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무슨 일이 생겨도 놀라지 않겠다' 이런 생각을 했다. 초연하고 싶어서였다. 화요일에 엄마가 건강검진을 할 때도 그랬다. 어떤 일에도 놀라지 않겠다 다짐했다. 그건 오래전 오진으로 위암 진단을 받은 후 시술을 했던 엄마가 올해 들어 계속 속병으로 고생해서 인지도 모른다. 위와 대장 내시경을 끝내고서도 1시간 가까이 다 되도록 엄마가 나오지 않았을 때도 속으로 되뇌고 있었다. 나는 놀라지 않을 거다, 라고. 그렇다. 사실은 초연하고 싶은 것보다 쫄아서였다. 사실은 무슨 일이 생기는 게 너무 두렵다. 그리고 나는 지쳐있다. 아직 자세한 검사 결과가 나오진 않았고, 위와 대장에서 용종을 떼어내긴 했지만 의사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우려하던 일이 생기지 않은 것이다.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으니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엄마 아빠와 종일 식사를 같이 했다. 아침엔 냉동 치킨을, 점심엔 짜파게티에 달걀프라이를 '척' 올려 먹었다. 이어 간식으론 새우구이를 해 먹었고, 저녁으론 수육을 먹었다. 즐거운 금요일이 아닐 수 없다. 식사 관련 문장만을 본다면 행복이 충만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기뻐서라기 보다는 순간 순간 기쁘기 위해서 그랬다고 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다 말할 순 없지만, 아빠에게도,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고민과 좌절의 시기인지도 모른다. 아빠는 오늘 "출근할 때는 힘 있게 나갔다가도 집에 올 땐 울상이 된다"며 "마음을 고쳐먹어야겠다"라고 말했다. 대신 "오늘 얼마를 벌러 나간다"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고 한다. 요즘 우리 식구들에겐 돈이 최고니 최고의 문장인지도 모를 마법의 문장이다.
다들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있다. 행복해 보이는 저 사람도 사실을 그게 전부가 아닐지 모른다. 단지 그 사람 역시 행복해지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알고 있는 한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은 그만큼의 노력을 하고 있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스트레스 관리가 쉽다면 세상에 아픈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계속 노력할 일이다. '관건은 스트레스 관리다' 오늘 내가 계속 되뇐 문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