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가 5살 때 오랫동안 다니던 회사를 나와, 회사라고 하기는 뭣한 작은 회사를 차려 기존에 하던 일들을 계속 하고 있었다. 바쁠 때는 꼼짝마일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이의 급한 일을 위해 시간을 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어쩌면 나도 아이의 본격 육아와 교육을 위해 퇴사를 하고 새로운 일을 하게 된 케이스다.
많은 워킹맘들은 나처럼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갈팡질팡 하게 된다. 과연 아빠들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다고 해서 이런 고민을 할까? 아마 상상조차 해본 아빠는 거의 없을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남자들은 집안 경제에 더 큰 부담을 갖고 있다. 때문에 아이의 교육비 등으로 어깨가 무거워지면서 더욱이 생각하기 힘든 상황일 게다. 하지만 워킹맘들은 마찬가지로 집안 경제에 큰 부담을 갖는 것과 동시에 학교에 입학하고 발생하는 크고 작은 일들은 대부분 엄마의 일이다.
전업주부들도 쉽지 않은 초등 저학년 시기, 워킹맘은 두 배 세 배로 힘든 시기다. 아이가 학교를 다니는지 내가 다니는 건지 헷갈릴 정도다.
아이가 학교를 다니는 건지
엄마가 다니는 건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던 때보다 훨씬 이른 1시도 되기 전에 아이가 하교를 하게 된다. 사실 이 자체가 멘붕이다. 1시도 되기 전 하교한 아이는 엄마 아빠의 퇴근 전까지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조부모의 도움을 받거나 돌봄교실에 보내지 않을 경우, 워킹맘들은 학원 뺑뺑이를 시켜야 할 수도 있다. 일명 학원 뺑뺑이를 시작하기 위해선 상당히 고난도의 과제가 주어진다.
‘아이를 안전하게 픽업할 수 있는 학원인가?
평판은 어떤가?
학교와의 거리는? 함께 다닐 수 있는 친구는 있는가?'
이런 여러 가지를 고민해서 원장 선생님과 상담을 통해 여러 곳 중 하나의 학원을 선택했다고 할지라도 고민이 끝이 아니다. 학교가 끝나고 학원에 도착했는지, 매일매일 그 시간 즈음이면 신경이 곤두서게 된다.
혹여나 시간이 지나도 학원에 도착하지 않았거나 중간에서 아이가 사라질 경우, 엄마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아이의 24시간은 엄마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30분이 3일 같았던 그 때
나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힘든 순간이다. 당시 아이는 휴대폰을 갖고 있지 않고 있었는데, 피아노 학원에서 연락이 왔다.
“어머니, 교문에서 oo이를 늘 만나서 데려오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요.”
머리가 하얘지고, 뒷목이 뻣뻣해졌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면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헉, 아이가 어디로 갔을까요? 주변에 놀이터나 그런 곳도 찾아봤나요?”
“네, 근데도 안보여요. 혹시 전화 없었어요?"
멘붕이라는 말 밖에. 다시 한 번 주변을 잘 찾아봐달라고 얘기했지만,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찾아다니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잠시 후에 중요한 회의가 있었고, 조퇴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럴 때 워킹맘들은 미친다. 아이와 관련한 모든 연락은 엄마에게 오고, 엄마가 해결해야 한다. 동시에 회사일도 내가 해결해야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혹여나 아이가 사라졌다고 남편에게 얘기할 경우,
“당신, 뭐했어? 어떻게 했기에 애가 사라져!”라고 말할 게 뻔하다.
왜냐하면 육아, 특히 초등 육아는 엄마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불량식품을 먹는 것도, 급식을 먹다가 목구멍이 가시가 걸린 것도, 친구가 없는 것도, 이상한 친구를 만난 것도, 받아쓰기를 틀리는 것도 모두 엄마 책임이다.
다행히 친구를 따라 편의점에 가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친구엄마에게 얻어 먹고 해맑게 교문으로 온 아이와 피아노 선생님은 상봉했고, 30분도 안돼 해프닝으로 끝났다. 하지만 그 30분이 몇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과연 그 끝은 어디일까?
게다가 초등 저학년 때는 학부모 참관수업과 총회, 교실 청소, 녹색어머니회 등 다양한 학교 활동에 엄마들이 참여해야 할 뿐 아니라, 매주 시행되는 받아쓰기 시험과 알림장을 챙기고 제때 사인하거나, 실내화 등 준비물을 챙겨서 보내야 한다.
워킹맘들의 경우 이 모든 것을 바쁜 업무 중에 신경써야 하고, 퇴근 이후에도 아이의 숙제 봐주기와 챙겨야 할 것들로 쉴 틈 없는 하루하루가 이어진다.
게다가 방학이라도 맞이하면 방학 한 달 전부터는 방학 중 아이의 스케줄을 어떻게 보내게 해야 할지 폭풍 고민이 시작된다. 방학 중 오전에 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은 이미 한 달 전부터 5분 만에 마감이 돼버리고, 이 타이밍을 놓친 워킹맘들은 아이들을 집안에 방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나름대로는 각종 정보와 빠른 스피드를 동원해 아이를 친구 아이들과 함께 방학에 함께 할 수 있는 스포츠프로그램 등을 등록시키곤 했다. 가장 큰 문제는 방학 중 아이의 점심이다. 그래서 매일 매일 점심을 미리 챙기거나, 친구와 같이 먹게 하거나 등 하루도 아이의 식사 고민에서 해방된 적이 없는 것 같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냈음에도 나는 남편과 주변 엄마들 사이에서 ‘자유방임주의 엄마’로 불린다. 남편이 만약 내가 한 것의 10분의 1이라도 초등 아이의 육아와 교육, 사회활동에 참여했다면 아이 교육에 열성인 아빠로 불릴 것이다.
‘최대한 아이 스스로 하게 하자’ ‘과락’만 면하자는 마음으로 한 육아와 교육이었음에도
다시 하라면 정말 자신이 없다. 남편은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어느 정도 적당히는 해야지~”
과연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적당히’일까?
엄마에게 아이를 ‘어느 정도 적당히’ ‘웬만큼 수업에 따라가게 만들기’ ‘방학 때도 아이가 공부도 노는 것도 적당히 하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 줄 남편들은 알기는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