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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 Jul 15. 2020

상견례가 끝나고 엄마가 울었다.


우리 엄마는 섬세하고 감수성이 풍부하다. 내가 고등학교 때 엄마는 시인으로 등단했다. 그런데 시집을 낸 적은 한 번도 없다. 홀로 아들, 딸을 키우며 시를 쓸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돈을 많이 벌면 엄마에게 시집을 내주겠다며 공약을 걸었었는데 돈을 벌게 된 이후에도 엄마의 시집을 내줄 수는 없었다. 엄마는 하고 싶은 것들을 포기하고 살다 보니 시 쓰는 것도 이제는 자신이 없다고 말한다. 나는 지금이라도 엄마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는데 엄마는 너희가 잘돼서 지금 너무 행복하다고 말한다. 언젠가부터 엄마의 꿈은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 되어버린 것 같다.

엄마는 내가 결혼할 때 이혼가정이라는 것이 시댁에 흠잡힐까봐 그게 내내 걱정이었다. 그런데 나는 괜찮았다. 엄마는 결혼생활에 최선을 다했고 엄마, 아빠가 이혼했을 때 동생과 내가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설명을 해줬다. 우리는 부모님의 이혼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이혼가정에서 자랐다고 해서 내가 모나게 자란 것도 아니며,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잘 살아왔기 때문에 한 번도 그게 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굳이 먼저 나서서 우리 집안 사정에 대해 떠벌리진 않았지만, 누군가 부모님에 대해 물으면 아빠는 안 본 지 오래돼서 잘 모르겠다고 말할 뿐이다. 가끔 듣는 사람들이 어쩔 줄 몰라하지만 크게 대수롭게 느껴지진 않았다.

결혼을 하겠다고 했을 때, 아빠에 대해 시댁에서 물으면 뭐라고 할 거냐고 묻는 엄마에게 말했다.

"만약 부모님이 이혼했다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한다거나 엄마나 나에게 그 일로 상처를 준다면 그 결혼은 하지 않을 생각이야”

정말 그럴 작정이었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런 생각을 앞서 했던 것을 보면 나도 내심 걱정이 있었던 것 같다. 시부모님과 처음 만나던 날, 나는 인상 좋고 따뜻한 두 분이 너무 좋았다. 아마도 남편이 먼저 언질을 줬는지 이미 우리 집 가정사에 대해 알고 계신 눈치였다. 시부모님은 자연스럽게 엄마에 대해서만 언급하시며 불편하지 않게 배려해주셨다. 차를 타고 가는 길에 잠깐이지만 생각했었다. '아빠에 대해 물으시면 뭐라고 말하지? 혹시 왜 이혼했냐고 물으면 어떻게 말해야 하지...?' 그러다 그냥 '에라 모르겠다. 그렇게 다이렉트로 물으시면 그땐 나도 정공법이다!' 이렇게 애써 생각을 정리했었다. 그리고 잠깐이었지만 내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 너무 싫었다.

상견례를 하기 전부터 남편과 나는 둘이 알아서 결혼을 진척시켜나갔다. 양가 모두 형편이 넉넉지 않았고 그 핑계로 둘이서 원하는 대로 결혼식을 준비했다. 남편과 나는 일일이 부모님과 상의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좋았고 편했다. 양가 부모님도 신경 쓸 일이 없으니 그게 편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주관이 명확한 편이라 주변에서 뭐라 하던 내 갈길을 가는 성향이다. 그래서 결혼에 대한 친구들의 애정 어린 조언들도 가볍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었다.

반면 엄마는 맏딸을 처음으로 결혼시키는 데다가 주변 지인들이 하는 자녀의 결혼에 대한 훈수 때문에 걱정이 산더미였다. 엄마는 결혼에 대한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에게 전화를 했다. 예단은 어떻게 할 건지, 이바지는 어떻게 할 건지와 같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용어들을 거의 매일 쏟아냈는데 나는 그게 너무 귀찮았다. 아무것도 안 한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엄마는 들을 생각이 없는 건지 자꾸 같은 얘기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바쁘다며 전화를 끊어버렸고 엄마의 서운함은 깊이 쌓여갔지만 그때는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그게 그렇게 네 맘대로 하는 게 아니라니까. 어른들 생각이 중요하지"라며 항상 시부모님을 신경 쓰여하셨다. 시부모님은 식당을 두 개나 운영하셔서 쉬는 날 없이 매일 새벽부터 일을 하신다. 늘 바쁘셔서 우리가 알아서 결혼을 준비하는 것에 대해 큰 이견이 없으신 것 같았다. 실제로도 시부모님은 아무래도 괜찮으셨다.

