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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죽지않는돌고래 Apr 14. 2022

잡담록: 나는 누구의 돈을 뺏어 쓰고 있을까

혹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거리

1.

10년도 전의 일이다. 당시 한 장애인으로부터 메일이 왔다.


'우리는 서울의 대형 빌딩 한 층을 점거하고 있다(서울 국민연금공단). 단식도 하고 있다. 삶을 걸고 하는 일인데 보도 통제가 된 모양인지 방송이나 신문에는 보도가 안 된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죽돌이는 와서 얘기를 들어주면 좋겠다.'


지금이나 그때나 마찬가지로 나는 글재주가 없어(정밀히 하면 울 동네에서 내가 짱 먹는 줄 알았는데 들어오니까 괴물이 넘 많았음… 다들 밥 묵고 글만 쓰고 살았나…) 대부분 몸으로 때우는 역할을 했기에 온 메일이다.


메일의 주인공은 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이었다.  


2. 

핵심은 당시 정부의 '장애등급 재심사'였다. '가짜 장애인'을 적발해 더 어려운 사람에게 혜택을 주자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이렇게 훌륭한 취지의 정책은 대부분 현실에서 다르게 적용된다.


당시 장애인들은 장애등급 재심사를 받으면 좀 더 많은 도움이 될 거란 정부의 말을 믿고 불편한 몸을 이끌고 자비로 각종 검사를 받아 결과를 제출한다. 단 돈 몇만 원의 보조금,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몇 시간의 활동보조다. 허나 대부분 돌아온 건 장애등급 하향이었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장애등급 재심사를 의무화하고 활동보조 서비스를 1급으로 제한했다. 활동보조 서비스란 장애인이 목욕, 대소변, 청소 등의 각종 활동에 대해 정부에서 도움받는 걸 말한다.


예를 들어 실제 하반신 중 오른쪽 세 번째 발가락만을 겨우 움직일 수 있는데 2급 판정을 받은 사람이 있었다. 전신마비로 기저귀를 차고 누워 생활하는데 2급으로 하향 조정된 사람도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돈이 넘쳐나는 사람이 아니다.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국가에서 서비스가 끊기는 즉시 누군가를 고용할 수 없다면 지금까지 상상 속으로만 존재했던, 또는 몇 번은 겪어야 했을 비참함을 지속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방 한구석에서 축축해진 바지를 잡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따위의 일 말이다.  


함께 건물에 갇혀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 비참함과 모멸감이라면 나라도 삶을 걸만하겠다 생각했다(헌데 용기가 없어서 그들처럼 했을지는 의문. 으응?!).


3. 

당시로선 유일하게 그 건물에 갇혀 있는 외부인이자(뒤에 MBC가 왔다) 비장애인이라 얼떨결에 시위를 돕게 되었다(분위기에 휩쓸리는 타입. 으응?!). 


이중 인상 깊었던 건 이들에게 시위는 굉장한 육체적 노동이란 점이다. 주로 현수막 다는 것을 도왔는데, 몸이 불편한 이들은 내가 몇 초면 되는 현수막 묶기를 하면서 비 오듯 땀을 흘렸다.

휠체어에 내려 온 상태에서 함께 배달된 음식을 먹고 있는 사진. 내게는 단순한 이 행동조차 보통 일이 아니구나, 했다. 

나는 그닥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책상 뒤 전단지나 현수막을 뚜벅뚜벅 걸어가 그냥 집어 오면 되지만, 그들은 책상과 책상 사이의 비좁은 공간을 지나고, 사무실의 화분 같은 것도 장애물이 되기에, 겨우 겨우 피해 그야말로 겨우 겨우 들어, 휠체어 위로 든 현수막이 가끔은 어딘가 걸려 떨어지고를 반복하여 옮긴다.


일상적으로 내가 하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인 줄 몰랐다. 


4. 

현수막도 달고, 이리저리 이동하는 것도 좀 거들고, 경찰 못 오게 엘리베이터도 막고...(물론 경찰은 죄가 없지만 일단 막아야 하는 상황이니;;) 이왕 같이 갇힌 거, 잡담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인상 깊은 사실은 시위 자체나 한국의 장애인 정책 역사보다 직접 보고 들은 그들의 “일상"이었다.

나는 정부에서 활동을 보조해주는 게 뭐 그렇게 대단한 건가. 그냥 생색내기 정도 아닐까, 했는데 그들에겐 이렇게 싸울만한 필수 불가결한 삶의 요소, 그 자체였다.


아침에 집에서 밥 먹고 씻는데 몇 시간, 지하철 타고 어디 가면 또 몇 시간, 개중 야간에 학교라도 다니는 청년들이 있으면 또 몇 시간인데, 한 달에 120시간을 받아도 하루에 쓸 수 있는 건 4시간이니 그 서비스를 쪼개고 또 쪼개서 아껴 써야 한다.


인간으로서 당연한 생활, 그러니까 응가하고 쉬하고 손 씻고, 어디 가서 가끔 밥 먹고, 어디 학교라도 다니는 기본적인 것만으로도 지원하는 시간이 부족하다. 


당시 나는 멍청해서(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으응?!) 그냥 그런 것들이 더 인상 깊었다.


5. 

장애인에 관한 예산 문제가 나오면 꼭 나오는 말이 있다. 제대로 하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든다는 말이다. 10년 전에도 그랬고 2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런 말이 나온다. 당장 우리 동네만 해도 선거철마다 지하철 역에 장애인과 노약자를 위해 엘리베이터를 단다는데 한 번도 지켜지는 걸 못 봤다. 역시, 예산 문제다.

당시 현장. 들어올 수도 없지만 나갈 수도 없...

10년도 전에, 그들과 함께 건물에 갇혔을 때, 생각했다. 아... 이런 데엔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야 하는 게 맞는 거구나. 왜냐하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 당연히 써야 할 곳에 돈을 쓰지 않았기에 계속 써야 할 돈이 늘어난 거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장애인 때문에 일반 시민이 불편을 겪고, 발이 묶이고, 세금을 쓰는 게 아니라, 비장애인이 장애인으로부터, 그 돈을, 그 자유를, 70년 넘게 뺏어 쓴 게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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