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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마안 May 14. 2021

맡겨지는 것에 대한 부담감, 그리고 책임감

돈 빼고 다 모으는 컬렉터 - 그림 일곱 번째 이야기

작품을 통해 영감을 얻고 작품을 구매해서 좋긴 한데 한편으로는 작품을 바라보며 이렇게 좋은 작품을 과연 내가 소유하고 있어도 괜찮은 걸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작품 가격에 맞춰 지불을 하고 소유를 했으니 소비자 혹은 컬렉터로서 기본적인 도리는 한 셈인데, 작품을 구매할 때마다 늘 소비자가 아닌 이상향을 바라보듯 작아지는 그런 느낌을 받곤 한다. 오늘은 그림을 하나 둘 모으면서 느꼈던 다른 의미의 부담감과 책임감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경제적 관점과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부담감

미술품을 소유하기 앞서 가장 큰 부담감은 뭐니 뭐니 해도 가격. 이 부담감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하다. 돈이 아주 많거나(그렇다고 뭐든 소유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작품에 열정 어린 마음을 갖거나... 하지만 생각보다 이게 끝이 아닌 경우가 경험상 많았다.(나는 확실히 전자는 아니다)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작품을 소유하게 됐을 때, 경제적인 의미와는 또 다른 의미로서의 부담감 같은 것들을 많이 느낀다.

정확히 정의 내리긴 어렵지만, 내가 생각하는 예술작품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한계에 다다르거나,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보다 예민하고 깊이 있게 표현한 결정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내 기준에 이런 기준에 부합하는 작품을 만났을 때는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멍한 순간이 끝나면 알 수 없는 경이로운 느낌을 받고는 작품을 우러러보게 된다. 그렇게 작품 가격을 모두 지불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작품이 주는 무게감을 조금은 의식하게 되는 것 같다.



얻어온 것도 아닌데 왜 부담을 느낄까?

얼마 전 우연히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오랫동안 관심 있게 지켜본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래서 아예 살 마음을 먹고 작품을 보러 간 적이 있는데, 원화 작품을 하지 않는 작가님이시라 그나마 상품가치가 높은 에디션 작품을 고민 끝에 구매하게 됐다.


꽤 오랫동안 관심있게 지켜봤던 마마콤마 작가님의 팝업스토어에서...

때마침 현장에 작가님이 계셔서 직접 설명도 듣고 작품과 함께 인증샷도 찍는 짜릿함을 느꼈지만, 막상 작품의 소유주가 되고 난 후 77개 에디션 중 하나를 소유했다는 부담감이 슬며시 밀려왔다. 개인적으로는 활동 초창기부터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고 가격도 에디션 작품이라 큰 부담이 없었는데... 최근 많은 유명인들이 이 작가의 팬이 되는 걸 봤고, 실제로 나와 같은 시리즈의 에디션을 유명인이 이어서 구매하는 걸 보게 되니 나처럼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양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게 우리 집에 있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기도 했다.

앞서 글에 소개했던 것처럼 조금 무리해서 구매하게 된 그림의 경우는 원화 작품이라 더더욱 그런 느낌이 든다. 실제로 작품을 구매한 이후로도 작가의 시그니처 작품 중 하나로 여러 곳에서 언급되는 걸 보게 됐고 이게 우리 집에 있는 작품이 맞나 싶어 사이즈와 그림의 디테일을 몇 번이고 살폈다. 실제로 얼마 전에 작가님이 전시를 열어 인사차 찾아뵀을 때도 그 작품을 어디선가 소개된 걸 보고 찾는 분들이 많았다는 후문을 전해 주시기도 했다. 소유자로서 안목을 인정받은 것 같은 기쁜 마음이 들면서도 한 편으론 내가 이런 작품을 갖고 있어도 괜찮은 걸까라는 생각을 했다.



작품을 사기 위한 컬렉터의 자격과 부담감, 그런 게 정말 있는 걸까?

엘링 카게, 본캐는 탐험가, 부캐는 컬렉터. 탐험가의 느낌이 물씬 나는 미술품 컬렉션을 소유하며 초보 컬렉터들의 궁금해하는 점을 책으로 잘 소개했다.

