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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죽지않는돌고래 Feb 11. 2023

문제 아동 따위에게 지지 않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새벽의육아잡담록 - 기저귀 못 떼는 아이 

1.

첫째인 하루가 태어난 지 3년 하고도 3개월이 지났을 때다. 하루는 어린이집에서 유일하게 기저귀를 못 떼던 아이로, 어린이집 선생님이 기저귀 떼는 연습을 해보자고 하자,


‘나는 아빠만큼 큰 후에 기저귀를 뗄 거야!’


라고 선언(조금 이상한 대목에서 목소리를 높여 당당할 때가 많다), 연습을 거부했다. 문제는 4년 11개월 차인 지금도, 밤에는 기저귀를 차고 있다. 


2.

딱히 소신이나 원칙이 없는 나지만, 그나마 없는 소신이나 원칙을 긁어모아 본다면 ‘홈런을 때리면 빨리 뛰지 않아도 된다’ 정도라 할 수 있다(이걸 소신이나 원칙이라고 할 수 있을까는 또 다른 문제지만, 사소한 건 넘어갑시다). 


즉, ‘큰 거 잘하면 자잘한 건 뭐어~’의 느낌인데 여기서 말하는 ‘큰 거’를 육아관으로 끌고 오면, ‘아이는 혼자 잔다’와 ‘아이는 제시간에 잔다’, 정도이다(다행히 이 부분은 아내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

 

사람마다 다양한 가치가 있기에 육아관도 다른 법이다. 내게 중요한 가치는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완벽한 개인 시간이 2시간은 보장되어야 한다’이므로, 그러려면, 아이랑 내내 붙어 있을 순 없다.   


해서, 첫째와 둘째 모두 태어난 지 50일경부터 각자, 홀로 잔다. 지금까지 변함없다. 독립적인 성격을 위한 육아법도 뭐도 아닌(애초에 혼자 재운다고 독립적일 리도 없습니다), 그냥 나와 아내의 개인시간을 위해서다. 애들이 혼자 자야 개인 시간을 보장받으니 말이다(물론 자식을 키우다 보면 귀여워 죽을 것 같은 때가 있는 법이라, 아내가 잠깐 흔들린 적이 있지만 적극 막았다. 한 번 같이 자면 언제까지고 같이 자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 게 뻔하다). 


그렇다고 ‘나는 아빠만큼 큰 후에 기저귀를 뗄 거야!’를 용인하는 건 아니다. 나만큼 클 때까지 기저귀를 찬다면, 서로 갈아줘야 될지도 모를 일이다. 요즘은 다양한 종류의 성인용 기저귀가 잘 나오니 크게 겁먹을 필요도 없다…!   


3.

‘이상한 대목에서 당당할 때가 많다’를 아빠 입장에서 좀 더 들어가면, 하루의 장점은 인간이 솔직 담백하다는 거고, 단점은 문제의식 결여다. 


하루는 이따금 약속을 어기고 떼를 쓴다. 지금은 예전보다 타협점을 빨리 찾는 편이나 1년 전만 해도 벼랑 끝 전술을 쓰기 일쑤였다. 예를 들어 책을 5권만 읽고 자기로 했는데 한 권 더 읽자고 떼쓸 때가 있다. 당연히 안 된다. 나는, 나의 책이 더 재밌다(특히 요즘은 유유출판사에서 나오는 책이 다 재밌다). 그러니 안 된다. 무엇보다 붙어 있을 때는 찐하게 붙어 있지만 떨어질 때는 앗싸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

 

해도 울먹거리며 한 권만, 한 권만, 하면 사람인지라 흔들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내일은 약속을 지킬 거냐고 물어본다. 안 지킬 거라고 답한다. 왜냐하면 지키기 싫기 때문이다. (…) 하지만 책은 한 권 더 읽고 싶기 때문에 지금은 읽어줘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나의 생각과 주장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아빠는 왜 별 것도 아닌 걸로 떼를 써서 나의 마음을 속상하게 하느냐는 식으로, 이럴 때만큼은 울먹거림이 낮아지며, 묘하게 내게 책임이 있다는 듯 당당하게 말한다.

