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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랩 Apr 22. 2023

눈꺼풀과의 싸움

밤샘 근무의 고충





‘잠’이라는 게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지 이제는 알 나이가 되었다.

‘숙면’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도.



잠을 자야 할 시간에 자지 못하고, 바뀌어버린 시차에 적응을 못 한 채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 하는 바쁜 일상이 시작되었다.

어떤 날은 하루가 사라져 버리기도, 어떤 날은 시차를 거슬러 하루를 이틀로 보내가면서 정신없는 매일을 보내고 있다.


그것이 당연한 듯 살아가다가 3년간 코로나로 인한 긴 휴업을 겪으면서, 한국 시차에 맞게 아침에 깨고 저녁에 잠을 자는 ‘럭셔리한 삶’ ‘규칙적인 삶’을 살다가 다시 새로 적응하려니 그동안의 당연한 삶이 얼마나 비정상적이었는지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한국 낮 시간에 억지로 눈을 붙이며 ‘제발 조금이라도 자자, 그래야 이따가 일할 때 덜 피곤하지.’ 하는 맘으로

억지로 눈을 감고, 빗소리, 새소리, 우주 소리, asmr을 귓가에 틀어놓고 발악을 해본다.



제발 잠깐이라도 자게 해 주세요…..



하지만 열에 일곱은 아니 여덟은 잠을 못 자고 늦은 밤 화장을 하고 유니폼을 입는다.


커피를 마시고 눈을 부러 또렷하게 떠보면서 자고 있을 남편에게 “나는 이제 출근해. 내일 봐요.”라고 남겨놓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다시 캐리어를 끌고 비행기로 향한다.



아침 출근은 그대로 쉽지 않고 짜증이 나지만 까만 밤 출근은 더 우울하기 마련이다.



왜일까?

음…….. 나만 못 잔 게 아니다.



시차에 맞게 딱딱 잠을 자고 침대에 눕기만 하는 ‘승무원을 하기 위해 태어난 자’는 많지 않다.

모두들 까칠한 얼굴을 한 채 이미 피곤이 가득한 얼굴로 시차를 거슬러 출근을 한다.

다 같이.



잠이 부족하면 모두가 그렇듯, 예민해진다.

그리고 판단이 빠르지도 않다.



뭘 자꾸 놓칠 때도 많아지고, 멀쩡히 친절했던 동료가 예민하게 날이 서있기도 하다.


모두들 시한폭탄을 안고 일하는 것처럼 위태위태하다.

내 예민함에 더해 동료의 예민함까지 눈치 보며 일하는 것은 업무의 피로도가 배가 된다.




하지만, 그 위태로움과 예민함을 손님에게도 티 낼 수는 없는 법.


요즘 말하는 ‘억텐’ (억지로 텐션을 끌어올리는 것)을 끌어모아 승객을 대한다.



문제는 동남아 비행과 같은 밤비행의 경우,

비행시간은 곧 손님들이 잠잘 시간이다.



불 꺼진 비행기 안 모두가 바이오리듬에 맞춰 단잠을 자고 있을 그 시간,

나는 그리고 나의 동료들은 무겁게 떨어지는 눈꺼풀과 사투해야 한다.



손님들이 쉬는 그 시점엔 대부분 승무원이 이착륙할 때 앉는 좌석인 점프싯에 앉아 가만히 대기하며 승객의 호출이 있을 때까지 기다리거나, 아니면 화장실의 청결 상태를 살피고, 기내를 돌며 승객들을 살핀다.



가만히 기내의 맨 뒤 점프싯에서 화장실 앞을 지키고 있는데,

눈꺼풀이 내 의지와 다르게 훅훅 떨어진다.



저 멀리서 화장실을 향해 오는 손님이 보이는데 정말 눈 깜짝할 새에 훅- 훅- 다가와있다.

마치 여고괴담의 한 장면처럼!!!



난 분명 눈을 뜨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내 코앞에서 화장실에 들어가는 손님을 보고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고개를 가로젓고 정신을 차리려고 기지개도 켜어보고 목도 스트레칭도 해보고 별난리를 다 쳐보지만,

미치게 졸리다…..



지금 당장 나에게 10분만 눈을 감고 단잠을 자게 해 준다면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온몸이 물 먹은 솜처럼 축축 쳐지고 무거워진다.

모두를 깨워서 식사라도 주고, 기내에 있는 음료수를 한 잔씩 대접하고 싶다.

움직이며 뭐라도 해서 잠을 깨우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지금 손님들이 원하는 것은 식사도 음료도 아닌 꿀잠이기 때문에, 빛을 줄이고 소음이 나지 않게 조용히- 앉아있는 것이 그들이 바라는 최상의 서비스이다.



가장 졸릴 때 잠을 참아내고 아침이 되어 퇴근해 집에 오면 몸도 낮 시간에 맞는 리듬으로 돌아와서 밤처럼 깊게 오래 자지 못한다.


암막 커튼을 치고 그토록 바라던 내 침대에서 꿀잠을 자길 기대하지만, 서너 시간 뒤면 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쑤시는 채로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한다.


예전엔 도대체 어떻게 그랬나 싶지만, 아침 도착한 날은 쉬는 날인양 오후 약속을 잡고 친구들을 만나서 술을 마시기도 하고 새로운 하루를 선물 받은 사람처럼 아주 알차게 썼었는데, 체력도 정신력도 많이 약해진 지금은 눈이 떠졌으니 그냥 일어나 있을 뿐 반은 혼이 나간채로 반만 좀비인 ‘절비’상태(지금 우리 학교는 에 나온 표현처럼)로 밤을 기다린다.



푹 잘 수 있는 타이밍을 기다리며.

그렇게 아침이고 밤이고 눈꺼풀과의 싸움을 한다.





혹시나 일상에서 감사함을 찾지 못하고 우울한 누군가에게

그래도 밤이 되면 잘 수 있다는 것이 누군가에겐 너무나도 간절한 무언가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눈꺼풀과의 싸움을 하지 않고 내일을 침대에서 맞이할 수 있는 것, 그거 참 부럽고 감사한 일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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