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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미루 Oct 26. 2023

솔직해지는 게 무섭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는 것의 두려움

어제 눈물이 줄줄 나서 닦고 있자니 선생님이 놀라서 왜 우냐고 물으셨다. 아빠의 사정을 이미 알고 계시고 종종 내가 소식을 전하곤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얼마 안 남았다는 말을 전하는데 눈물이 줄줄 났다. 혼자 있을 때도 그냥 담담하게 있었는데 왜 어제 아침엔 그렇게 울고 싶었을까.


울면서도 내가 왜 우는지 계속해서 물음표가 붙었다. 나는 지금 왜 우는 거지, 정확하게 어떤 지점이 슬픈 건가, 아님 답답한 건가, 후회와 회한인 건가, 어떤 감정 때문에 계속 눈물이 나는 걸까... 근데 내가 울고 싶다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어. 그리고 한 사람이 세상에서 사라질 텐데, 심지어 그 사람이 아빠인데 눈물 나는 이유를 찾는 게 웃긴 일이지.


생각해 보면 난 어릴 때도 내 감정을 분석하려 들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도 그 감정을 숨기고, 내가 왜 지금 이 감정이 드는 건지 스스로 납득시키는 게 더 먼저였다. 어쩌면 그 감정을 직면하기 힘들어서 딴청 피우는 거였겠구나 싶다. 지금 저 사람을 보면 웃음이 나고 가까이 가고 싶은 자연스러운 감정을 스스로가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 겉돌고 아닌척하고 딴소리하고 되려 멀어지려 했다.


그렇게 내 감정을 파헤치고 파고들어서 며칠 만에 얻어낸 결론은, 좋아하는 마음의 이유에 대해서 그 근원을 찾아낼 수가 없다는 거였다. 마음을 마구 파헤쳐보면 근원 같은 작은 씨앗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 파헤쳐진 마음의 조각들 그 자체가 내 감정으로 물들고 가득 찬 나의 마음이었다.


그렇게 그냥 지금의 내 마음에 솔직해지자고 다짐하고서도 오랜 날을 솔직하지 못하게 살았다. 특히 나의 감정을 타인에게 보여주는 게 여전히 많이 겁다. 어제 그렇게 울면서 이야기해 놓고서도, 선생님이 엄청 걱정해 주시면서 내 상황을 배려해는 얘기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건조하게 말을 받아치고 있더라. 말하고 나서도 바로 아차 했는데, 내 안에 의지하기 싫은 마음, 사람에 대한 불신, 센척하는 것들이 결국엔 솔직해지기 무서운 마음에서 나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남들에게 나의 약하고 말랑말랑한 마음을 보여줬다 다친 많은 경험들이 내 마음을 탁 닫아버리고, 타인에게 퉁명스럽게 굴고 가시 박힌 말들을 하면서 오히려 우월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사람들과 잘 지내다가도 무단히 차갑게 대하고 무시하는 투로 말하거나 센척하는 모습들이 다, 남들에게 똑같이 상처 주면 나의 상처받았던 시간들을 보상받을 수 있을 것 같은 비뚤어진 우월감이라는 걸 최근에서야 나를 이해하면서 깨닫게 된 부분이었다.


안에서 꼬일 대로 꼬인 마음들이 뒤섞여있고, 그걸 스스로가 이해하지 못하고 다그치기만 했으니, 내 감정을 직면하는 게 무섭고, 그걸 타인에게 보여주는 건 더 어려웠겠지.

 

아, 방금 베란다 문을 닫으러 나갔는데, 밖은 단풍이 잔뜩 물들어있다. 가로수가 단풍이 피는지 지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살고 있으니, 내 마음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는 게 당연하겠다 싶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는 걸까? 지금 이곳에서 나에게는 어떤 게 중요하지? 어떤 게 소중하지?


 어제 조카생일이라 오빠네 식구가 아빠 병원에 와서 같이 생일노래 부르고 초도 껐는데, 엄마가 하는 말을 듣고 눈물이 왈칵 났는데.. 조카가 한참 말을 따라 하면서 배우는 시기라, 엄마가 애기를 안고 할아버지한테 안기면서, "할아버지 만나서 반가웠어요, 우리 나중에 또 별나라에서 만나요." 하는데 애기가 말을 그대로 따라 할아버지에게 하는 거다.

만나서 반가웠다는 그 말이, 우리가 각자의 생을 살면서 잠시 시간과 공간이 맞아 스치면서 만나는 것일 뿐인데, 어찌 안 반가울 수가 있겠고 어찌 웃지 않을 수가 있겠어...

그 시간 안에서 지지고 볶고 얼굴 붉힐일이 있어도, 결국엔 우리는 다 헤어지기 마련이고, 헤어질 땐 그 모든 시간들이 애틋하고 아쉽고 아깝기 그지없다.


그래서 지금 여기에 항상 깨어있어야 하고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 그렇게 인생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나는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순간순간이 나의 생각을 담은 행동들이고, 그 순간들이 모여 내 습관이 되고 그 습관이 나의 지금 삶을 엮어온 거다. 지금의 내 모습은 내가 되고 싶은 대로 선택해서 된 모습들이다. 그러니 지난날을 후회하지도 말고, 지금 여기에서부터 다시 엮어나가면 된다.


지금 써나가는 이 글이 나의 연약한 내면을 아무런 가림막도 없이 바깥으로 내놓는 것 같아서 써놓고도 후회하고 지워버릴까 고민하고 있지만, 이 짧은 글이 그저 혼자 생각만으로 끝낼 때보다 훨씬 깊이 있게 나를 이해하게 만든다. 스스로에게 더 솔직해지게 만든다. 나는 글을 쓸 때가 가장 마음 편하고 솔직해진다. 글이라는 통로가 있어서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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