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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언철 Jan 30. 2020

수술을 못하는 연세는?  '없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장면 하나 - 외래

"아이고, 안할란다. 내 살만큼 살았고 뭐 더 좋자고 애들 고생시켜가면서 수술하겠노. 안할란다."

어르신이 손을 휘휘 젓는다.

"엄마, 별 말 다한다. 이거 수술만 하면 된다는데... 선생님 말 듣고 하자. 응?"

"어르신 요즘 수술 기술이 좋아져서 조금만 째고서 금방 수술할 수 있어요. 이거 하고 나면 다른 거 더 하자는 이야기 안 할 테니. 이번엔 제 말 한 번만 들어주세요."


장면 둘- 입원 병동

"의사 양반, 그냥 죽을 때까지 편하게 있다가 죽고 싶소. 그냥 수술 안 하고 그렇게 합시다."

" 지금 수술하실 수 있는데 안 하시면 복통 같은 다른 증상으로 응급실로 오세요. 어르신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환자는 퇴원하고 외래로 다시 오지 않으신다. 그렇게 잊을 때 즈음 응급실에서 전화가 온다.

"선생님, 이전에 선생님이 보신 분인데요. 자연치료하셨다고 하고 장이 막히셔서 복통으로 오셨어요."


장면 셋 - 응급실

"어르신 지금 복통이 있으신 건 암이 의심되는 게 대장을 막고 있어서 그런 거 같아요. 검사하고 수술 생각을 해야겠는데요."

"내 나이 여든인데 수술이 되겠나?"

"지금 아버지 연세가 여든이 넘으셨는데 수술이 가능하겠습니까? 마취하고 못 깨어나시는 거 아니에요?"

"지금은 연세가 있으셔서 준비를 잘해서 수술을 들어갈 겁니다. 하지만 좀 더 지체하면 충분한 준비 없이 응급수술을 하게 되면 좋지 않은 상황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현행법 상에는 65세 이상을 노인이라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75세 이상을 고령 환자로 구분하고 있다. 기대수명이 점점 늘어나다 보니 80세 이후에도 대장암이 발견되어 오시는 경우도 흔하다. 요즘 70대 초반 환자 분들이 나이로 고민을 하시면 이렇게 말씀드린다.

"지금 어르신 연세는 제가 수술해드리는 환자분들의 평균 나이보다 어리신데요. 요즘은 수술하는데 나이가 문제 되지 않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일반적으로 의학연구를 할 때 65세 이상과 이하로 나누어 많이 진행했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70세로 나누는 경우도 있고 80세 이상만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도 많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80세 이상에서 검진을 적극 권유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도 있다. 80세 이상에서 검진을 시행하고 어르신들에게 과연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고민이다. 혹시 수술을 시행받은 80세 이상의 환자에서는 정기 검사 시행을 기한을 늘려서 하기도 하고 검사를 줄여드리기도 한다.


 수술에는 나이가 없다지만 그래도 무턱대고 수술을 바로 권유드리지는 않는다. 우선 중요한 것은 환자의 컨디션이다. 일단 거동이 가능하신지가 사실 가장 중요하다. 수술하고 거동이 안되실 경우 기본적인 식사 및 대소변의 처리가 어려울 수 있고 장마비와 같은 합병증이 잘 생길 수 있다. 그리고 가지고 계신 기저질환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부정맥, 결핵, 신질환... 과 같은 다양한 만성질환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으시기 때문에 수술 준비에도 조금 더 많은 검사와 준비가 필요하다.


