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미
절하며 많이 울었다. 아빠건강으로 근심이 많다.
평상시에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 가족 건강 시간.. 이런 것들이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내 시간 안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쓰고 깨닫느냐는 내가 하기 나름인 것 같다. 더 많은 시간이 주어져도 내가 깨치지 못하고 허비해 버린다면 삶의 의미가 없다는 걸.
절실한 마음으로 '아빠를 낫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가 절로 나왔다. '내가 엄마 아빠를 깨닫게 도와줄 테니까 그들이 좀 행복할 시간을 주세요'라고 빌었지만, 이미 나에게, 엄마에게, 아빠에게, 삼 년이라는 시간을 주었다는 생각이 순간 확 지나갔다.
머리가 띵했다. 우리는 모두 어리석어서 그 시간이 주어진지도 모르고 있었다.
'삼 년 줬으니 그럼 삼 년만 더 달라, 난 아직 아빠가 많이 필요하다'라고 했는데, 삼 년이든 세 달이든 내가 그 시간 속에서 깨닫고 어떻게 채우냐는 나에게 달렸다는 생각이 지나갔다.
삼 년간을 싸우고 버팅기다가 이제야 내가 좀 깨닫고서 시간을 더 달라고 하지만, 이 남은 시간도 결국은 나를 깨우치기 위한 시간일 것이란 것...
어쩌면 아빠는 나에게 이 깨달음을 주려고 이 세상에서 만난 걸지도. 만남과 고통이 없었다면 나 또한 괴로움 속에서 살고 있지 않았을까?
내가 가족 안에서 괴로웠던 날들, 외로움을 버텨온 순간들, 벗어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던 지난 시간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결국은 이 순간의 깨달음을 위해서 지나온 시간들이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은 아프고 안 아프고 가 중요한 것도 아니고, 몇 살까지 사느냐도 중요한 게 아니라, 사는 동안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한 거였다. 남은 시간의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이 시간을 돌아가고 싶은 후회조차 안 들게 최선을 다해 진하게 살아낼 것인가가 중요한 거였다. 나의 삶에 대한 태도는 여기에서 차이를 만들어내는 거겠지.
이 생에서 너와 내가 만났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인생의 의미가 있는 거였다.
만난 것뿐만 아니라 가족의 연으로 이어지고 좋은 부모면 좋은 대로, 나쁜 부모면 또 그대로 몸소 반면교사를 보여주러 왔다는 자체만으로도 부모는 감사한 존재다.
삶의 의미란 그저 우리가 만나서 기쁘고, 죽자 사자 싸워도 결국엔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에게 감사하게 되는, 그 소중하고 감사한 시간들을 깨달아가는 것.
이미 많은 시간을 받았지만, 싸우고 소리 지르고 원망하고 저주하던 그 시절들을 지나다 보니 많은 시간을 써버렸다. 하지만 이 시간이 지나더라도, 또 영영 못 깨달을 수도 있지만, 나는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모든 건 그저 주어지는 게 없다는 걸 말이다.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절대로 당연하지 않고, 내가 못 가진 것들도 결국 다 나를 위해서였다는걸.
삼 년은, 아니 나의 삼십몇년 생은 허비된 시간이 아니라 깨달음으로 가는 과정들이었던 거다.
이 시간들이라도 나에게 있다는 걸 깨달았음에 감사하고, 이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 감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