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사에 Oct 26. 2021

여행과 현실 사이의 건널목

과도기를 지나면 변화가 찾아올까

이 여행기는 꽤나 오랜 시간동안 2017년에 다녀온 미국 여행에서 멈춰있다. 그 후로 두 번의 여행을 더 떠났지만 긴 시간 동안 그에 대해 적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미국에서 돌아온 후에 겪었던 일들을 복기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또한 코로나 이후로 여행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여행의 설렘을 떠올리는것이 어려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좋았던 추억을 떠올려서 무엇할까. 지나간 일 일뿐인걸.' 코로나로 여행이 멈춘 뒤로, 내가 얼마나 자주 현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훌쩍훌쩍 여행을 떠났는지 알 수 있었다.


암울한 시기에 비현실적이게도 매해 나타나줬던 무지개가 주던 위로.


 '아 당장 홍콩 가는 비행기 표를 끊으면 다 나아질 것 같다.'

'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가고 싶다. 관광지 말고 그 동네의 카페에 들어가 하루 종일 책이나 읽으며 이방인에게 적당히 주어지는 관심과 친절을 누리고 싶다.'


 이상하게도 여행이 가능하던 시기엔 정말 그러고 나면 뭔가가 나아지는 것 같았다. 여행을 다니면 다닐수록 한국에서의 삶보다는 언제 떠날지도 모르는 짧은 여행을 바라보며 살았다.


 그 마음은 쉽게 포기가 안돼서, 코로나가 터지고서도 해외 취업을 알아봤고 승무원이 되겠다며 여기저기 수소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몇 년째 방방 뜨던 마음은 금세 모양을 바꾸었다.

‘철없는 동경같은 것은 이 기회에 접어버리고 이젠 어른처럼 행동해.’

 지난  년간 여행하며 꿈꾸듯 설렜던 마음을 모조리 외면하고 폄하하기 바빴다.  시절 정말로 행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코로나가 처음 터졌을 땐, 사진을 찍는 것이 위로가 되는 듯 했다. 반복되는 일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기에. 한국과 서울에 대한 애정도 깊어졌다. 하지만 그 시간이 길어지자 매일 똑같은 집과 동네를 어떻게든 새롭게 바라보고자 하는 나의 마음이 집착처럼 느껴졌다. 필사적으로 애쓰는 것처럼 느껴져서 카메라만 봐도 우울했다.



 그런 우울과 불안에 휩싸였을 땐, 서울에서 평생을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남산 공원에 가는 것이 두렵게 느껴졌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까 봐, 막상 도착했는데 기대만큼 좋지 않을까 봐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무서웠다.

이 시기가 지나가고 여행이 시작된다고 해도,
내가 예전처럼 떠날 수 있을까? 집 밖으로 나갈 수나 있을까.


결국 용기내서 간 남산공원은 아름다웠다
꽁꽁 언 아름다움


 우리 앞에 아주 복잡한 신호등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저기로 가기 위해선 신호를 기다려  한번 건너고, 또 거기서 한번 기다려 다른 곳으로 건너야 하는 그런. 아니면 아주아주 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짜증나지만 결국 어디론가 가기 위한 행위들이다. 긴 시간의 건널목을 건너고 있는 지금, 여행은 어떤 다른 모습이 되어 나를 목적지에 데려다줄까. 터널을 빠져나온 뒤의 여행은 어떤 의미일까.


인류가 지나고 있는 긴 터널


 여행을 도피처로만 삼았던 내가 찍었던 사진들은 언제 꺼내봐도 아름답다. 아무리 오랜 시간 노력해도 내가 서울을 그렇게 담을 순 없으리라 생각한다. 이곳에 남겨둔 여행기를 꺼내 다시 읽어봤다. 살아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하지만 지금 나로선 그 글 속의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그 글을 쓴 이가 나라는 사실도 조금 생경하다. 외면하고 내리눌렀던 감정들과 소망들을 다시 꺼낸다. 간사하지만, 어쩌면 그게 진짜 내 모습이었으리라 생각해보면서.


instagram: @kimsa_eh

e-mail: kimsa00eh@gmail.com



매거진의 이전글 그래, 저주받은 게 틀림없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