문득 엘링 카게(Erling Kagge)라는 노르웨이의 탐험가이자 컬렉터가 쓴 <가난한 컬렉터가 훌륭한 작품을 사는 법>이라는 책이 생각나 다시 한번 책장에서 꺼내 가볍게 읽어 봤다. Q&A 형식으로 초보 컬렉터가 궁금한 점을 나름의 경험에 빗대어 잘 정리한 책인데, 전체 내용이 다 생각나지 않았지만 내가 부담감을 갖는 것에 대한 것과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아 기억을 더듬으며 책장을 다시 펼쳤다.

역시나 스쳐 읽었던 내용 중에 참고할 내용이 있긴 있었다. 책에 따르면 컬렉터가 부담감을 느끼는 일이 지극히 당연한 것처럼 정리한 부분이 정곡을 찔렀다. (물론 한국과 유럽의 환경 혹은 갤러리나 취급하는 작품의 가치에 따른 변수가 있다.) 갤러리스트는 작품을 팔기 위해 내놓지만 작품의 가치와 상응하지 않는 컬렉터에게 작품을 함부로 팔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또 한 번 정곡을 찌르는 결정적인 한 마디.

"... 이 작품은 판매되는 것이 아니라 맡겨지는 것입니다."

실제로 작가가 이런 말을 어디선가 들어서 쓴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한편으로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그림의 소유를 위한 대가를 지불하고도 뭔가 소유가 아니라 맡고 있는 느낌이 들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괜한 우려일 수도 있지만, 내가 작가라도 작가 입장에선 자신의 가치를 잘 표현해 줄 수 있는 컬렉터가 고객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당연히 들 것 같았다. 작가에게는 훌륭한 컬렉터가 알아봐 주고 작품을 구매해 주는 게 일종의 레퍼런스 또는 훈장과도 같은 이력이 될 수 있고 자신의 부가가치를 높이는데 크게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혼자 빛나는 별이 없듯이, 영향력 있는 고객의 선택은 가치에 대한 더 이상의 검증을 불허할 만큼 확실한 물증이며 작가 역시 반드시 노력해야 하는 부분 중 하나이다.



맡은 사람의 부담감을 느끼며 생각하게 된 것들

물론 아직 그런 자격을 질문받을 만큼의 컬렉션을 보유한 것도 아니지만, 이 부담감에 대한 생각과 책 속의 조언을 통해 현재 나 자신을 많이 돌아보게 되었던 것 같다. 단순히 내가 식지 않는 열정과 금전적 여유가 있으면 어떤 작품이든 컬렉팅 할 수 있다고만 생각했지, 이 자격을 내가 얼마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그리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는 이 부담감을 나 스스로에게 좋은 자극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스스로 좋아서 산 그림의 가치를 스스로 지키기 위해, 더 나아가서는 혹시 모를 좋은 작품과의 만남을 위해, 컬렉터 역시 마주하는 작품들 앞에서 격이 맞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지난번에 소개한 머야쓰 다이스케나 오늘 잠깐 소개한 엘링 카게와 같이 컬렉터로서의 건강한 자기 소신과 철학을 굳게 갖기 위한 노력, 그리고 부캐가 아닌 본연의 내 삶이 내가 좋아하는 작품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최근에 작품을 통해 관계를 맺은 작가분들을 다시 만나는 시간들을 통해, 그저 작품을 구매하는 일은 하나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시작점에 불과함을 생각하게 됐다. 단순 소비자 혹은 고객이 아닌 작품을 맡은 사람으로서의 적당한 부담감과 책임감을 가질 때, 소장한 작품의 가치를 한층 더 깊게 느끼고 작품을 오래오래 즐길 수 있을뿐더러 그런 과정을 통해 자기 자신의 격도 한층 높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아직 많지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을 맡아서 즐길 수 있음에 새삼 감사함을 느끼며, 아직 좀 더 먼발치에 있는 목표에 걸맞은 나를 부단히 가꾸어 가도록 노력할 것을 다짐해 본다. <그림 편 Fin>


* 다음 주 부터는 새로운 수집 리스트 - 전시도록 에 관한 이야기를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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