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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원다인 Jun 03. 2020

시들지 않는 꽃

다담잡설(茶談雜說): 차 마시다 떠오른 별별 생각

마신 차: 연우제다 녹차 세작. 3g, 80도, 40s-30s-40s-1m-1m30s


부쩍 자주 꽃을 산다.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화훼 농가를 돕자는 마음으로 사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집안에 꽃 한 송이가 없으면 무척 허전하게 느껴진다. 꽃병도 없어서 맥주잔에다 꽂아 놓고 감상하는데 꽃의 화사한 능력으로 주변의 모든 초라함이 덮어진다. 꽃의 존재만으로도 찻자리의 격이 높아지는 듯하다. 


혼자 살면서 꽃을 감상하는 게 아까웠다. 주말에 집을 비우기라도 하면 아무도 봐주지 않은 채 꽃이 홀로 시들어 가는 게 가슴 아팠다. 그러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실험을 하나 해봤다. 집을 비울 때 냉장고에 꽃을 보관하기! 꽃집에서 꽃을 냉장고에 넣어 두고 판매하는 것이 생각이 나서 실험을 해봤다.


결과는 대성공! 놀랍게도 냉장고에 보관하는 동안 꽃이 싱싱하게 보관되었다. 심지어 봉우리가 꽃을 틔우기도 하였다. 생활 속의 아주 실용적인 발견이다. 꽃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서 꽃병의 물에 설탕을 풀거나, 가지 끝을 조금 태우는 등등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봤었는데 이 보다 효과적인 방법은 없었다. 


출근하면서 꽃병 채로 꽃을 냉장고에 넣어서 쉬게 해 주고, 퇴근하면서 꽃을 꺼내 재회하는 것이 일상이 되고 있다. 마치 '회사 잘 다녀오셨어요'하며 나를 반겨 주는 듯하다. 냉장고 냄새가 꽃에 베일까 염려를 했었는데, 기우였다. 우유, 소주병 옆에 꽃병을 놔두는 모양새가 엽기적이어서 그렇지 꽃을 오래 두고 보기에 정말 괜찮은 방법이다. 


냉장고 속에서 이슬을 먹으며 쉬고 있는 꽃송이들!


이런 식으로 거의 1달이 넘게 같은 꽃이 내 곁을 지키고 있다. 중간에 시들어 버린 송이도 있었는데 국화 종류인 폼폼은 정말 생생하게 남았다. 그래도 이제는 꽃잎에 조금씩 갈변이 보이는 것이 갈 때가 되었나 보다. 아니지, 갈 때는 이미 한참 지났다. 


어찌 보니 꽃이 한창 피어나는 모습보다, 조금씩 시들어 가는 모습이 더 아련하고, 한편 아름답다. 조화가 아닌 생화를 찾는 이유는 그 아름다움이 유한하기 때문이리라. 희소한 아름다움이라 더 소중하게 느낀다. 시들지 않는 꽃은 꽃이 아니다. 이 폼폼 녀석과도 이별을 준비해야겠다. 


이 글을 쓰고 나서 생각하니, 냉장 보관 정보가 화훼농가들에게는 그다지 유익한 소식이 아닐 듯하다. 꽃을 구입하는 빈도가 떨어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걸 읽는, 나처럼 혼자 사는 독거인들이 꽃을 더 많이 살 것을 기대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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