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어릴 때부터 저렇게 공부를 시키고, 스트레스를 줘? 어릴 때는 무조건 잘 뛰어노는 게 최고야.”
나는 친구들을 만나거나 또래 엄마를 만날 때 늘 저렇게 말하곤 했었다. 나는 안 시킨 척, 조급하지 않은 척, 우아한 척 그랬다. 사실 기본적인 마음은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아이가 7세가 되자 나도 슬슬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우리 아이는 7세가 돼도 한글을 제대로 읽거나 쓰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또래 아이들은 대부분 자유롭게 책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이가 친구들에게서 받아오는 생일축하 편지는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그 유창한 한글실력에 말이다.
‘아니, 우리 애는 아직 한글도 제대로 못 읽는데, oo이는 속 깊은 얘기까지 써서 친구한테 줬네?’
그럴 때의 당혹스러움은 조급함을 불렀고, 아이가 진짜 공부를 시작할 때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본격적으로 사교육을 시작한 시기도 그 때였다. 사실 5세 정도부터 한글단어카드도 보여주고, 지나가는 간판도 알려주고, 매일 동화책을 서너 권을 읽어줬건만 아이는 전혀 한글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남편은 “국문학과를 나오면 뭐해? 애 한글도 하나 못 가르치면서….”라고 핀잔을 줬다. 남편도 조급함을 느끼는 눈치였지만 ‘그건 엄마가 할 일’이라며 늘 비켜서 있었다.
“한글 떼기?
그건 엄마가 할 일”
사실은 5세가 넘어가면서 남몰래 한글을 가르쳐보려고 노력했건만 번번이 허사였다. ‘신기한 oo나라’를 6개월 이상 시키기도 했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지렁이’를 가르키며 “oo아, 이게 무슨 글자지?”하면 칸수만 맞춰서 “배에엠~”이라고 해맑게 외치곤 했다. 한글을 모른 채 그림만 보고 지레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신기한 oo나라’도 우리 아이에겐 먹히지 않았다. 나는 결국 포기하고는 때가 되면 깨우치겠거니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곤 했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자 조급함이 절정에 다다랐다.
“oo아, 요기 집 앞에 한글도 가르쳐주고, 숫자도 가르쳐주는 학원이 있던데 거기 다닐래? 친구들도 많으니까 재미있을 거야.”
아이는 별 거부감 없이 피아노학원에 이어, 한글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것도 매일.
히지만 학원을 다니고 7세 아이들은 대부분 한두 달이면 한글을 뗀다고 하던 학원 원장님의 자신감이 우리 아이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급기야 6개월 정도 다녔을 때쯤 상담을 갔다.
“다른 아이들은 한두 달이면 뗀다고 하던데….”
“어머니, oo이가 말도 잘하고, 생일도 빠르고 그런데... 학습이 조금 늦네요. ^^; 그래도 학교 가기 전까지는 뗄 수 있도록 지도해볼게요.”
“네, 부탁드려요.”
“oo이는 숙제도 좀 내주고 해서 속도를 높여볼게요!”
아이의 숙제는 늘어갔고, 집에서도 한글 연습장을 몇 장씩이나 풀어야 했다.
친구들과 놀다가도 밤늦게 숙제를 붙들고, 졸린 눈을 비벼가며 공부하는 아이를 보니 안쓰럽기도 했지만, ‘아니 7살이나 됐고, 학원을 계속 보냈는데도 아직도 한글도 못 뗀 거야?’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아이를 다그치게 됐다.
이런 시간을 몇 달을 보냈을까. 그렇게 다른 집 아이들은 쉽게 뗀다는 한글을 1년 만에 겨우겨우 떼고 학교에 갈 수 있었다.
늘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지 말자, 어릴 때는 놀아야 해, 좀 늦으면 어때? 라는 말을 달고 다녔지만, 나도 어쩔 수 없는 평범한 엄마였던 것이다.
이렇게 아이의 한글떼기 프로젝트는 끝이났지만, 워킹맘들의 숙제는 끝나지 않았다. 진짜 숙제는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