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주전부리
어렸을 때 우리 집은 저녁을 4시쯤 먹었다.
날이 밝아 있을 때 부엌일을 끝내려는 할매의 마음이었을까?
오래된 한옥이었기 때문에 정지에서 방까지 턱이 꽤 많았다.
정지에서 대청마루로 이어진 작은 문으로 밥상을 올려
여름엔 마루에서 겨울엔 방 안에서 먹었다.
음식이 차려진 밥상을 들고 내리던 할매의 굽은 등이 생각난다.
일찍 밥을 먹고 나면 할매는 방을 한번 쓸고 닦고 이부자리를 깔고 잘 준비를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또 쓸고 닦고, 부지런한 할매 손에 자랐는데 나는 왜 이렇게 게으른지.. 시집가면 다 한다고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했던 할매 덕분이지. 진짜 시집가면 부지런해질게요.. 나 시집 언제가...)
늘 그렇듯 테레비는 KBS1TV 고정.
여섯 시 내 고향이 끝나고 7시 뉴스를 보면서 바다에 나가있는 아빠가 무사한지 일기예보를 보며 바다의 너울을 확인한다.
뉴스가 끝나고 일일연속극이 시작될 때쯤이면(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국룰) 입이 심심한 할매는 주전부리를 꺼낸다.
대부분 과일이나 옥수수강냉이, 찐쌀을 한 움큼 쥐어 입에 털어 넣고 씹어 먹었었는데
(찐쌀은 처음엔 진짜 맛이 없지만 인내를 가지고 딱딱한 쌀알을 계속 씹다 보면 단맛이~찐쌀 한 움큼이면 30분은 너끈하다)
과일 중엔 사과랑 감이 단골손님이었다.
명절 때나 돼야 비싼 배를 깎아 먹었는데
어렸을 땐 가끔 먹는 하얗고 단 배가 그렇게 맛있었다.
날이 추워질 때쯤이니까 방문밖에 내놓았던 배는 정말 시원했다.
배는 귀하고 비싼 과일이란 인식은 그렇게 심어졌을 거다.
2023년 사과가 금값이 되면서 배랑 큰 차이가 없어졌다. (물론 개수가 다르긴 하지만)
장을 볼 때 잠깐 망설이지만 사과 대신 배를 사 와서 먹고 있다.
사과랑 동등해진 배라니... 요지경 세상이다.
요즘 저녁에 집에서 배를 깎아 먹을 때마다
숨이 턱 막히게 무겁던 목화 이불속에 파묻혀있으면 머리맡에 앉은 할매가 깎아주는 과일을 손만 슬쩍 내밀어 받아먹던 날들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