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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 숙종 Jan 10. 2019

16. 교실에 있을 때

    

 “나는 마술사다~!”     


 큰소리로 말하며 손안에 압축해서 움켜쥔 요술 막대기를 아이들 쪽으로 쫘~악! 폈다. 갑자기 손에서 요술봉이 솟아오르자, 아이들 눈은 휘둥그레진다. 이때를 놓치면 안 된다. 드라큘라 같은 목소리로 무섭게 말해야 한다.

 “나는 한국에서 온 유명한 마술사다~!”

 “너희에게 마술을 보여주기 위해 먼 나라에서 왔다~!”

 그리곤 아이들 가까이 가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어린이 여러분! 한국을 아나요?”

 “네~에! 우리 ‘히바’ 선생님이 한국사람 이예요.”    


 ‘히바(미술교육 단원)’는 ‘아니사빈트 카압세컨더리’스쿨에서 유치원생과 저학년을 대상으로 미술을 가르친다. 이 학교는 수도 ‘암만’에서 차로 1시간 거리인 ‘마르카’에 있다. 가난한 동네인데도 규모가 큰 학교다. 난 코이카 단원 임기가 3개월이 채 안 남았다. 돌아가기 전에 이 학교 아이들 대상으로 마술 시범을 보이려고 ‘히바’에게 요청한 것이다. 나는 요르단에 올 때 필요할 것 같아 한국에서 마술도구를 사 가지고 왔다. 돌아갈 때 두고 가야해서 마지막으로 사용해 보고 싶었다.     


 마술은 요술이 아니다. 빠른 손놀림으로 상대방을 놀래 키는 기술이다.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마술도구가 부리는 신기한 기술이다. 그래서 마술을 하려면 반드시 도구가 있어야한다. ‘나(영상미디어)’와 ‘무나(한국어교육)’ 그리고 ‘히바’ 셋이서 마술 파트를 나눴다. 어린이들이 대상이지만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마술 시범은 허접하면 금방 들킨다. 우린 대입 공부 하듯 연습에 돌입했다.    

 

 내가 맡은 마술은 ‘Box 마술(빈 종이박스에서 꽃 상자를 계속 꺼내기)’과 ‘공 마술(한 개의 공이 손가락 사이에서 여러 개로 바뀜)’ 그리고 ‘손바닥 마술(손바닥에서 붉은 천이 없어졌다가 생김)’등이다. 난 20일 전부터 연습을 시작했다. 아예 마술도구를 가지고 출근했다. 문화부 직원들한테 내가 맡은 마술을 보여줬다. 그들은 놀라며 어떻게 한 것이냐고 물었으나 끝내 가르쳐 주지 않았다. 

 ‘손바닥 마술’은 엄지손가락과 똑같이 만든 고무 골무를 엄지손가락에 끼워서, 조그만 천을 그 안에 숨기거나 빼내는 것이다. 갑자기 손바닥에서 사라진 붉은 천은 엄지손가락에 끼워진 골무 안에 숨어 있다. 상대방은 절대 눈치 못 챈다. 나도 너무 신기해서 길가에서 이것을 샀다. 이쯤 되면 준비가 끝났다.  

   

 D-day. ‘카압 세컨더리’스쿨 강당에는 교장 선생님과 학급 담임 선생 그리고 150명 아이들이 모였다. 마술 복장으로 변장한 우리는 마술음악과 동시에 커튼 뒤에서 짠! 하고나와 아이들을 놀래 킨다. 초장부터 아이들을 마술세계로 빠뜨리는 것이 중요하다. 마술사 셋은 번갈아 가며 분위기에 압도된 아이들에게 마술을 선보인다. 이중 장치된 요술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 준다. 분명 밑이 뚫려있는 빈 주머니 인데 손을 넣으니 계속 사탕이 나온다. 마술사탕을 서로 달라고 난리다. 아이들은 신기해하며 환호했다. 우리를 한국에서 온 유명한 마술사라고 믿기 때문이다.   

  

 강당 마술에 이어 교실로 찾아가는 순회 마술을 하고, 유치원으로 갔다. 어린 유아들이라 편하게 할 수 있었다. 동전을 보자기에 싸서 마술 봉으로 탁! 치니 갑자기 사라졌다. 

 “동전이 어디로 갔을까요?” 

 그 동전은 뒤쪽에 있는 남자 아이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꼬맹이들은 놀란 눈으로 서로 쳐다보며 말한다. 

 “우와. 놀라워!!”

 “어떻게 동전이 거기로 갔어??”

