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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유 Nov 06. 2021

엄청나게 불안하면서도 안정적인

사는 일은 징그럽지만은 않아

어제 아침에도 평소처럼 지하철을 탔다. 내가 타는 4호선 지하철은 늘 사람이 많고, 아침 출근시간에는 당연히 빈 자리를 기대할 수도 없으며 낑겨 가지 않으면 감사하다. 그리고 가끔은 너무나 밀착되어 있기 때문에 원하든 원치 않든간에 상대방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주로는 유튜브를 보는구나, 쇼핑을 하는구나, 정도를. 어제 내 앞에 선 남자는 휴대폰으로 뭔가를 보고 있었는데, 부동산 스터디하는 카페라는 걸 알게 되었다. 보려고 본 건 아니었는데 어쨌든 막상 보이니까 나도 모르게 눈이 커졌다. 나는 이 시간에 지하철 타는 것도 간신히 탔는데, 부동산이라니! 너무 거대한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한 여자가 선 채로 노트에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정말 대단한 것은 그렇게 선 상태로 글씨를 꽤나 정갈하게 쓰는 것 같았고, 아무것도 받치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조금 놀랐고 아침부터 저렇게 기록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스타그램이 아닌 눈에 보이는 실체로 알게 되었다. 곧 휴대폰으로 노트 사진을 찍는 것까지 보고서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아까 그 남자가 다시 눈에 띄었는데, 남자가 손에 든 책은 무려... 그렇다. 부동산 관련 책이었다. 내 가방에도 책이 있었는데 그 책은 며칠간 들고 다녔던 책이었고 당연히 펼쳐볼 생각도 못 했었다. 나는 가방에서 책을 꺼내들었고, 읽은 지 3분도 안 되어서 다시 책을 가방에 넣었다. 그 책은 부동산 책 앞에서 너무 작아 보였다. 이상한 수치심과 부끄러움마저도 들었다.

미라클 모닝이니 하는 것들이 내게는 너무나 멀어 보인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에도 놀란다. 폄하하거나 비아냥거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타인을 함부로 재단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으니까. 다만 가끔은 정말 놀라곤 한다. 그런 사람들은 뭐랄까, 자기 삶에 정성을 다하는 것 같고, 자신에게 많은 걸 주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가 때로 가혹할 정도로 "너는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는 것도 한몫 한다고 생각하지만, 정말로 자신이 원해서 삶을 알차게 살뜰하게 꾸려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 존경심마저도 든다. (그런데 미라클모닝이라는 단어는 좀 어떻게 하면 안 될까?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왜 기적이야.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 자체가 기적이다!)

그에 비하면 나는 너무나 되는대로 살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실은 생각이 아니라 사실이다. 나도 나름 부지런히 살기는 한다. 누군가의 시선으로 보면 그렇다는 거다. 일주일에 서너번은 운동이라 부를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평일엔 매일 직장도 다닌다. 그렇지만 아침엔 겨우 몸을 일으키며 버스가 제시간에 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지나치게 흥분하고, 지하철이 시간표대로 오지 않으면 간신히 분노를 억누르면서 민원 문자를 넣는다. (그런데 그 민원 문자라는 건 아마도 출근 시간 수많은 직장인들이 보내는 모양인지 늘 같은 답장이 온다. 화가 나다가도 휴대폰 너머로 노동하고 있을 사람의 얼굴을 생각하면 화낼 수도 없다.) 이따금 야근을 하는 날이면 너무 힘들어서 울기도 한다. 단순해지고 싶다고 자주 생각하지만 단순해지는 건 복잡해지는 것보다 어려운 일 같다. 얼마전에는 오늘 하루만 생각하자, 고 다짐했지만 습관이 되지 않아서 그런지 그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오늘 하루만 생각하자니. 오늘 먹은 밥, 커피, 만난 사람들, 내가 한 일, 주고받은 대화만 생각하는 건 숙련이 필요한 일이다.

