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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죽지않는돌고래 Jul 21. 2022

공성전 타입과 함무라비 타입의 인간

새벽의육아잡담록 

1.

어린이집 혹은 유치원에 보내기 시작하면 폭력사태(?)를 경험한다. 애가 친구에게 맞거나 때리거나 하는 일이다. 이 나이 때의 아이들이 그렇듯 장난감을 두고 벌어지는 작은 전쟁. 성향에 따라 잘 뺏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애도 있다. 


아무래도 성장이 빠른 쪽이 힘을 써서 잘 뺏을 것 같지만 이게 또 그렇지가 않다. 그건 뭐 나중의 이야기일 테고, 이 나이 대에는(2-5살) 천성이 많이 작용하는 탓에 뺏는 애는 계속 뺏고, 안 뺏는 애는 한사코 그러지 않는다. 


2.

다행인지 불행인지 하루(첫째)는 남의 장난감을 뺏지도 뺏기지도 않는, 이른바 무공격 속성에 공성전 타입이라 딱히 이런 걸로 속 썩 일 일은 없었다. 


그러니까 누가 뺏을라치면 하지 말라고 하는데 힘에서 밀리면 빠떼루 자세로 상대방이 지칠 때까지 버티거나 너무 강하면 우다다다다다, 멀찍이 가버려서 논다. 

빠떼루!

아직 위빙이나 스텝을 배운 적은 없어서 누가 때리면 가끔 맞는다. 허나 별 타격감은 없었던 모양인지 “ㅇㅇ이가 때렸어” 말하곤 다음날 가면 같이 잘 논다. 


어차피 부모들끼리 친해서 자잘한 상처 정도야 금방 낫겠지, 하고 사과를 받는 일은 있지만 사과를 하는 일이 없는 것도 다행이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이런 아이는 환영받는 법이라 다른 부모들이 잘 초대한다는 거다. 아무래도 같이 있으면 자기 애 물건을 뺏어서 소란스러워지는 쪽보다 안 그런 쪽이 편하니 말이다.  


덕분에 초대도 자주 받고 이래저래 얻어먹으니 이건 뭐 자식 팔아 덕을 보고 있는 셈인가. 


(하루가 1살 땐가 연세대 심리학과 대학원에서 연구에 협조하면 돈을 준다길래(하루가 최초로 번 돈), 데려간 적이 있는데 인내력 하나는 무지 좋다는 검사 결과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몇 년이 지나니 과연 심리학 연구자들이 광팔아서 가는 곳은 아닌 듯합니다.


인내력이 좋아서 뭘 할지는 모르겠지만....... 불의에 잘 참아서 승승장구하는 걸까요)


3. 

문제는 둘째인 하나다. 


내가 알기로 첫째인 하루와 마찬가지로 둘째인 하나도 내 아이인데(그러고 보니 아내에게 직접 물어본 적은 없지만), 이 녀석은 무조건 뺏는 타입이다. 거의 동아프리카 사막 메뚜기떼 수준이다. 


그러니까 하루, 하나에게 밥을 차려주면 하나는 일단 하루 거부터 먹으려고 한다. 똑같이 밥을 차려줘도 그렇고 똑같이 아이스크림을 사줘도 그렇다. 일단 남의 것부터 먹고 내 거, 라는 식이다. 지 장난감도 많은데, 꼭 하루가 가지고 노는 걸 기어이 만져보려고 전쟁을 선포한다. 


하루도 인내력의 대가이지만 내가 봐도 


‘이야. 저 정도면 때려도 합법 아닌가’ 


싶을 즈음에 손이 나간다. 하나는 2살 어린 데다 힘이 약한데도 반드시 복. 수. 한. 다. 


물론 좀 과하다 싶으면 울긴 하지만 체력으로나 힘으로나 분명 쨉이 안되는데 전생에 바빌로니아인이었는지 눈에는 눈! 귀에는 귀! 하고 아주 그냥 함무라비 타입으로 그 고사리 같은 손을 복수한답시고 하루를 팡팡치고 앉았다(타격감 제로). 



복수하는 하나와 참는 하루

이때 하루는 10대까지는 참고 있다가 그 뒤엔 한 방 나간다. 혼내긴 하지만 옆에서 보면 충분히 정상참작이 되고도 남을 수준이다. 


아니 니가 귀엽긴 한데 니 걸 먹으라고! 


4.

분명히 같은 DNA인데 조합이 좀 색다르다고 이렇게까지 천성이 갈리니 과연, 자식이란 신기하다. 


둘째는 키울 자신이 없어서(첫째 때 너무 힘들었던 데다 딱히 난 돈을 잘 벌 가능성이 전무한 직군이라), 생각도 못하다가 아내가 어떻게든 밀어붙이는 바람에(불도저 타입. 그래서 대통령 출마한다면 말릴 생각) 낳긴 했는데 이런 걸 보면 자꾸 궁금증이 생기긴 한다. 


물론 셋째, 넷째는 꿈도 꾸지 않지만 세상에 생각 없는 사람 중에는(나 포함) 어쩌면 호기심 천국 차원에서 무서운 시도를 하는 이들도 있지 않을까. 


체력도 돈도 남아있지 않다는 걸 뻔히 알지만, 하나 더 낳는 순간... 내 인생에서 커리어는 물론, 무언가 성장하는 일은 끝일 것 같지만... 그걸 넘어서는 인간의 무섭도록 순수한 학문적(?!) 호기심으로 말이다(또는 사탄의 속삭임이랄까). 


5.

세상에선 게임 내 가챠 확률 시스템 때문에 어쩌구 저쩌구 꼭 한 번씩 말이 나오는데 자식이야말로 최강의 가챠다.


이 가챠를 한 번 땡기려면 최소한 어른 두 명이 인생을 걸어야 하니 육아나 복지, 출생률 가지고 끊임없이 말이 많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확률도 엉망이지만 환경도 엉망이라고!  


...... 


아, 어쩌다 보니 불만으로 글이 마무리되었습니다만 부모가 되면 불만이 많이 생기는 법이니(특히 자식이 아들인 경우) 큰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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