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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언철 Jan 21. 2020

출혈의 재구성

 ‘툭’

내 손 끝에서 무언가가 끊어지는 느낌이 든다.

정돈된 환부 사이로 붉은 것이 차 오른다. 썩션을 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쏴~~’


‘출혈이다.’


어떤 혈관 하나가 끊어졌으리라.

일단 피가 나는 곳을 손으로 누른다.

일시적으로 출혈이 멈췄다.

나의 몸에서 먼저 반응이 온다.

온 신경이 나의 눈과 내 손에 집중이 된다.

식은땀이 나고 등골이 서늘하다.

피가 나는 곳을 명확하게 알지 못하면 출혈을 멈출 수 없다.

명확하게 알지 못하고 어림짐작으로 혈관을 결찰 하면 중요한 구조물이 나도 모른 사이 손상을 받을 확률이 높다.

서둘러 썩션을 하고 거즈로 닦아내고 주위를 정리한다.


‘어디서 나는 거지?’


내가 당황하면 수술장에 있는 사람들이 같이 동요한다.

그래서 나의 마음부터 가라앉힌다.

누르던 나의 손을 살며시 떼어본다.

다시 필드 안으로 차오르는 붉은 피...

분출하지 않는 것을 봐서는 정맥에서 나는 피다.

‘일단 장골 동맥 하고 정맥은 어딨지? 저기 있구나. 다행이다.’


“썩션 잘 좀 해줘요. 블랙 실크 씨알 긴 실로 준비해 주세요. 마취과 선생님 피가 좀 납니다.”

일단 주변 사람들에게 지금 출혈이 있는 상황으로 경계태세를 갖추라고 알려준다.


다시 손을 떼어 본다.  

작은 구멍에서 피가 나는 것이 순간 보인다.

그리고는 출혈에 가려져 다시 보이지 않는다.

‘아~~ 저걸 꿰매야 하나? 아님 기구를 넣고 잡아 볼까?’

“일단 씨알 하나 주세요. 꿰매는 곳 집중해서 썩션 해주세요.”

바늘을 잡은 기구를 잡고 손목을 이용하여 출혈부위에서 가볍게 돌린다.  


그런데 바늘이 훑고 지나온 자리로 다른 출혈이 생긴다.

‘아차, 뒤에 혈관이 또 있구나.’


마취과 선생님이 텐팅 너머에서 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한 선생, 혈압이 80까지 떨어지는데 일단 멈추고 좀 누르지.”

급히 출혈 부위를 누른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온갖 상상이 머릿속에 찰나의 순간 스쳐지나간다.

‘집중해야지. 일단 무조건 잡는다!!’

마취과 모니터를 보고 있다.

환자에게 수혈을 시작되고 혈압이 다시 올라간다.

“혈압이 올랐으니까 다시 시작해도 될 거 같은데, 어디서 나는 거요?”

불안한 얼굴로 마취과 선생님이 물어온다.

“아마 정맥인 거 같은데 이전 수술했던 부위에 있던 혈관인 거 같습니다.”


‘일단 주변부터 박리해 보자.’

우선 나의 두 손을 자유롭게 할 필요가 있다.

“여기 내가 누르고 있는데 잘 좀 눌러줘요.”

“네, 알겠습니다. 과장님”

하지만 이전 수술 기왕력으로 인해서 주변 박리가 쉽지 않다.

마음은 다급해지는데 수술장 필드 안은 마음과 같지 않게 변화가 없다.

“믹스터”

스크럽 간호사에게 이야기하고 기구가 오는데 까지 걸리는 시간이 내가 생각한 시간보다 길다.

“기구 좀 빨리빨리 주세요.”

약간은 날 선 말투로 한마디 한다.


받아 든 기구를 가지고 아주 조금씩 조금씩 전진해 간다.

서서히 출혈의 원흉의 모습이 드러난다.

‘생각보다 혈관이 굵은데... 뭐가 이리 굵어?’

이리저리 주변을 살핀다. 확인하고 다시 확인한다.

저 혈관을 과연 잡아도 되는 것인지 아닌지 확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단 주요 혈관은 괜찮으니 잡아도 상관없을 거 같은데, 그냥 기구를 넣어서 타이를 할까?’

“라잇 앵글 주세요.”


석션과 결찰 기구가 준비되었고 내 마음도 준비가 되었다.

다시 손을 떼어야 할 때다.

“천천히 손을 떼 봅시다.”

손을 떼자 이전보다 더 많은 피가 올라온다. 결찰을 시도하면서 혈관의 구멍이 더 커진 결과다.

기구를 넣어서 잡으려고 시도해 본다.

그런데 시야가 좋지 않다.

1차 시도는 실패다. 다시 출혈부위를 누른다.

빠르게 석션과 거즈로 닦아내고 주변을 정리한다.


마취과의 신체 징후 모니터링 소리가 나의 귀에 울린다.

그건 출혈을 잡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울리는 경고음이다.

띵동, 띵동, 띵동.... 그 박자에 맞추어 나의 심박수도 올라간다.


이번에는 방법을 바꾸기로 한다.

“드베키 주세요.”

조금 끝이 날카로운 집게로 우선 혈관을 잡아보기로 한다.

2차 시도다.

주변 조직을 몇 번 잡았다 놓았다 한다.

썩션이 바쁘게 지나다닌다. 그 사이로 혈관의 한쪽 끝 잡을 만한 곳이 보인다.  

정말 간신히 혈관의 한쪽 끝을 잡는 데 성공한다.

기구를 잡은 왼손에는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에 엄청 난 힘이 들어간다.

그렇다고 해도 출혈은 멈추지 않는다.

왜냐면 출혈은 한 방향이 아니라 양 방향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스며 나오는 출혈의 양이 조금은 줄었다. 이제는 석션을 하면 그 혈관의 형체는 보일 정도다.

“석션 좀 잘해주세요!!!”

남아있는 오른손으로 기구를 혈관과 주변 조직 사이로 넣고 경쾌한 소리를 내며 닫는다.

“따다닥”

드디어 양쪽 모두 잡았다.

왼손에 잡고 있던 부위도 결찰 기구로 잡고 혈관을 잘라낸다.

“타이 주세요.”

안도의 한 숨을 내쉬며 빠른 손놀림으로 결찰을 마무리한다.

“컷”

그렇게 지혈에 성공했다.


수술복 안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다.

수술 시간 중 20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지만 이미 나는 수술을 여러 개를 한 기분이다.

긴장이 풀리면서 그제야 몸에서 힘이 빠진다.

다행히 그 이후 진행에는 별문제 없이 잘 진행되었다.

“오늘 다들 너무 고생 많았어요. 다들 잘 도와줘서 고맙습니다.”

수술이 끝나고 고생한 서로에게 한마디를 건넨다.

그렇게 또 하나의 수술이 끝났다.


오늘도 잘 끝낼 수 있어서 감사드립니다.

내일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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