나의 할머니는 걱정이 아주 많은 분인데 가끔 전화할 때마다 걱정을 엄청나게 쏟아낸다. 얼마전에 전화했을 땐 내 가족의 취업을 걱정했다. 할머니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은 정말 걱정이 많은 사람들이고, 가끔은 이런 가족과 함께 사는데 내 기질이고 나발이고 뭐가 중요할까 그런 생각도 한다. 게다가 내 생각엔 내 기질도 이렇게 생겨먹은 것 같다. 말하자면 나는 엄청나게 불안하면서도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한국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이.

요 며칠은 지하철을 오가면서 유튜브에 '퇴사'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거의 모든 콘텐츠를 봤다. 거기엔 온갖 말들이 다 있었다. 유튜브는 사람들이 원하는 말을 준비해놓고 기다리고 있는 거대한 광장 같다. 거기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나와서 자신의 경험에 기반한 조언을 해주었다. 어떤 사람은 퇴사가 막연한 대책은 아니라고 했고, 또 어떤 사람은 퇴사한 이후 훨씬 잘 살고 있다고 했다. 지나치게 매끈한 대답은 오래 듣고 있으면 왠지 기운이 빠졌다. 결국 당연한 말이지만 답은 없고 결국 답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순간마다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했다. 

얼마전에 친구를 만났는데 대화를 하다가 친구가 내게 "요즘 네 인생의 낙이 뭐야?"라고 물었다. 그때는 기억이 안 나서 "없는 것 같아"라고 대답했는데 나중에 곰곰하게 생각해보니 낙은 있는 것 같다. 왜 없겠어. 넷플릭스로 <그레이스 앤 프랭키>를 볼 때,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눠먹을 때, 바쁜 한 주를 보내고 늦잠을 자고 일어난 토요일 날씨 좋은 오후 같은 것. 가끔은 사는 게 정말로 지겹고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미워지지만, 시간이 지나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변하지 않거나 계속해서 여전하다는 생각도 한다. 

이제 나는 결코 '어린' 나이가 아니다. 갑자기 왜 나이 얘기를 하냐면 이제 곧 12월이 되고, 12월이 지나면 곧 새해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매해 어떤 순간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같은 게 달라지지만 지금 떠오르는 연말의 이미지는 대학 종강을 앞두고 교내 카페에 앉아 마지막 기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던 모습이다. 종강이 가까워져 쌀쌀한 바람이 불었지만, 내겐 좋은 친구들이 있었고 취업에 대해 큰 걱정도 없었다. 얼마전에 길에서 미니스커트를 입은 사람을 보았는데 그 모습을 보자 나에게도 매일같이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녔던 20대 초반의 나날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나날이 다시 돌아오진 않겠지만 미니스커트는 참 멋지고 아름다운 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나는 아침에 되는대로 주워입은 옷과 매일매일 입는 청바지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기억은 미화되고 지나치게 낭만화되고 있다. 지금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런 거겠지. 뭐 어쨌든 원한다면 나는 내일이라도 당장 미니스커트를 입을 수 있긴 하다. 이 글을 쓰면서 느낀 건 내가 '생각한다'는 말을 너무 많이 한다는 것이다. 나는 생각을 진짜 많이 하는 사람이다. 오랫동안 나를 미워하고 혐오하고 경멸하고 멸시하고 하여간에 안 좋은 건 다 주고 살았는데 이젠 그럴 기력도, 의지도 없어서 가능하면 수고했다는 말도 해주고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해주며 건강을 챙긴다. 

할머니로 늙어가는 나는 생각해보지도 않았는데 그런 나도 언젠가는 도래하겠지. 그렇다면 그때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내가 되고 싶다. 그래도 내가 너한테 부끄럽진 않았어. 제철과일도 먹이고, 세 끼는 아니어도 두 끼씩 챙겨먹이고, 가끔 여행도 가고, 무엇보다 너를 포기하진 않았잖아.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내가 나 자신을 친구로 여길 수 있는 할머니가 되는 것. 그게 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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