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시 30분 이제는 눈이 자동으로 떠진다. 눈이 떠지는 대로 노트북 앞에 선다. 온 스위치를 누르고 부팅되기를 기다리면서 "노트북 바꿔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한다. 거실을 지나 주방으로 간다. 컵에 물을 따라 마시면서 아일랜드 식탁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건강보조제 중 나에게 할당된 비타민과 프로폴리스를 입에 털어 넣는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 약을 아직은 안 챙겨 먹어도 되는 것에 잠깐 감사한 생각을 한다.
안방에서 주무시는 절대 권력자의 기척을 살핀다. 아직 곤히 주무신다. 감히 커피 머신을 켜지 못한다. 이 시간에 커피 머신을 켤 수 있는 날은 거의 없다. 가끔 운 좋은 날은 절대 권력자께서 깨어 계신 날이다. 그래도 커피 머신을 돌리려면 옆방에 기척을 또 살펴야 한다. 옆방에서 곤히 주무시는 아드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출근을 하던 때는 살피지 않던, 아니 살펴야 할 필요가 없었던 그 당시는 신경 안 써도 되는 사안들이었다. 지금은 중대 사안이다.
이렇게 이른 아침시간 안방의 절대권력자와 옆 방 아드님의 눈치를 살피는 것에 익숙해져 간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출근을 벼슬처럼 했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30년이 넘는 봉급쟁이 생활을 하는 동안 아침을 거른 적이 별로 없다. 나에게 출근길에 밥상은 매일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가 받는 보상이자 루틴 같은 거였단 생각이 든다. 오늘도 살아 돌아오겠다는 굳은 다짐과 맹세를 하며 군화 끈을 동여 메는, 그러면서 내 눈치를 살피는 아내에게 위안을 받는, 마지막 사회적 기업에서의 5년을 빼고는 늘 그랬다. 유독 회사 생활을 힘들게 했던 나는 그만두겠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다.
브런치스토리 건물의 작은 방에 공짜로 세 들어온 게 두 달이 조금 넘었다. 건물에 비해 입주민이 엄청 많아 보인다. 그런데 무료 세입 평수가 다양하게 있는 것 같다. 1층 럭셔리 공간을 도서 매장으로 공짜로 쓰는 분들도 있다. 부럽다. 별 쓸데없는 상상을 한다. 이내 노트북 자판을 두드린다.
이렇게 이른 아침 글을 쓰는 것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앗! 잠깐 안방을 차지하고 계신 절대 권력자의 기척이 있다. 지금 시각 07시 30분, 조금 이른 편이긴 하다. 커피 머신을 돌려야겠다. 그런데 짠하다. 우리 권력자께서는 그냥 두면 하루 종일도 주무시는 분이었다. 잠이 짧아지셨다. 짠하다. 아! 월요일이구나. 그림 공부 하러 가시는 날이다. 일주일에 한 번 그림을 그리신다. 11월에는 같이 그림 그리는 분들과 전시회도 예정되어 있다. 젊은 시절 가끔 주절거리던 대로 되어가고 있다. "권력자께서는 그림을 그리시오. 나는 글을 쓰겠소" 이제 권력자의 그림이 들어간 책만 내면 말대로 되는 거다. 잠깐 신기하다. 꿈꾸는 대로 되어가고 있는 게 하나 더 생겼다.
이렇게 가끔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는 것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퇴직 후 집에 들어오면서 권력자께 약속드린 게 하나 있다. 가끔은 어기기도 하지만 대부분 충실하게 지키고 있다. 다름 아닌 수동식 식기 세척기 역할이다. 권력자께서는 싱크대 우측 하단에 애초부터 번듯하게 세팅되어 있는 전자동 식기 세척기를 주방용품 수납공간으로 활용하고 계신다. 공간활용의 귀재이시다. 수동 식기세척 초기에는 혼도 많이 났다. 기름기가 안 빠졌다. 소리가 시끄럽다. 그중 가장 크게 혼났던 건 애지 중지 아끼시는 곱디고운 친구들을 깨 먹었을 때다. 사실 종류별로 여럿 박살 냈다. 내면이 깊은 면 그릇에서부터 소스 담는 작은놈까지 두루두루 여럿 쓰러져 나갔다. 얼마 전부터 쓰레기봉투에 만신창이가 되어 널브러져 나가는 주방의 친구들은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