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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죽지않는돌고래 Jan 15. 2024

육아는 알코올육아

새벽의육아잡담록 - 아빠는 술고래로 다시 태어났다  

1. 

간에서 알코올을 분해하지 못하는 건 물론, 미각적으로도 술의 기쁨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내 얘기다. 


2.

마실 수록 더 마시고 싶어 하는 사람의 심리나, 드라마에서 한잔 더,라고 외치는 대사는 머리론 알지만 실제론 이해 불가의 영역이다. 


맥주같이 강한 알콜성 음료를 벌컥벌컥 마시는 사람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 맥주 한 캔을 한방에 마셨다가 심신미약을 넘어 심신상실에 도달해 기억을 잃어버린다면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무서운 맥주...! 참고로 내가 맥주를 저렇게 따르다가 욕을 많이 먹었따...

정도가 심한 사람의 경우, 냄새만 맡아도 취한다고 하는데, 거짓말이 아니다. 나는 강한 발효 음식만 먹어도 반응이 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술고래가 되어 버렸다…! 


3.

퇴근 후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예쁜 병에 담긴 꼼부차가 보인다. 퇴근에 실패한 남편은 냉장고에 있는 건, 남은 반찬이든, 뭐든, 닥치는 대로 위에 넣고 보는 '유부의 법도'가 있다. 보지 못한 음식이나 음료가 있다면 1순위다. 


가족 모두 잠든, 그러니까 고요하고 거룩한 밤, 무언가 예쁜 병에 든 음료를, 웬 떡이냐, 하며 시원하게 들이켜곤 남은 야채찜을 벗 삼아 즐긴 후에 으허어어어 욕조에 담그고 나온다. 얼마간 시간이 지났을까. 몸이 노곤해지고 후끈해짐을 느낀다. 


어라, 넘 오래 담갔나. 그 정도는 아닌데? 


거울을 본다. 온몸이 벌게져 있다 


…?!?!


이 정도로 후끈해지려면 약 40도 온도를 유지하는 물에 1시간 이상 담가야 한다. 신체 감각에 둔한 나지만 목욕 매니아이기에 철저히 파악하고 있다. 헌데 오늘은 30분 컷이었는데…


최근엔 마약도 하지 않고(이전에도 하진 않았지만. 요즘엔 이런 농담하면 검찰이 잡아가려나), 야한 것도 보지 않았는데(?!?), 도대체 무슨 일인가…!! 


어라. 


자세히 보니 아까 마신 꼼부차 병에 작은 글씨로 무언가가 적혀 있다. 발효 음료라 아주 소량의 알코올이 생성될 수 있다고 한다. 


아. 


모르긴 몰라도 0.1%? 0.01%? 어쨌든… 


좋으다…!! 


… … 


아아아아아아주... 좋으다...!!


4.

딱 한 잔만 더 하자는, 드라마의 대사가, 머리가 아닌, 일평생 처음, 육체로 닿는 순간이다. 


마치 1시간 30분 정도 푸우우우욱 욕조에 담갔을 때처럼 노골노골하고 흐물흐물해지는데 맥주만큼 기분 나쁠 정도로 강한 농도는 아니다. 그야말로 알코올이 알코올을 부르는 기분이 마침내 와닿는, 그런 농도다. 


그렇게 발효 꼼부차를 들이켰다. 


마셔라!


부어라!


5. 

한 병을 다 비우고 나서야 세상의 많은 것들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과연, 이런 기분이라면 어떤 사람은 친해지기도 할 것이며 남녀 관계는 속도를 더할 것이고 둘째는 더 빨리 태어났을 게 분명하다(…!).


맥주를 마실 때는 심신이 빠른 속도로 무너지고 정신을 바짝 차리기 위해 긴장을 해야 해 도대체 이 상태로 뭘 즐겁게 얘기를 해… 싶었던 게 지금까지의 선입견인데… 


그 선입견이 지금, 여기서, 붕. 괴. 된. 다. 


6.

적정한 양의 알코올이 들어오니 우리의 기쁨과 고통, 자신만만했던 수천 개의 종교와 이데올로기, 그리고 경제 체제, 수렵과 채집을 했던 모든 이들, 모든 영웅과 비겁한 자들, 모든 문명의 창조와 파괴자들, 모든 왕과 소작농들, 사랑에 빠진 모든 젊은 연인들, 모든 부모와, 희망찬 아이, 발명가와 탐험가, 모든 스승과 부패한 정치인들, 모든 슈퍼스타와 위대한 리더들, 모든 성자와 죄인들이 이해된다. 아, 지구는 나라는 광활한 극장의 아주 작은 무대에 불과했다.  


두 병이 들어가니 바둑으로 알파고를 조지고 원펀치로 은가누를 날리며 드리블로 메시를 제낄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든다. 모르긴 몰라도 세 병이면 파동권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아아, 농도가 전부다. 


세상 모든 이들이 자신의 농도를 찾길 바라며, 


부우hjdkekb!£~¥|라! 


마ㅏ마snskwl쉬어라!


… … 


두 병 마시고 쓰는 중이라 혀가 꼬여 죄송합니다. 하지만 맨 정신입니다. 


추신 : 참고로 나는 맥주 1/3캔, 아내는 맥주 1캔 정도가 주량이다. 아내는 이 발효꼼부차를 마시고 알코올 성분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추신 2 : 딱히 광고가 아닌 관계로(누가 주지도 않지만), 제품명은 비공개입니다. 이게 왜 새벽의 육아잡담록이냐면 요즘 주말마다 아내가 일을 나가는데 이 힘을 빌어 주말 육아를 더없이 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육아는 알코올육아...!


최근 너무 많이 마신 것 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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