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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죽지않는돌고래 Jul 05. 2024

아빠는 기회를 한 번밖에 안 주잖아

새벽의육아잡담록


1.

하루(첫째, 2018)의 최애 음식 중 하나인 소룡포를 먹기 위해 차를 타고 가는 중이었다. 하나(둘째, 2020)가 애착담요인 ‘치토(본인이 치토라고 이름 붙였습니다)‘를 가지고 오지 않아 차 안에서 찡찡댔다.


여담이지만 유아기의 아이는 애착 인형파와 애착 담요파로 나뉘는데, 첫째는 인형파, 둘째는 담요파다. 만화 스누피(원제는 피너츠지만 누가 그 이름으로 기억하냐고!)에서 찰리 브라운의 찐친인 라이너스 반 펠트가 맨날 담요를 질질 끌고 다닌다. 그게 딱 하나의 모습이다.


(이 예시가 이해가지 않는다면 근현대사를 모르는 풋내기이므로 이 글을 읽을 자격이 없습니다. 서태웅과 강백호 이전에 마에노와 이자와가 있었고 그 이전에 찰리와 라이너스가 있었습니다...!)


여튼 그 담요를 본인이 안 챙긴 주제에 ‘치토!’, ‘치토!’ 하면서 찡찡댄다.


2.

주위에선 자상한 아빠로 착각되어지고 있지만 출신 성분이 낙동강 벨트인 내가 그럴 리 없다(낙동강 사내의 미래를 보고 싶거든 고개를 들어 사직 야구장을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들은 혼낼 때 이런저런 사정을 봐주지 않습니다).


아내에게 버릇없이 구는 행위, 본인 물건을 정리하지 않는 행위, 떼를 써서 원하는 걸 얻으려는 행위는 특히 타협이 없다.


이때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협상 테이블에 김두한이 카운터 파트너로 앉아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4딸라!’를 외치면, ‘8딸라! ’로 받아치며 마무리 지을 정도다.


… …


(이상한데…?! 문과라서 수학은 좀 약한 편입니다)


3.

육아의 목적 중 하나는 독립된 인간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제대로 독립하기 위해선 아이러니하게도 타인과 함께 사는 법을 알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하루, 하나에게 최초의 타인은 나다(부모운, 중요합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양가 조부모님과 부모님은 물론, 친척들에게조차 온갖 존중과 사랑, 혜택을 받은 것도 모자라 친구들의 인내에 더하여 직장에선 수많은 동료들에게 무차별적인 관용을 받아왔다.


이렇게 크면 사람, 못 쓴다(으응...?!). 제멋대로의 인간이 되어(..?!?) 제멋대로인 직장(…?!?)을 다니는 인간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게다.


내 자식만큼은 그리 키울 수 없다…!


(?!?!)


4.

이러한 연유로 위풍당당하게…! 둘째를 혼냈다. 조질 때는 아주 구냥 제대로 조져야 자기 물건을 스스로 챙기는 법이다.


(오은영 선생님이 격노할 일일 수도 있지만 아들 키우는 부모는 무조건 저의 편이라 생각합니다. 인간을 키우는 자는 아들 키우는 자를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그때다.


하나가 나에게 세차게 혼난 직후다. 뒷좌석, 하나 옆자리에 있던 하루가 말을 꺼낸다.


‘하나야. 형이 치토 대신 이 장난감 갖고 놀게 해 줄까.’


‘훌쩍훌쩍… 응’


하나는 울음을 멈추고 평정심을 찾았다.


5.

주차를 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곳이므로 근처에 도착, 가게에 가 먼저 줄을 서기 위해 하루와 함께 내렸다(하나는 아빠 미워져서 같이 안 내림…!). 걸어가며 하루에게 말했다.


‘아빠는 혼을 냈지만 하루는 설득을 하는구나.’


내 손을 잡고 있던 하루는 룰루랄라 걸어가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아빠는 기회를 한 번밖에 안 주잖아 ‘


지구의 공전과 자전을 느끼진 못하지만 당연한 것처럼, 당연한 사실을, 당연히 말하는 어투였다.


6.

하루와 하나는 이 날, 즐겁게 소룡포를 먹고 온종일 내게 붙어 있었다.


‘아빠는 기회를 한 번밖에 안 주잖아’


하루의 이 말도 온종일 내게 붙어 있었다.


뒷좌석의 하루(왼쪽)와 하나(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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