 연세가 많으실 경우에는 수술도 가급적 빨리 끝내는 것이 좋다. 젊은 환자의 경우 마취시간이 길어져도 크게 차이가 없지만 고령의 환자 분들의 경우는 10분, 20분 차이가 크다는 것은 교과서에도 나오지만 경험적으로도 잘 알고 있다. 아무래도 마취시간을 짧게 하는 것이 수술 후 폐 합병증을 줄이고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술 준비에서부터 조금은 빨리 진행될 수 있도록 더 신경 쓰게 된다. 불필요한 움직임을 줄이고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한다. 수술 후의 신체징후 측정에도 더 시간을 많이 할애하게 된다. 최근 고령 환자의 수술 후에는 중환자실에서 하루 정도 관찰한 후 이상이 없으실 경우 일반병실로 이실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최근에 85세 대장암 폐색과 왼쪽 간에 10cm가 넘어가는 간 전이와 폐 전이가 의심되는 어르신이 수술로 의뢰되었다. 대장암 폐색은 시술로는 해결이 안 되니 수술이 필요한 상태였고 문제는 간 전이였다. 일반적으로 간 전이와 폐 전이가 있는 폐색이 있는 대장암의 경우 우선 대장암을 수술로 치료하고 나머지는 항암치료를 시행하여 결과를 보고 추가적인 처치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어르신은 고령으로 항암을 권유 드릴 수 없는 상황이고 간전이는 치료를 하지 않아서 크기가 커지면 위가 눌려서 식사 진행이 안 되는 상황이 예상되었다. 폐색을 수술을 하는 이유는 식사 진행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간 전이가 커져 위가 눌리는 상황은 힘겹게 수술하고 어르신이 얻으실 이득이 적어지는 결과를 낳게 한다. 그런데 간 수술을 동시에 진행하게 되면 마취시간이 길어지고 회복기간이 길어지게 되니 합병증이 발생할 가능성은 대장만 수술했을 때보다 훨씬 높아진다. 간 수술하시는 선생님과 마취과 선생님, 내과 선생님들과 의견을 나누고 환자 보호자들에게 수술 진행에 있어서 선택사항, 수술 후 최고의 상황과 최악의 상황을 설명드리고 상의를 했다. 사실 나는 간 전이가 한 곳에만 국한되어 있어 추후 문제가 없게 해 드리기 위해서 간 수술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으나 이런 상황에서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설명을 할 수밖에 없다. 보호자들도 답이 정해진 것이 없는 상황에서 판단을 하게 되니 상당히 힘들어했다. 하지만 보호자 중에 간 수술을 결정짓게 되는 결정적인 한마디를 하셨다.

"어머니가 나이가 있으시고 별 내색을 안 하셔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어머니가 TV를 보시다가 김치가 참 맛있겠네 라고 하시는데 눈물이 나서 도저히 못 보겠어요. 돌아가실 때까지 식사 편하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방향으로 해주세요."

최종적으로 간 전이 수술을 동시에 수술 진행하기로 결정하였고 수술은 문제없이 잘 진행되었다. 수술 후에는 중환자실을 거쳐 일반 병실에서 잘 회복하셨다. 상처가 길어지면서 생기는 통증을 호소하시기는 하였지만 식사 진행하시면서 기력이 생기시는지 이런저런 다른 불편한 것을 이야기하시기도 하고 농담도 하실 정도가 되었고 봉합된 실을 모두 풀고 정상적으로 잘 퇴원하셨다.  물론 안심할 수는 없다. 이렇게 잘 퇴원하셔도 다른 문제가 생기셔서 언제든지 입원 가능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의 경우 외래 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진료가 시작된다. 걸어 들어오실 때 거동이 불편하신 것은 아닌지, 잘 걸어 들어오시는지, 지팡이를 추가로 짚지는 않았는지... 말이 어눌해지지는 않았는지 손이나 다리의 힘이 빠지지는 않았는지, 빈혈이나 황달 여부 관찰을 위해 안색을 살펴야 한다.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생활하시면서 뭐가 제일 불편하세요?”이다. 어르신들이 생활하면서 가장 불편한 것 중에는 쉽게 약으로 호전될 수 있는 것도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다른 전문의 선생님들의 진료를 적극 권해드린다. 외래 진료 한 번으로 다 해결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참으로 어렵다.  그래서 노인 질환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논문이나 연구결과 들을 살펴보기도 하지만 확실히 한계가 있음을 느낀다.


 고령이신 환자의 수술 결정은 참으로 어렵다. 수술 결과의 예측이 어렵다는 점이 결정이 어려운 이유 중에 하나다. 수술의 목적이 명확하여야 하고 수술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수술 후 겪을 수 있는 위험성보다는 더 커야 한다. 그리고 환자 본인의 의지도 중요한 부분이고 보호자들의 협조도 중요한 부분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이 말은 수술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그래서...

수술을 못하는 연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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