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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죽지않는돌고래 Aug 18. 2021

얼간이는 몰랐다, 성수기에 숨은 육아인의 사회학

새벽의육아잡담록

1. 

휴가철, 뉴스를 보며 생각했다.


왜 뻔한 곳에, 왜 성수기 때 휴가를 가, 왜 사람 많은 곳에, 왜 비싼 돈을 쓰고 돌아오는가. TV 속 저 바글거리는 사람들은 당최 누구에게 위협당하고 있단 말인가. 어떤 종교적 신념인 걸까. 그 돈이면 1-2주를,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는 곳에서, 그러니까 이국의 외딴곳에 나가, 몸과 마음에 널널함을 주며 즐길 수 있는데 말이다! 


여기에 으마으마한 사회학적 요소가 숨어있는지도 모른 채, 나는 글케 얼. 간. 이.로 살아왔다. 


2.

한 명은 9개월, 한 명은 3년 5개월. 자식이 둘 된 이후의 휴가는 처음이다. 장소는 어린 자식이 있어도 편하고 안전하게 즐길 수 있다, 라는 한 호텔이다. 나는 수많은 가족들이, 굳이 동일한 날에, 왜 비싸고 뻔한 장소에 휴가를 가는지 정. 말. 몰랐다. 이젠 안다. 어린이집 방학! 


어린이집에 갈 수 없어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거리의 아이... 들이 내 자식들이랑 묘하게 많이 닮았다 


무수히 많은 아이들의 방학이 겹치고 또 겹친다. 연동하여 수많은 엄마, 아빠들의 휴가가 겹치고 또 겹친다. 그리고 차에서 오랜 시간 머물지 못하는 유아에게(특히 1년 이하는 더욱) 짧은 교통수단 체류 시간을 보장하며,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안전한 명소(?)는 대개 정해져 있다. 


그때, 그곳은 몇 배나 복잡하고 몇 배나 비싸진다…!


3.

이 단순한 논리를 우째 지금껏 외면하고 살 수 있었는지! 우리 부모 세대가 어린 자식들을 왜 그리 데리고 다녔는지 단박에 이해된다(물론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상 대부분 그때의 기억은 없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지금보다 가족 구성원이 많았고 집도 좁았다. 그때, 천과 지를 분간치 못하고, 에너지가 과하게 넘치며, 감정 변화가 익사이팅한 아이와 좁은 집에 몇 날 며칠을 갇혀 있는 것은, 사랑이 넘치는 동시에 기질적으로 비활동적인 부모에게 조차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게 만드는 풀컨디션 데카르트적 사고를 심겨주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생필품을 사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3일에 10분 정도) 외에 70일간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집 안에만 홀로 있어도 행복한 나 같은 인간에게조차 말이다. 


해서, 나는 그들이 최초에 그렇게 시작했을 거라 생각한다. 본인도 숨 쉬고 자식도 웃게 만들기 위해. '풀컨디션 유아'를 담당하는 육아인의 경우, 그들이 웃어야 본인도 숨 쉴 수 있기에 이 두 가치는 동일선상에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4.

잔 기억도 형성되기 전, 그러니 보통은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태어난 직후부터 만 4살까지의 아이와 휴가를 가는 건 부모의 고난 극복과 적극적 자기희생의 발로 이후에야 얻을 수 있는 행복이라는 사실을 이제사 안다. 이는 절대, 그냥 얻을 수 없다.  


그렇다! 부모님들은 다 알고 있었으면서 우리를 속여왔다! 

어린 자식이 있는 부모라고 비싼 돈 들여, 굳이 뻔한 곳에 가고 싶을까. 그들이라고 가성비 좋은 날, 값싼 비행기표를 사 오직 바다밖에 보이지 않는 이국의 해변가에서 멍하니 지는 해를 바라보며 머리를 비우고 싶은 생각이 없었을까. 


...... 


내가 기억지 못하는 시간 동안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의 적극적 자기희생이 이 정도였을 줄이야...!(이 문장에서 “적극적”이란 관형사가 중요합니다)


나의 부모가 대단한 사람일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5.

'인간은 자신밖에 모른다'는 말의 본래 의미는 '인간은 자기가 속한 집단의 상상력을 벗어나기 힘들다'가 아닌가 한다. 


한때 유아였던 주제에, 그 유아를 돌본 사람과 무지무지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주제에, 생의 대부분을 마치 유아가 없는 세계에서 살았던 사람처럼, 유아와 함께하는 인간이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고하고 살아왔으니 말이다. 


인간과 세상의 문제에 관심이 많다 생각했으나 실상은 근원이 되는 문제의 반절 이상은 평생 보고 싶어 하지도, 알고 싶어 하지도 않고 살아왔다는 사실이 쌓이는 요즘이다. 


과연 바보는 생각이 짧아 매일 몸으로 부딪치며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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