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의 향
엄마는 그 시기에 나는 것들을 좋아한다. 계절의 흐름에 맞게 피어나는 꽃들 뿐 아니라 제철 나물과 생선, 조개류 등의 해산물을 좋아한다. 언제부터 엄마는 그것들을 좋아하게 됐을까. 생각해보니 들어본 적도 물어본 적도 없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시사철 계절과 상관없이 맛볼 수 있는 과일과 생선 등이 많아진 현재와는 달리 엄마 세대에는 꼭 그때에만 맛볼 수 있는 것들이 있었으리라. 그때마다 엄마는 몸과 마음에 새겼을 것이다. 꽃이 피는 순서와 봄나물들의 맛과 향을. 지금의 나는 잘 모르는 것들을 말이다. 기억 한편을 지켜준 그것을 엄마 또한 때로는 습관처럼 의리로 찾는 것이리라, 나는 생각했다. 봄마다 엄마를 찾아와 주었던 개나리와 철쭉을, 여름마다 입을 즐겁게 해주던 새콤한 자두와 달콤한 포도를, 가을마다 영양보충을 도와주던 게, 홍합, 꼬막을, 겨울마다 설탕보다 더 달다며 녹아버릴까 좋아하던 겨울무를.
반면 나는 아직 멀었다. 계절마다 찾는 것이라곤 여름 과일 복숭아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게 많지 않다. 사실 여름마다 복숭아를 찾게 된 것도 오래된 일도 아니고. 그래서일까. 얼마 전 엄마가 철쭉을 보며 봄에 피는 꽃을 순서대로 읊었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원래는 꽃과 꽃 피는 사이가 더 멀어야 하는데 이번엔 유난스럽게 꽃들이 빨리 폈다는 걱정의 말도 덧붙었다. 꽃이 피는 순서를 셈하지 않았던 것처럼 조개류들의 철도 잘 알지 못한다. 내가 계절과 시간의 힘을 참 모르고 있었구나, 싶었던 것은 내일 새벽에 도착할 꼬막과 홍합의 철을 새삼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뒤늦은 깨달음 때문이었다. 홍합은 10월부터 12월까지가 꼬막은 11월부터 3월까지가 제철이라 한다(출처: 네이버 통합검색 계절별 제철요리).
사실 소란스럽게 홍합과 꼬막을 주문한 것은 평소 해산물을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서였고, 일본이 오염수를 방출하면 더 그것들을 즐기지 못할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사실 어패류를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 한동안은 경제적 부담이 덜한 해산물을 골라 식탁에 올려볼까 한다. 엄마의 작은 기쁨이 사라지지 않길 바라면서. 모두 자신의 자리를 잃지 않길 기원하면서. 보고, 먹고 즐길 수 있는 기쁨을 주는 자연이 훼손되지 않길 기도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