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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 Mar 25. 2020

나는 행복해지기로 했다.

퇴사일기



3년 넘게 다닌 직장을 퇴사하기로 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 퇴사를 결정했다. 행복하기 위한 결정인데 퇴사를 하기까지 참 많이도 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도대체 왜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미련 때문이었던 것 같다. 직장이라는 곳이 참 이상하다. 그저 돈을 벌러 나가는 곳인 줄 알았는데 내 열정과 시간이 담겨있는 소중한 곳이었다.


스트레스가 많았지만 나는 일이 참 좋았다. 세일즈였기 때문에 실적 압박도 있었고 조직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다행히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타입이라 그저 그렇게 잘 적응해가고 있었다. 내가 신경 쓰지 않으니 사람들도 더 이상 나에 대해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하고 싶은 건 다 할 수 있을 정도로 돈을 잘 벌었고 문제없이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는 누구나 있는 거라고 생각했고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던 얼마 전 유산을 했는데 그 경험이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유산의 경험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나는 지금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픈 경험을 겪고 나니 빠르게 흐르던 시간이 갑자기 멈췄다 다시 가는 것처럼 그 이후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남편이랑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눴고 남편은 나에게 행복한 지 물었다. 남편은 꽤나 행복한 사람이라 가끔 나에게 행복에 대해 묻거나 얘기해주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속으로 '바빠 죽겠는데 무슨 행복 타령이야'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번엔 그 말에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힘든 일을 겪은 뒤라 마음이 말랑말랑 해져서였을까. 울고 있는 나에게 남편은 말했다. "지금 너는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아. 너의 인생에서 회사에 쏟는 에너지가 80% 이상이야. 우리가 다시 아이를 가진다고 해도 과연 행복할까?" 나는 물었다. "그럼 돈은 어쩌고?" 그 순간에도 나는 지금 받고 있는 돈이 아까웠던 거다. 남편은 다시 말했다. "지금 상황에서 돈을 버는 것이 과연 가치가 있을까?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스트레스 안 받고 행복한 것이 훨씬 더 가치 있어 보여." 그렇게 말하고는 잘 생각해보라고 일을 하더라도 스트레스를 덜 받는 방법을 함께 찾아보자고 했다. 고마웠지만 한편으로는 서운하기도 했다.


나는 달리는 경주마 같았다. 목적지도 모른 채 그저 열심히 달렸다. 열심히 달리다 보니 어느새 혼자서 달리고 있었다. 길을 잃었고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안 좋은 일은 한 번에 닥친다고 개인적인 일로 힘들어할 틈도 없이 회사에서도 여러 안 좋은 일들이 생겼다. 원래의 나였더라면 꿋꿋이 버텨낼 정도의 일이었지만, 문득 버텨내는 것이 의미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내가 왜 회사를 다니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수없이 던져봤다. 돈을 버는 것 외에는 아무런 목적이나 의미가 없었다. 한 때는 타깃을 달성했을 때 성취감도 좋았고, 일을 잘한다는 인정을 받는 것도 좋았던 때가 있었다. 마음 맞는 동료나 파트너들과 소주 한잔 마시며 인생 얘기 나누는 것도 좋았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회사에 가는 일이 유쾌하지 않았고 표정 없이 앉아있는 날이 많았다.


회사를 다니는 목적이 오직 돈뿐이라면, 현실적인 문제들만 해결되면 그만두는 게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나는 결혼을 했고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생활은 할 수 있으니 금전적인 부분을 고려해봐도 적어도 굶어 죽지는 않겠다는 계산이 되었다. 그런데 대학 졸업 후 7년 넘게 직장생활을 해왔는데 갑자기 일을 안 하게 되면 우울해지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들었다. 회사 밖으로 나와서 뭘 할 수 있는지 고민해보기로 했다. 퇴사를 결정하고 처음 일주일 동안은 너무 막연해서 그냥 퇴사를 번복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다 문득 그동안 하고 싶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하지 못했던 일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작년에 동영상 편집을 배웠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았고, 몇 년 전까지는 블로그도 했었는데 결혼하면서 유령 블로그가 되어있었다. 그밖에 사진도 배워보고 싶고, 재봉틀, 요리, 인테리어... 하고 싶은 일들이 쏟아져 나왔다. 지금까지 떠오른 것들만 다 해봐도 시간이 금방 가겠는데? 라고 생각하니 우울할 걱정은 더 이상 안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이 정리되고 나니 조금씩 마음이 편해졌고 놓지 못했던 일말의 미련까지도 털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홀가분하게 사직서를 냈다. 퇴사를 한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쌓아놓은 경력도 있고, 연봉도 좋은데 퇴사하기 아깝지 않냐고 물었다. 글쎄... 아니라면 거짓말이겠지만 남편의 말처럼 더 이상은 그 일들이 가치 있게 느껴지지 않는다. 조금은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은 것 같다. 나는 앞으로 더욱 행복해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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