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에서 강남까지의 출퇴근은 정말 고역이다. 출퇴근 시간의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는 굳이 엄살을 떨지 않아도 그 고난의 행로는 아는 사람은 다 알정도로 빡세다. 왕복 매일 3~4시간을 차 안에서 보냈다. 주된 일자리 퇴직까지 마지막 5년을 그렇게 다녔다. 운전석을 최대한 낮추고 타는 나쁜 습관 때문이기도 하지만 왼쪽 고관절에 이상이 생긴 것도 하루 3~4시간의 출퇴근 때문이기도 하다. 그 이후 5년의 사회적 기업은 강북권이었다. 만약에 강남권이었으면 입사를 고민했을 것 같다. 매일 편도 1시간 언저리의 버스와 지하철의 출퇴근이 너무 좋았다.
나는 얼죽아다. 얼죽아를 즐기는 이유는 내 안에 화가 많아 자체 발열기능이 있기 때문은 아니다. 맛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뜨거운 커피는 처음과 끝이 너무 다르다. 내가 제일 안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매일 아침 출근 하자마자 제빙기에서 얼음을 컵에 담고 커피를 내린다. 사회적 기업 5년 동안의 매일매일의 소소한 행복이었다.
지나고 보니 그랬다.
고정된 출퇴근 시간,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군무(群舞)도 익숙했던 하나의 풍경이었고 지하철 도착 때 자동으로 흘러나오던 음악도 정겨운 일상이었다. 한 여름 무더위에 지하철을 타고 한숨 돌리던 에어컨 바람도 소소하게 행복한 일상이었다. 지나고 보니 그랬다.
나는 매일 아침밥을 먹고 출근하는 사람이었다. 결혼 전부터 습관이 되어 온 아침밥은 고맙게도 결혼을 해서도 줄곧 거르지 않았다. 하루라도 거르고 출근하는 날이면 회사 근처에서 김밥이나 라면으로라도 아침 공복을 채웠다.
퇴직을 하고는 모든 일상의 루틴이 사라졌다. 매일매일의 출퇴근 길의 사람 구경도, 지하철의 안내 방송도, 출근과 동시에 내리는 아이스커피 한잔도 사라졌다. 더 이상 이른 아침의 식사도 필요 없어졌다. 오랜 기간 동안의 일상의 루틴이 사라진 것은 지나고 보니 생각보다 커다란 상실이었다.
사라진 일상의 루틴 대신 찾아온 것은 '차고 넘치는 자유로움'이었다. 처음에는 너무 좋았다. 더 이상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었고 충분한 늦잠은 덤이었다. 혼잡한 대중교통의 피곤함도 없으니 한마디로 개꿀이었다. 친구를 만나 낮술을 하기고 하고 잠깐의 여행도 다녀오고 동네 도서관에 들러 책도 읽고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럭저럭 지낼만했다.
차고 넘치는 자유로움이 감당하기 힘들어졌다
그러나 그것도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불과 서너 달이 되기도 전에 차고 넘치는 자유로움이 감당하기 힘들어졌다. 새로운 루틴을 만들어야 헸지만 그게 그렇게 쉽지 않았다. 운동도 2~3시간 이내였고 책을 보는 것도 짬짬이 보는 것에 익숙해 있었다. 없는 시간을 할애해서 보는 재미가 있었던 것 같다. 막상 대놓고 보려니 오히려 재미가 덜했다.
예정된 퇴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커다란 영향이 컸던 루틴은 역시 출근과 일이었다. 출퇴근과 일이 없어진 것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공존했다. 직장생활을 벗어나 자유로운 시간을 가지게 된 해방감과 새로운 기회를 탐색하는 과정(일정 시간이 지난 후였지만)에서의 재미라는 부분은 긍정적인 면이었고 몰두할 일이 없어짐에 따른 상실감과 사회적관계에 있어서의 고립감은 부정적인 면이었던 것 같다.
새로운 루틴을 가지는데 꽤나 시간이 걸렸다. 하고 싶은 것을 찾아 새로운 목표를 정하고 자기 계발을 포함한 구체적인 일상의 계획을 세우는 등을 통해서 새로운 일상의 루틴을 만들고 그것에 익숙해져 갔다.
경험적으로 새로운 루틴에는 반드시 포함시켜야 하는 세가지가 있다.
첫째는 지속적인 학습이다. 평소 관심이 있던 취미에서 출발해도 좋고 새로운 목표에서 출발해도 좋다. 학습을 통한 성장이 필요하다.
둘째는 운동을 통한 건강유지도 매우 중요하다. 자기에게 맞은 운동을 찾아 건강을 유지해야 한다.
셋째는 커뮤니티 참여다. 어떤 형태의 모임이든 지속적인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최근 중장년 대상의 커뮤니티 플랫폼도 비지니스 차원에서 여러개 운영되고 있다. 여행 등 취미와 연결된 플랫폼도 있고 관심분야에 대한 학습 위주의 플랫폼도 있다. 독서모임도 좋고 관심 분야의 취미 모임도 좋다. 이런 커뮤니티는 단순히 사회적 관계유지 뿐만아니라 새로운 정보교류와 다양한 커리어를 가진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얻는 인사이트는 무엇보다 소중한 기회가 된다.
"미래의 비밀은 일상에 숨어 있다." - 마이크 머독
그리고 이러한 일상의 루틴은 반드시 미래를 위한 새로운 기회와 가능성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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