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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동하 Oct 13. 2024

여성전용 필라테스에 출입합니다

한 점의 부끄러움 없는  당당함

익숙해져 가는 것들익숙해져 가는 것들

익숙해져 가는 것들

 골프를 치러 간지도 꽤 되었다. 이번 달 말 대구의 오랜 친구와 약속이 되어있기는 하지만 거의 1년 만이다. 시간은 여유가 생겼으나 재미도 예전만 못하고 더더욱 멀리 하게 된 까닭은 오래된 등 쪽의 통증이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골프 연습을 하다가 생긴 것 같다. 한동안 심한 상시 통증에 꽤나 고생을 했다. 동네 근육풀이 전문샵에서부터 정형외과 물리치료, 도수치료까지 섭렵하고도 낫지를 않아 두 곳의 대형병원 척추 CT에 MRI까지 거치고 끝내 소소한 사안 외에 큰 문제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통증이 사라지지 않은 상태였다. 자가치료 밖에는 답이 없던 상황에서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었다. 그 하나가 집안에 자가치료가 가능한 기기를 들이는 방법이었다. 등 위주의 케어가 가능한 기기를 구입했다. 다른 한 가지는 운동이다. 그 두 가지 덕에 지금은 컨디션에 따라 미미한 불편함이 있을 뿐이다. 상시 통증은 사라졌다.

이제는 그 미미한 상시 불편함에도 익숙해져 간다.


 2023년 07월 24일,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두 가지 선택지 중의 하나인 운동이 필라테스였다. 워낙에 움직임이 적은, 정적인 아내가 먼저 시작을 했다. 웬일일까? 운동이라고는 그저 청소운동, 밥 짓기 운동, 장보기 운동과 일상적 숨쉬기 운동 외에는 할 생각도 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다. 골프 좀 같이 해 보겠다고 조르고 졸라서 레슨도 받아 보게 하고 잘 생기고 값 비싼 수제 명품(아내는 모든 구매 상품 선택의 제1 조건은 언제나 디자인이다.) 클럽도 장만했으나 결국 필드도 한 번 나가보지 않은 채 골프를 그만뒀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골프를 했다고도 할 수 없으니 골프를 그만뒀다는 표현도 아닌 것 같다. 아내는 아직 골프를 그만둔 것은 아니라고 한다. 평생에 아내와 스크린 골프라도 같이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올는지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나는 오래전에 포기한 상황이다. 어쩌다가 하게 되면 기쁜 일이다.


 나이 들어가면서 근력유지를 위해 운동이 중요하다는 유튜브 어느 의사분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한 아내는 생존의 목적으로 필라테스를 시작했고 낸 돈이 아까운 아내는 예상과는 다르게 빼먹지 않고 열심히 다니고 있다. 아내는 키는 작은 편이 아니나 살짝 어좁이에 미세하게 어깨를 움츠린다. 온몸의 근육은 솜 사탕 같이 푹신푹신했었다. 아내가 필라테스를 시작한 지 1년여 지난 어느 날 문득, 조금 과장해서 활짝 펴진 아내의 어깨를 직면했다. 아내의 종아리는 어느새 솜 사탕에서 스펀지 정도로 변해 있었다.


 필라테스가 뭐지? 궁금해졌다. 필라테스는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영국의 랭커스타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독일인) 요제프 필라테스(Joseph H. Pilates)는 그곳에서 포로들의 운동 부족과 재활 치료를 위해 침대와 매트리스 등 간단한 기구만으로 할 수 있도록 고안한 운동이라고 한다. 재활치료에 눈이 갔다. '재활치료'!

 

 등 쪽의 상시 통증을 달고 사는 나로서는 매력적인 단어였다. 사실 그전부터 아내의 동참 권유를 거절했었다. 결국 '생존필라'에 동참했고 우리 아내와 나는 그렇게 필라테스 동반자가 되었다. 그렇지만 아내의 단호한 거부로 아직 단 한 번도 같은 클래스에서 수업받은 적은 없다. 나도 뭐 꼭 같은 수업을 받아야 할 필요는 없다. 

 

필라테스 회원 가입에 앞서 아내에게 했던 질문은 딱 한 가지다.

"남자도 있어?"

"응, 아마 있을 거야"

"아니~ 확실하게 말해줘"

"응 있어. 내가 봤어"

"그래? 진짜로?

"응"


 그렇게 나는 철석같이 아내를 믿고 '생존필라'를 시작했다. 시작한 지 1년 하고도 4개월 여가 지난 지금까지 나는 딱 한 차례 남자를 목격했을 뿐이다. 그것도 프로모션 기간 시범 수업에서 이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나는 유일한 남자 수강생이다. 아내에게 완벽하게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다니고 있는 것은 효과를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속았다는 사실을 알고도 그만두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초기에 진행한 '1:1 수업'이었다. 그냥 때려치우기에는 낸 돈이 너무 아까웠고 하다 보니 할 만했기 때문이다. 혹여 남편을 필라테스 세계로 데려가서 안정적인 정착을 시키고 싶은 분이 있다면 초기 10회 정도의 1:1 수업을 추천한다. 빼도 박도 못하게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어느 날 주인이 바뀌었다. 그리고 새 간판을 걸었다. 나는 어쩌라고??

잔여기간만큼의 환불 정산을 요구했으나 데스크에 젊은 남성 실장님은 괜찮다고 그냥 다니라고 한다. 나는 보무도 당당하게 여성전용 필라테스에 입장을 허가받은 최초의 남성이다. WOW!! 영광스럽다. 더불어 이 자리를 통해 '여성전용' 간판을 보고도 내 쫒지 않고 수업을 받도록 허하신 회원님들께 깊이 감사를 드린다. 더더욱 감사한 분들은 '여성전용' 간판을 내건 이후에 등록한 회원님들이다. 이 분들은 2,3일에 한 번씩 얼굴을 디미는 K-아재의 당당한 발걸음에 얼마나 황당할 것인가?


이제는 여성전용 필라테스에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출입에도 익숙해져 간다.


#부끄러움 #여성전용필라테스 #재활운동

#보무당당 #황당 #감사 #회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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