 모르면 놀라는 이 마술은 시작하기 전에 똑같은 동전을 한 아이 호주머니에 몰래 넣어 둔다. 보자기에 있는 동전은 마술시범 때 밑으로 떨어뜨려 다른 손으로 받아 숨기면 감쪽같다.     


 마법사 모자와 긴 망토로 몸은 땀에 젖고 목소리는 잠겼지만, 내 하루가 마술 같았다. 난 이런 마술 같은 세상을 좋아한다. 뜻하지 않은 일들이 불쑥 불쑥 튀어나와 모두를 놀래키고 웃게 만드는 세상. 신비하고 놀라운 세계로 아이들을 끌고 가는 일. 티 없이 놀라주는 아이들과 교실에 있을 때 스스로 뿌듯함을 느낀다. 어디를 가든 난 아이들이 뛰노는 학교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교문으로 들어가 운동장에서 노는 아이들을 보거나, 교실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4년 전 캄보디아에서도 초등학교 교실에서 운 좋게 수업할 기회가 있었다. 오늘처럼. 

 그러나 그날 수업은 아쉬움을 남겼다.    


 캄보디아 학생들은 검정색 하의와 흰색 상의 교복을 입는다. 등굣길 그들을 보고 있으면 흑백 영화를 보는 듯 했다. 교복이 없는 아이들은 집에서 입던 옷을 그냥 입고 학교로 온다. 나는 캄보디아에서 잠시 머물던 집 아이와 시장에 갔다. 시장 안의 한 미장원에서 그녀 사촌 오빠인 ‘싸론’을 만났다. 그의 부인이 운영하는 미장원에서 그는 갓난아기를 돌보고 있었다. 대부분 캄보디아 사람들은 혼자서 두 가지 일을 하거나 아니면 부부가 각각 직업을 갖고 억척같이 살고 있다. 그는 ‘욱뜸뽀 프라이머리’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이라고 말했다. 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만나고 싶어 하는 내게, 그는 학교 이름을 적어 주었다.   

   

 다음날 카메라를 들고 학교를 찾아갔다. ‘욱뜸뽀 프라이머리’ 학교는 크고 넓었다. 운동장엔 아이들이 가득했다. 외국인을 처음 본 아이들이 내게 우르르 몰려들자 선생들이 모두 교실에서 내다봤다. 그때 ‘싸론’ 선생이 내 쪽으로 왔다. 수업 시작종이 울리자, ‘싸론’은 나를 교실로 이끌었다.

 초등 3학년 교실엔 아이들이 60명 정도 있었다.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훨씬 많았다. 이런 남녀 불균형은 캄보디아에선 일반적인 현상이다. 교실 중앙에 앉아있는 낯선 외국인 때문에 수업이 어수선해졌다. ‘싸론’ 선생은 수업을 포기하고 아이들한테 말했다.

 “한국에서 오신 손님인데, 궁금한 것을 질문하면 선생님이 통역 해 주겠다.”

 나는 교단에 서서 질문을 기다렸다. 아이들이 수군거리다 한 아이가 손을 들었다. 첫 번째 질문을 ‘싸론’ 선생이 나에게 통역 했다. 그러나 그 질문은 대답하기 꽤 난처했다. 흰색 반바지와 푸른색 반팔 티를 입고 교실 앞에 선 내게 아이가 물었다.     


 “지금 입은 티셔츠가 집에 몇 개 더 있어요?”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뜻하지 않은 질문에 나는 순간 고민했다. 옷걸이에 걸어두거나 장롱 속에 쌓아 놓고 철따라 입던 옷을 세어봤다. 도저히 그 많은 숫자의 옷을 아이들한테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계절마다 5개 옷을 계산해서 어림잡아 대답했다.     


 “twenty(20개)”  


 갑자기 아이들은 침묵했다. 나는 ‘아이들이 왜 그러지?’하며 엉거주춤 서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옷이 집에 있을 수 있을까?”하는 시선으로 나를 쳐다봤다.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곳 사람들은 사계절을 모른다. 계절 또한 여름뿐이다. 이런 시골 마을에서 자란 아이들이 20개나 되는 티셔츠를 매일 갈아입고 다닌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교복과 집에서 입는 옷으로 매일 지내는 아이들이다. 아니 교복도 없이 옷 하나로 일 년을 입고 다니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그 아이들한테 내 대답은 잘못된 것이었다. 아이들은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나는 놀라워하는 아이들 시선을 남겨둔 채 교실을 나왔다. 후회스러웠다.     


 “집에 옷이 5개 있다.”

 말했어야 했는데……. 아니다. 더 적게. 

 “지금 입고 있는 옷 말고, 두 개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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