    

...... 


적반하장이라구 때끼야! 


본인의 마음을 솔직 담백하게 표현하는 능력은 나쁘지 않지만 무언가 바보인가 싶을 정도로, 근본적인 문제의식이 결여되어 있다. 언제나처럼 가정교육 탓으로 돌리고 싶지만 가정의 반 정도를 맡은 입장이다 보니 처지가 곤란하다. 후우. 


4.

학창 시절이다. 어머니는 중학교 선생님으로,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학생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소양이나 인식 중, 몇몇 곳에 중대한 결함이 있는 학생이 있는 법인데, 대표적인 사람이 본인의 아들이라는 조언을 해준 적이 있다. 당시는 과연 그런가,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과연, 그렇다.  


나의 결함 같은 걸 기록으로 남겨 약점을 만들 정도로 바보가 아니므로 자세한 건 넘어가자. 다만 자식을 키우는 입장이다 보니 이젠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다.

 

이 녀석도 딱히 커다란 문제의식 없이, 학교를 가볍고 상쾌한 마음으로 안 나갈 수 있겠구나(그걸 독특한 방식으로, 내가 모르게)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하루가 오전에 학교를 안 가고 동네 목욕탕에서 뜨뜻한 물에 담그곤 으허, 으허, 거리다 점심 급식을 먹은 다음엔 친구들을 꼬셔서 자체 하교를 하고, 동네 산책이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주제에 그것이 왜 잘못되었는지 모를 수 있겠구나, 하고 말이다(불행히도 이때 함께 자체 하교하던 친구들과 아직도 만나고 있습니다. 교우관계가 좁은 것이 한입니다).

   

그러면 내가 속이 상할까, 안 상할까, 상상해 봤다. 나도 그랬으니 크게 문제 삼을 순 없으나 부모를 기만했다는 점에선 과연, 배신감이 들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도 아들이 딱히 나쁜 짓을 한 것도, 이성관계를 요란하게 한 것도, 오토바이를 탄 것도 아닌, 그냥 달목욕을 끊어서 목욕탕이나 가고 책이나 외상 해서 읽어 황당해했지만 배신감만큼은 확실히 느꼈을 듯하다. 딱히 크게 나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문제의식도 없으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대야 할지 알 수 없는 난감함이 이젠, 내게로 오고 있다. 흠.

 

으으으으으으으으으음.   


5.

싹수부터 문제아가 될 게 뻔한 아들 녀석을 보고 있자니 많은 생각이 든다. 얼핏 들으면 맞는 것 같아서 솔깃했다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니 말이 처음부터 끝까지 틀렸어! 한 글자도 안 맞아!’ 


라고 말하고 싶은 주장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앞으로 점점 더 이런 일이 많아질 터라 고민 중, 오랜만에 예전에 함께 방송을 하던 강헌샘, 지산샘과 잡담을 하다 나름의 현명한 해답을 쥐었다. 


글타. 문제 아동 따위에게 지는 건 어른이 아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문제 어른이 되어서 누가 이 바닥에서 최고인지 단단히 알려줘야 한다.   


니가 기저귀를 몇 년이나 더 차 봤자, 온갖 궤변을 늘어놔 봤자, 나중에 사춘기를 호되게 겪어봤자, 그리고 일으킬 수 있는 온갖 문제를 다 일으켜봤자, 아빠는 문제에 빠지지 않는다는 점을 알려주마. 아빠야말로 문제 그 자체니까.  


자식 걱정하는 부모가 아니라, 부모 걱정을 해야 하는 자식으로 만들어 주마. 


… … 


추신: 쓰고 보니 어라, 이상한 대목에서 당당한 건 날 닮은 건가,라는 생각도 들긴 합니다. 기분 탓~ 기분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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