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처럼 살던 삶의 흐름을 바꾸고 싶었다. 이도 저도 아닌 반지하스러운 이 패턴은 오랜 세월 동안 내 삶에 곰팡이처럼 번져나갔다.
지상으로 나를 끌어올리기 위해 시작했던 백팔배조차 꾸준히 할 심지조차 없는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라도 하게 만들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글로 써서 눈으로 보면 좀 나을까 싶어, 다이소에 가서 다이어리를 샀다. 항상 손으로 눌러쓰며 마음의 안정을 찾던 나였는데, 모바일 기기로 옮겨가면서부터는 손으로 끄적인 기억이 까마득했다.
3천원짜리 다이어리지만, 내 인생의 뼈대를 세워줄 녀석.
지나간 하루하루를 월 단위 란에 대충 채워 넣었다. 펜을 잡고 기록해나가다 보니, 앞으로 해야 할 일정들도 자연스럽게 채워 넣었고, 주 단위 란에는 매주 같은 날 해야 하는 일정도 적어 넣었다. 엉겁결에 시작하게 된 인스타툰 연재일과 브런치에 글 쓰는 날이 정해졌다.
내일 당장부터 시작되는 일 단위 란에는 108배와 요가, 그리고 항상 짐처럼 생각됐던 영어와 경제공부를 추가했다.
손으로 적고 눈으로 보고 나니까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루틴이 형성됐다.
처음부터 '루틴을 만들어서 무기력감을 탈출하자.'라고 의식적으로 생각했으면 난 또다시 부담에 짓눌려서 흐지부지 끝냈을 거다.
그런데 최근에 자잘한 성취를 느끼면서 많은 걸 배웠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시작하려 하지만, 완벽한 시작이란 인생에 없다는 것,
그리고 미미하더라도 꾸준히 하는 것이야말로 정말 큰 능력이라는 것.
일주일에 한 번뿐인 인스타툰 마감일을 지켜보자는 약속이 지켜지고 있었고, (물론 미루다 시간에 쫓겨 업로드하긴 했지만)
불균형인 데다 뻣뻣해서 답도 없던 몸을 이끌고 매일 요가를 나가다 보니, 며칠 전엔 많이 유연해졌다고 칭찬도 받았다.
그리고 짧지만 영혼을 갈아 넣어 준비했던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한 번에 합격하면서, 작지만 성공경험이 쌓여갔다.
그러면서 나에 대해서 없던 믿음이 새싹만치 생겼다. 이전까지 내가 성공한 기억이 있기나 했을까? 아님 스스로 성공이라고 인정하지 못했던걸까?
'능력'이라 하면 특별한 재능 같은 것이고 나는 가질 수 없는 걸로 무의식적으로 생각해왔다. 남들이 나를 칭찬할 때도 이해하지 못했다. 나부터가 나를 인정 못하고 이 딴 것도 능력이냐며 스스로를 무시해왔었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흘러온 나의 부정적인 관념은, 나의 있던 능력도 부정해왔던 것이다.
이것저것 붙잡고 해온 일들에서 작게나마 성취를 이루고, 그 성취를 대견하게 볼 줄 알게 되자 나에게는 내가 부정해 온 많은 능력들이 있었다는 걸 처음으로 인정했다.
나는 그냥, 내가 미웠던 게 아닐까. 무의식적으로 만들어놓은 상상 속의 완벽한 기준이 있는데, 현실의 나와는 괴리가 있으니 내 모습이 성에 안차고 미울 수밖에.
다이어리에 루틴을 만들며 느낀 건, 완벽과 완성은 별개라는 거다. 나는 완벽하지는 않아도 이미 완성된 존재였다. 나만이 가진 힘은 이미 나에게 있고, 그걸 나부터가 믿어준다면, 그걸로 이미 일어설 준비는 끝난 것이었다.
문제는 나부터가 나를 믿어주지 않았다는 거였다.
이건 당장 돈도 안되고 쌀도 안 나오는 행위지만, 이 미약한 루틴부터라도 시작해서 내 마음을 정화시키고 마음의 뼈대를 세우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찰흙으로 인체 모형을 만들 때조차도 철사로 뼈대를 세운 뒤에 흙을 붙여나가는데, 나의 마음은 뼈대 없이 흙으로만 빚어져있었다. 겉보기에는 멀쩡했으니 언제 쓰러져도 이상할 게 없던 삶이었다.
내가 언젠간 다시 반지하 패턴으로 돌아가 무기력해질지도 모른다. 관성의 법칙처럼 원래대로 돌아가려 할 것이다. 그땐 아마 이 글조차 보기 싫고 부정적 관념에 빠져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루틴이 내 안에 잘 자리 잡아서, 언제라도 깨어있는 상태로 다시 접속할 수 있는 열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때는 관성의 법칙도 통하지 않을 정도로 내 마음이 탄탄해져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