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슬픔
중학교 친구 아무개, 대학 동기 아무개, 회사 동기 아무개. 친구를 이렇게 간단히 설명할 때도 있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는 관계가 있다. 소중한 사람에게 특별한 사람을 설명할 땐 더더욱 그렇다. 어느 날 한 친구를 설명하며 '가장 자랑하고 싶은'이란 수식어를 사용했다.
친구와는 초등학생 시절 복도에서 몇 번 마주쳤을 뿐 인사를 나누는 사이는 아니었다. 진짜 친구사이가 된 건 중학생 때였다. 나는 마음에 드는 친구가 있으면 말을 걸고, 종종 적극적으로 애정공세를 펼치기도 했다. 그렇다. 내 애정공세를 받아야 했던 친구였다. 우린 반학기 정도를 단짝처럼 지냈다. 그러다 내가 인천에서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종종 연락하게 되었고, 그보다 드문드문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스무 살이 되었다.
성인이 되면서부터는 자주 만나는 시기와 가끔도 잘 보지 못하는 시기가 반복됐다. 누군가 바쁘거나 누군가 아파서였고, 가끔은 소홀해지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몇 달씩 거의 매일매일 함께 운동을 다니기도 했다. 먼 거리를 오고 가는 번거로움을 감수할 만큼 누군가 힘들었고, 함께 재잘대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받던 반짝이던 때였다. 보통의 오랜 우정의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가족의 대소사를 함께 챙기고, 서로의 행복을 응원했다.
친구의 어머니는 친구가 열아홉 살이던 해에 백혈병 진단을 받으셨다. 가족들은 어머니 곁을 번갈아가며 지켰고, 다행히 건강히 퇴원하셨다. 그럼에도 독했던 항암 치료를 받은 탓에 온몸이 약해졌다고 친구는 자주 말하곤 했다. 완치 판정을 받기까지의 시간 5년. 친구의 그 시간은 얼마나 더디 갔을까. 그 후로도 어머니는 가끔 이곳저곳이 아프셨다. 그때마다 친구는 깊은 한숨을 삼키며 덤덤히 소식을 전했다.
친구에게 '가장 자랑하고 싶은'이란 수식어를 붙인 이유가 있다. 친구는 힘든 시기를 버텨내며, 스무 살이 되던 해부터 직장인의 삶과 가장의 삶을 놓지 않았다. 이 사실만으로도 대단하지만 더 큰 박수를 보내고 싶은 이유는 자신의 처지만을 비관하거나 세상을 원망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그런 친구가 이십 대 후반부터 일과 대학 공부를 병행해 올해 졸업장을 받게 됐다.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을까.
슬픔 뒤에 반드시 기쁨이 찾아온다면 모든 어려움을 조금은 수월하게 버텨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행운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5개의 슬픔과 5개의 기쁨이 있을 때 누군가에겐 슬픔과 기쁨이 엇비슷하게 찾아오지만, 누군가에겐 4개의 슬픔이 먼저 찾아오는 것 같다. 혹여나 연달은 슬픔을 먼저 만났다면 꼭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그 시기를 버텨온 당신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기쁨이 당신을 찾아갈 채비를 하고 있다. 이제 슬픔은 단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반면 5개의 기쁨이 오직 당신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