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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언철 Jan 07. 2020

수술 동의서

외과 의사가 되고부터 떼려야 뗄 수 없는 많은 것 중 하나... '수술 동의서'... 외과 의사가 되고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수없이 많은 동의서와 그 안에 들어있는 수없이 많은 수술 방법과 수없이 많은 합병증을 되뇌고 되뇌고 무한히 반복했던 것 같다. 


 수술 동의서에 기본적으로 들어있는 내용은 수술 방법과 수술 진행 순서 등이 적혀있고 뒤이어 수술 후 발생 가능한 합병증이 나열이 되어 있다. 그리고 이어서 수술 후 예후와 경과, 수술을 시행받지 않았을 경우 선택사항 그리고 환자가 준수해야 할 사항 등에 대해서 3-4장 정도로 정리되어 있다. 최종적으로 이런 설명 끝에 환자와 보호자가 설명을 듣고 서명을 하는 란이 있다. 의사에게는 '설명의 의무'라는 것이 있다. 어떤 수술이나 시술을 시행하기 전 환자에게 이 수술이나 시술이 왜 필요한 것인지 하게 되면 어떤 이득이 있고 합병증이 있는지를 설명을 해야 하고 그 설명이 충분치 않았을 경우 법적인 책임을 질 수도 있다. 그런 이유로 해서 모든 외과의사들은 수술 동의서를 충실히 받고자 노력한다. 


 외과 의사를 하면서 가장 받기 힘든 수술 동의서를 꼽으라면 충수절제술 동의서를 들고 싶다. 흔히 알고 있는 맹장염 (정확한 진단명은 충수염이다.)으로 진단하고 수술이 필요하게 되면 수술 준비를 하고서 동의서를 받게 된다. 일반적으로 충수 절제술의 경우 아주 간단한 수술이라고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변에 맹장 수술받고 문제가 생겼다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술을 시행하는 입장에서는 그렇게 간단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수술은 아니다. 충수 절제술은 외과의사의 가장 기본적인 수술 술기이지만 합병증이 발생하려면 정말 다양하게 발생할 수 있다. 그런 경험은 내가 꼭 겪지 않아도 다양하게 보고 들어 알 수 있다. 충수염이 심했던 젊은 환자가 수술 후 패혈증이 발생하여 체외순환기 후 호전되었다던지, 수술 시작하고 복강경 투관침이 동맥을 찔렀다던지, 염증이 너무 심했던 환자에서 조직을 제거하고 났더니 지방 조직 혹은 난소였다 던 지, 수술 후에 지연성으로 농양이 발생해서 관을 꽂아서 배농 했다던지... 정말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질환이고 수술이다. 이런 것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수술 동의서를 받을 때 환자 상태에 따라서 설명을 하나둘씩 추가한다. 그러면 돌아오는 반응은... '어차피 간단한 수술이잖아요. 잘 좀 해주세요.' '간단한 수술인데 너무 겁주시는 거 아니에요?', '대부분은 별 문제없죠?'와 같다. 그러면 나는... '네 물론 잘 발생하진 않지만 언제든 발생할 수도 있는 합병증이라 설명드리는 것이고 환자 몸에 저희가 칼을 데는 건데 본인 몸에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 다 설명드려야 합니다.'라고 대답 해드린다. 물론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대부분은 수술 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인간이 하는 것에는 100%라는 것은 없다. 언젠가는 나에게도 한 번은 생길 수 있는 문제들이라고 항상 긴장하고 조심해야 한다. 


 간혹 수술 후에 합병증이 발생하면 난감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분명 내가 동의서 받으면서 설명을 드렸고 동의서에도 작성하였지만 들은 적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보호자분들이 있다. 의사들 사이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보호자들은 우리가 어떻게 이야기해도 본인이 듣고 싶은 것 좋은 예후 이런 것만 기억이 나고 나빠질 수 있다,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안 좋은 이야기는 기억에서 지우나 봐'. 어찌 보면 의사의 설명이 부족하여 발생한 문제일 수도 있고 수술이라는 큰 문제에 직면하다 보면 경황없이 설명을 들은 보호자들이 정말 설명을 다 기억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사실 이런 문제를 맞닥뜨리는 의사들에겐 여간 곤혹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설명의 문제가 생겨서 요즘은 동의서 설명 중에 몰래 녹음하시는 보호자들이 계신다. 사실 의사 입장에서는 이해는 가지만 기분이 좋을 수만은 없다. 나를 믿지 못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고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것의 반증이라는 생각도 들어서다. 녹음을 해야 하는 경우라면 처음 동의서 작성할 때 의사에게 녹음을 해도 괜찮겠냐고 물어보시는 게 좋을 것 같다. 


 수술 동의서는 '나는 당신을 수술하기 위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 하고 알려드리는 것이고 환자는 '나는 당신의 계획에 동의합니다.'라고 약속하는 것이라 어찌 보면 의사-환자 관계의 시작을 알리는 문서라고도 생각이 된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는 것처럼 치료의 절반은 수술 동의서를 받으면서 완성되는 것이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나머지 절반은 수술과 회복일 것이다. 수술은 의사가 하고 회복하고자 하는 의지는 환자가 가져야 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잘 충족되어야 수술 후 좋은 결과가 생기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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