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배를 시작하기로 결심한 다음 날 바로 절을 찾았다. 근처에는 없었고 차를 타고 꽤 가야 하는 거리여서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오히려 귀찮게 여겨졌다.
내 필요에 의해서 스스로 결심한 일인데도, 끌려가듯이 억지로 하는 기분이 들었다. 익숙지 않아서겠거니 생각하기로 했다. 일단 마음먹은 것부터가 대단한 일이니까.
저녁 시간에 찾은 절에는 나 혼자뿐이었다. 바닥에 방석을 깔고 절을 시작하는데 어김없이 눈물이 났다. 마음에 복잡하게 얽힌 수많은 감정들이 눈에서 흘러내렸다.
8년 전과 여전히 나의 마음은 뚫려있었고, 기댈 곳은 없었고, 이렇게 텅 빈 채로 내 인생이 계속될 것 같은 두려움이 일었다. 미친 듯이 흔들리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데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이 상태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우울한 중에도 해결하고 싶어 했고 잘 살고 싶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마음의 힘이 없었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그냥 무작정 마음이라도 편해지고 싶어서, 꾸준히 뭐라도 하면 달라질까 싶어서 절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첫날은 108번의 딱 절반만 하자고 생각했다. 빠르게 횟수만 채우는 절보다 내 리듬에 맞춰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아무 상관없다는 친구의 말을 떠올렸다.
물론 몸을 움직여서 활력을 찾고자 함도 있었지만, 지금의 나는 108번을 채우는 것보다 한 배 한배에 시간을 들여 절의 의미를 찾는 게 더 중요할 것 같았다.
오랜만에 절을 하기도 했고, 발목도 좋지 않아서 절 하는 게 부담이 됐다. 그래서 돌아와서는 제대로 절하는 법을 동영상으로 찾아봤다.
무턱대고 절하면 되는 줄로만 알았는데,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 절 하는 방법이 따로 있었다. 각 동작마다 호흡도 맞추면 훨씬 자연스럽게 절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딱 하루 54배를 하고 나서, 며칠간 절을 하지 않았다. 절하러 가는데 무슨 차를 타고 멀리까지 나가느냐, 밖은 춥고 위험하다, 발목 아프다 등등 이유는 다양했다.
당시에는 합리적인 생각이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다 합리화였다. 새로운 걸 하는 게 귀찮았던 나는 합리화인 줄 알면서도 타협했다. 그러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이삼일 후에 다시 절을 찾아가 108배를 하고, 이내 또 합리화에 빠져 며칠간 하지 않기를 반복했다.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몇 번만에 드라마틱한 반전이 있기를 무의식적으로 기대하고 있었던 걸까. 8년 전엔 울고만 돌아와도 속이 후련했는데, 지금은 딱히 마음의 변화도 없이 그저 기계적으로 반복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인데도 나의 생각은 그렇게 시시때때로 변덕을 부렸다.
며칠 뒤 친구들 모임에서 108배를 추천했던 친구를 만났는데, 절 얘기를 꺼낼 수 없었다. 며칠 해봤다는 말조차 꺼내지 않았다. 이 주제로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꾸준하지 못하고 여전히 흔들리고만 있는 내 모습을 들키는 것만 같아 창피했다. 그저 나 혼자만의 죄책감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절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닌 며칠을 보내다가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억지로 등 떠미는 것도 아니고, 내가 원해서 시작한 일인데 지금 내 꼴은 딱 반지하 같았다. 지상도 아니고 지하도 아닌 애매한 반지하, 그게 지금 내 모습이었다. 삶을 사는 것도 아니고 안 사는 것도 아닌, 이 애매한 패턴을 끊어내야만 내 삶이 변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익숙지 않은 것에 대해서 나 스스로는 아주 교묘하리만치 반박해댔다. 때로는 감성적으로, 때로는 논리적으로. 나는 항상 그때마다 휘말려서 상당히 감정적으로 살아왔다.
그리고 뭔가를 꾸준히 하는 것이 익숙지 않았다. 오히려 꾸준히 사는 삶을 노잼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다 보니 마감이 있는 일에는 항상 마감시간에 쫓기고, 마감이 없는 일은 무한정 질질 끌며 반지하스럽게 살고 있었다.
그러다 최근에 웹툰을 그리면서, 차라리 스스로에게 마감을 주자고 바꿔 생각하게 되었고, 루틴을 만들어 하루라는 마감시간 안에서 뭐라도 꾸준히 해보자는 생각에 이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