결혼을 준비하던 시기에는 일이 너무 바빠서 일하면서 결혼식을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엄마가 전화로 하는 걱정을 들어주기엔 시간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여유가 없었다. 그땐 엄마의 걱정이 귀찮게만 느껴졌다. 홀로 키운 딸을 시집보내는 엄마의 마음을 들여다볼 여유도 마음도 없었다. 엄마는 서울에서 혼자 10년 넘게 죽어라 일해도 여전히 월세방을 전전하며 사는 딸을 늘 안쓰러워했다. 결혼한다고 했을 때 이제는 고생 덜하겠지 생각해 기뻐했는데, 둘 다 가진 돈도 없이 시작한다고 하니 그게 무척 서운했던 것 같다. 서울은 집값이 비싼데 집은 잘 구할 수 있는지 묻는 엄마에게 "우리 둘 다 돈 없어. 대출 풀로 받아서 빌라 전세 얻을 거야"라고 말하는 딸이 얼마나 야속했을까. 엄마가 남편은 왜 돈을 못 모았냐며 서운함을 내비쳤을 때도 "우리도 돈 없잖아. 오빠 맘에 든다고 해놓고 왜 그래"라며 버럭 화를 냈다. 그때 엄마에게 좀 더 상황을 설명해주고 이해시켜줬어야 했다.

엄마는 항상 대출을 받아서라도 혼수는 다 해줄 거라고 얘기했었는데 나는 그 말이 너무 싫었다. 왜 대출을 받아서까지 시집을 가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딸이 시집갈 때 흠 잡히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늘 귀찮아만 하고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 내내 마음이 쓰리다.

엄마의 마음을 애써 모른 척 한 채 상견례 날이 되었다. 상견례 당일 차가 밀려 우리 가족은 약속시간보다 30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가는 내내 큰일 났다며 사색이 되어서는 발을 동동 굴렀던 엄마는 거의 다 도착해서는 내려서 먼저 걸어가자고 했다. 동생이 차를 주차하고 오는 동안 엄마와 나는 뛰어서 상견례 장소에 갔다. 속으로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될까 싶었지만 엄마를 말릴 수는 없었다. 친구들이 상견례 때 너무 긴장돼서 체할 뻔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나는 밥도 잘 먹었고 분위기도 꽤 좋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상견례를 잘 마친 줄 알았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엄마는 굳은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집 앞에 도착했을 때 엄마가 "맥주 한 잔 할까?"라고 말했을 때 동생과 나는 깜짝 놀랐다. 평소에 술을 한 잔도 마시지 않는 엄마였다. 맥주를 사들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엄마는 컵에 맥주를 따르고 원샷을 했다. 그리고는 펑펑 울기 시작했다. 너무 서럽게 울어서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뭐가 잘못되었는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엄마에게 우는 이유를 물으니 엄마는 "그 집에서는 너무 당연하듯 너를 그냥 싸서 데려가려고 하는 거 같잖아"라며 펑펑 울었다. 그 순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순간들이 떠올랐고 나도 엄마와 같이 울었다. 한참을 울던 엄마는 갑자기 "너 그냥 결혼하지 마"라고 말하며 결혼 결사반대를 외쳤고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졌다. 그동안 모른척했던 엄마의 서운함이 대폭발 했고 엄마가 이토록 서운해하는 결혼을 하는 게 맞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상견례 때 어머님께서 아버님이 하시던 사업이 잘 되지 않아 형편이 어려워졌지만, 지금은 많이 회복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때 남편이 "에이 엄마, 왜 그런 말을 하셔"라며 말을 막은 것이 화근의 시작이었다. 어머님을 두둔하는 듯한 남편의 태도가 자기 가족만 챙기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귀한 딸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와 같은 딸을 존중하는 표현을 듣고 싶었는데 시부모님께서는 너무 당연한 일인 듯 결혼을 받아들이시는 것 같아 서운하셨다고 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해맑게 잘 들어갔냐고 묻는 남편에게 "우리 결혼 못할 거 같아"라고 말해버렸다. 그때부터 양 쪽 집은 모두 눈물바다가 되었고 상견례를 수습하기 위해 모든 가족이 애를 썼다. 남편을 포함한 시댁에서는 엄마가 결혼을 반대하는 것이 시댁에 돈이 없어서라고 오해하셨고 남편은 그대로 엄마에게 잘못된 용서를 구했다. 엄마는 남편의 잘못된 오해에 더 화가 났고 나는 남편에게 그동안 내가 엄마에게 서운하게 했던 일들과 엄마의 마음을 대신해 얘기해주었다. 내 얘기를 가만히 듣던 남편은 "나 이제 알에서 깨어난 것 같아. 어머님의 마음을 이제야 이해했어"라며 주말에 엄마를 뵈러 가자고 했다. 주말까지 기다릴 것도 없이 나는 엄마에게 전화로 남편과 나눈 대화를 전했고 나중에 들었지만 엄마는 그때 이미 마음이 풀렸다고 한다.

주말이 되고 남편과 나는 엄마를 만나러 전주에 갔다. 남편은 엄마와 둘이 얘기하겠다며 잠깐 나가 있으라고 했지만 나는 멀찍이 떨어져 앉아있겠다고 했다.

"어머님, 어머님이 유진이를 떠나보내는 마음이 제 살을 떼어내는 것 같은 심정이라는 걸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남편의 말에 엄마도 남편도 나도 모두 울었다. 엄마는 남편을 안아주었고 우리는 그날 이후 진짜 가족이 되었다. 우리는 가끔 상견례 때 있었던 일을 얘기하곤 한다. 당시에는 너무 힘들었지만 그때 그 일 덕분에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고 가족이 된 것 같다고 말이다. 가끔 엄마와 남편이 나란히 앉아 나를 바라볼 때가 있다. 나를 같은 표정으로 바라보는 두 사람을 볼 때 기분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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