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쿼카킴 Jan 12. 2019

로또 5. 우리는 도망간다, 꿈속으로


 친구 L의 잠에 대해서도 우리는 무기력 때문일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L은 잠에 정말 일가견이 있었다. 대학 수업에 L이 나타나지 않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약속시간에 일어나거나, 하루가 다 가도록 연락이 없을 때도 많았다. L은 잠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단지 잠을 깨려는 노력만으로는 안 될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잠은 사실 L의 깊은 곳에 있는 무기력이 신체적으로 표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사정, 생활의 습관과 심리적인 요인은 모두 L이 잠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했다. 물론 이런 의견은 당연히 내 경험에서 우러난 이야기다.

 고등학생 때 잠이 폭발한 때가 있었다. 밤에는 물론 자고 수업시간에도 자고 야자시간에도 잤다. 하루의 절반 이상은 잠자는 상태였을 거다. 사실 나는 중학생 때만 하더라도 그렇게 잠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고등학생 때의 엄청난 잠도, 장담할 수 있는데 절대로 진짜로 졸려서 잔 게 아닐 것이다. 잠은 현실에서 탈출하는 하나의 수단이었을 뿐이다. 현실이 고통스럽고 인정할 수 없지만 그곳에서 도망칠 길이 도저히 없을 때, 내게 유일한 방법은 꿈속으로의 도피였다. 그래서 밤잠에 들기 전엔 간절한 기도를 하곤 했다. 내일 아침이 영영 오지 않기를, 이렇게 잠들면 제발 다시 깨어나질 않기를….

 아침이 밝아 알람과 함께 고통스러운 하루를 시작할 때면, 잠들지 않던 중학생 때를 그때부터 이미 그리워했다. 행복한 시절이었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긍정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 모든 일에 호기심이 넘치고 열정적인 태도, 도전하는 것이 두렵지 않고 새로운 것이 너무나 즐겁다는 그 웃음을 다시 찾고 싶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 애는 이미 내 안에서 죽었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그 죽음의 그림자가 지금까지 계속해서 이어져 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생에 미련도 없고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언제나 지배적인 것이다. 나에겐 학창시절이지만, 다른 사람에겐 또 저마다의 죽음의 순간들이 있었으리라. 그때 잃어버린 소중한 개인적 가치들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있는 시체들같이 은밀하게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로또 4. 항상 죽고 싶은 당신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