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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원다인 Apr 13. 2020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다담잡설(茶談雜說): 차 마시다 떠오른 별별 생각

마신 차: 무심헌 보이차. 2g, 99도, 50s-30s-50s-1m10s-1m30s


외장 하드의 선사시대 파일들을 정리하다가 MP3를 모아둔 "가요 모음"이란 폴더가 눈에 띄길래 운전할 때 들으려고 통째로 USB에 저장했다. 아마 10년도 훌쩍 전에 출국하면서 들으려고 모아둔 노래들인 듯했다. 


오래간만에 운전할 일이 있어서 USB를 꽂고 노래를 틀었는데, 첫 노래로 김동률의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가 흘러나오는 거다. 오랜만에 들은 김동률의 목소리가 반갑기도 하고 멜로디도, 가사도 그렇고 뭔가 뜨거운 게 울컥했다.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조금 멀리 돌아왔지만
기다려 왔다고
널 기다리는 게
나에겐 제일 쉬운 일이라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고


옛날에도 그랬지만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김소월의 "먼 후일"이 너무 생각이 난다. 시대가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감성이 있는 건가? 헤어진 인연은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는.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그리고 다음으로 양파의 "애송이의 사랑"이 나왔다. 무슨 가수 이름이 양파냐고 비웃다가, 가창력에 깜짝 놀랐던 양파! 지금 들어도 신선했다. 그리고 제목처럼 풋풋하던 애송이 시절의 추억에 잠겼다. 그때 친구들은 다 어디서 무엇을 하려나. 아마 다시 만나면 우리 모두 생활에 찌든 사회인들. 차라리 안 만나느니만 못하겠지. 애송이의 추억만 아름답게 간직하기.


조금만 더 가까이 내 곁에 있어줘
 널 사랑하는 만큼 기대 쉴 수 있도록
지친 어둠이 다시 푸른 눈 뜰 때
지금 모습 그대로


3번째 노래. 뱅크의 "가질 수 없는 너." 노래방에서 이게 자기 노래라며 눈물, 콧물 쏟으며 열창하던 친구들이 있었는데, 나도 갑자기 눈물이 앞을 가려 차를 옆에 세우고 한참을 멍하니 노래를 들었다. 썸 타는 여사친을 바라만 보는 용기 없는 바보의 넋두리라고 생각했었는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나도 이런 노래에 울컥해지는구나 싶었다.


며칠 사이 야윈 널 달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마지막까지도 하지 못한 말 혼자서 되뇌였었지
사랑한다는 마음으로도 가질 수 없는 사람이 있어
나를 봐 이렇게 곁에 있어도 널 갖진 못하잖아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출발을 했는데, 이후에 나오는 노래들이 "취중진담," "사랑보다 깊은 상처," "미소속에 비친 그대,"  등등 죄다 슬프고 느린 노래여서 트랙을 바꿔 버렸다. 이러다간 운전을 못할 것만 같았다. 


"도대체 10 몇 년 전의 나는 어떤 '갬성'을 가지고 있었던 거야?" 만약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대화를 한다면 뭔가 되게 이질감이 느껴질 듯하다. "내"가 항상 똑같은 것 같아도, 나는 매일매일 변한다. 신체와 생각 모두. 마치 우리 사회가 변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에게 보편타당한 윤리 기준이 있는 듯하지만, 이것도 굉장히 빨리 변한다. 어제는 맞고 오늘은 틀리다. 


외장 하드 속에서 발굴해낸, 굉장히 센치한 갬성을 가진 "나"와의 놀라운 데이트였다. 이젠 그런 나를 잘 이해할 수 없지만 그래도 다시 사랑한다는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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