 술 마셔보았다. 입이 궁금해서 잘게 다진 감자를 동글동글하게 만들어서 튀겨낸 가벼운 안주도 시켰다. 나머지 일행이 돌아가고 숙소를 잡고 1박을 하기로 한 나와 여행메이트 하나가 남았다. 어둠이 내려 앉은 광안리 바닷가에 앉아서 파도 소리를 들었다. 들어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캔맥주 두 개와 과자 안주를 사서 숙소에 들어가 마무리로 한잔을 더 했다. 그렇게 부산 여행 1일차에 일식, 멕시칸, 한식, 양식, 편의점식 까지 두루 섭렵했다. 부어라 마셔라 하지는 않았지만 가늘고 길게 낮 12시부터 밤 12시까지 5차에 걸쳐 술을 마셨다.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그 동네에서 유명하다는 재첩국으로 해장을 했다.      

“해장술이나 한잔 할까?”

“오. 저 해장술은 한번도 안마셔봤어요. 사장님, 여기 생탁 하나요~”     


아침은 해장술과 재첩국으로 해장을.


웃으면서 농담으로 던진 말에 바로 막걸리 한병 시켜주시는 나의 여행메이트.

그녀 덕분에 아침부터 또 술이다. 뜨끈하면서 시원한 재첩국과 맛깔스러운 반찬 그리고 아침부터 마시는 탁주는 퍽 잘 어울리는 별미였다.      


이렇게 1박 2일간 국적을 넘나드는 다양한 음식을 먹고 또 술을 마셨지만, 이 모두를 관통하는 것은 맛있는 음식을 먹은 그때의 분위기와 또 함께한 사람들에 취했다는 것. 이번 부산 여행의 맛집 리스트업은 퍽 만족스러웠다. 음식은 모두 맛있었고, 겹치는 메뉴도 없었다. 각 가게의 분위기도 달라서 하루를 이틀처럼 쓴 느낌이었다. 무엇보다도 함께한 사람들의 에너지가 좋았고, 거기에 날씨까지 반짝반짝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다녀와서 몸무게가 늘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 통유리창이 인상적인 커피숍이었다. 6층짜리 건물에 취향 저격의 조용하고 높은 층고의 도회적인 인테리어의 카페가 꼭대기 층에 자리잡고 있었다. 건물 전체를 통틀어 취향을 끊임없이 저격당했는데, 중간 층들은 현대적인 느낌의 북까페, 그리고 가구 쇼룸이었다. 뷰 값이 절반 이상인 값비싼 드립커피를 마시며 경치를 감상했다.      


커피를 마시다가 조금 출출하여 ‘하몽 아이스크림 크로와상‘이라는 메뉴를 시켰다. 크로플이나 브라우니, 치즈 케익은 어딜 가도 먹을 수 있지만 이 메뉴는 아니란 느낌이 강하게 스쳤기 때문. 나는 새로운 조합의 음식을 떠올리면 그 맛을 그려보곤 하는데 이건 그려지지 않았다. 하몽에 아이스크림의 해괴한 조합을 주문하는 나를 바라보던 여행메이트의 걱정스러운 눈빛이 무색하게, 그 메뉴는 단짠의 완벽한 조화에 버터 풍미 가득한 크로와상 그리고 생 바질의 프레시한 향이 곁들여진 극강의 조합이었다. 한입 베어 먹은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배가 부르다던 여행메이트도 공평하게 반으로 나눈 샌드위치를 남김없이 먹었다.      

“대박!! 무슨 맛일지 상상이 안갔는데 너무 맛있어요!”    


 


하몽 아이스크림 크로와상 샌드위치. 무엇을 상상하건 그 이상의 맛이다.


취향은 흘러가면서도 또 그 자리에 머물기도 했다.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등장한 새로운 취향이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기도 했다. 부산 여행에서 만난 하몽 아이스크림 크로와상처럼. 이런 예기치 못한 반전들이 인생을 살아가는 재미가 아닐까.

     

오늘 저녁은 장마비가 내리니 스테이크를 구워볼까? 올리브유에 다진 마늘을 볶다가 살짝 숨만 죽여 곁들여 내는 브로콜리니와 함께. 오늘도 나는 입맛 저격 취향을 찾아 나선다.      


** 지난 여름 부산을 다녀와서 쓴 글을 정리해서 초 겨울에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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