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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Oct 02. 2020

까리오까(carioca) 와의 삼바

브라질 여행 에세이 - 리우데자네이루 (下)

리우의 밤은 낮보다 더 빛난다. 거리 곳곳에 모여 시원한 여름 밤을 더 시원하게 보내기 위해 맥주를

들이키는 사람들, 그 사이사이를 메우는 삼바와 보사노바 음악.


이 빛나는 도시의 야경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빵지아수까르 (Pao de Acucar) 에 가야한다. 어느

관광지에서는 꼭 어디를 가야한다는 말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리우의 빵산만은 해당 된다. 직역하면

설탕 빵이란 뜻이지만 소위 빵 산이라고 부르는 이 곳은 케이블카로 유명하다. 바닷가에 위치한 두 개의 봉우리를 케이블카가 잇고 있어, 총 2번의 케이블 카를 타게 된다. 해지기 직전에 올라가서 낮과 석양, 그리고 야경까지 보고 나면 완벽하게 클리어! 멀리 조그맣게 예수상도 볼 수 있고 바로 밑의 바다 프라이아 다 베르멜랴(praia da vermelha)에 정박해 있는 작은 보트들도 한층 분위기를 더한다. 국제학생증을 내고 반값에 티켓팅을 한 후, 올라가는 길에 맥주 한 캔 사서 야경을 감상하는 것은 정말 최고다. 예수상에 비해 관광객이 훨씬 적어 조용하게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빵산에서 내려다본 리우의 야경


모처럼 혼자 맥주를 들고 야경을 감상하고 있었는데 직원으로 보이는 어떤 브라질 남자가 다가온다. 

"안녕 혼자 왔어?" (물론 이 말도 영어가 아닌 본인의 모국어이다.)

리우 지역의 사투리가 가득 묻어나오는 말투로 나에게 말을 건넨다. 

윽. 시작됐다.


브라질 사람들은 남자건 여자건, 동양인 여자애가 혼자 있는 꼴을 못 본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방해받고 싶지 않아 “sim(응)”이라고 무심함을 섞어 짧게 대답하고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인다. 딱봐도 외국인인 내가 포르투갈어로 대답하자 그는 좀더 편하게 이런저런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예쁜(?) 여자애가 왜 혼자 있냐부터 시작해서 자기는 여기 케이블카 직원인데 너는 혼자 여행 왔냐, 남자친구 있냐 등등 브라질 남자들의 적극적이고 뻔한 레퍼토리를 늘어놓는다. 

아... 난 왜 그의 말을 알아들었을까. 왜 대답해버렸을까... 나 자신을 잠시 탓한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포르투갈어를 못 알아듣는 척하며 돌려보내곤 했는데 이미 대답한 이상 발뺌할 수가 없었다. 페이스북 친구하자길래 '나는 그런 거 안 써'하고 몇 번 눈치를 줬다. 하지만 눈치가 없는 건지 없는 척하는 건지 이번에는 왓츠앱(카카오톡과 비슷한 어플) 번호를 교환하자길래 '미안 나 이제 내려가봐야할 것 같아 너무 늦었네.' 하고 헐레벌떡 내려왔다. 으 덕분에 마지막으로 혼자 야경을 감상할 기회를 뺏긴 것 같아서 아쉬웠다.


이렇듯 브라질은 처음 보는 이성에 대한 관심 표현이 무척이나 대담하고 적극적이다. 별로 우물쭈물

망설이지도 않고 자신만만하게 돌직구를 날린다. 그렇지만 거절당하더라도 쿨하게 ok하고 다른 데로

가니 걱정 말고 거절하고 싶으면 분명한 의사표시를 해도 된다. 아니, 그렇게 해야한다. 우리나라에서처럼 예의지킨다고 웃으며 받아주다가는 자신에게 관심 있다고 오해하며 그 자리에 붙잡혀서 몇 시간동안 재미없는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한국에 와서도 그의 페이스북 메세지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그러니 브라질에서만큼은 의사표현을 확실하게!



빵산에서 내려온 후 기나긴 리우의 밤을 라빠(Lapa)에서 보내기로 한다. 이 곳은 서울의 홍대랄까, 수많은 클럽이 있고 차도와 인도 구분없이 다들 길거리에 서서 술을 마신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한 곳이기 때문에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오늘 가기로 정한 라이브 클럽은 오래되고 유명한 까리오까 다 제마 (carioca da gema)라는 곳이었다. 까리오까는 리우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까리오까 다 제마는 '찐 토박이 리우사람' 정도로 해석하면 되겠다. 이름과는 살짝 다르게 반은 외국인 관광객 / 반은 까리오까로 채워진 바에 앉아 좋아하는 까이삐로스카 지 마라쿠자 (caipiroska de maracuja – 브라질 전통 술인 까샤사 대신 보드카와 마라쿠자 원액을 넣은 칵테일)를 주문한다. 최애 칵테일을 홀짝이며 기다리고 있으니 금세 연주자들이 무대에 오른다. 무대 앞에는 낮은 스테이지와 양쪽으로 테이블 몇 개가 있고 중앙에는 서 있는 사람들로 가득 찬다. 


까리오까 다 제마의 삼바 연주자들



연주가 진행되고 30분 뒤,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사람, 테이블에 앉아 술을 먹던 사람들이 어깨와 하체를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곧 모두가 중앙에 모여 한손에 술잔을 들고 현란하게 스텝을 밟는다. 어떤 이는 손에 들고있던 맥주병이 방해가 된다는 듯 원샷으로 가볍게 비워낸 후 자유롭게 삼바를 춘다. 바로 옆에서 그런 그들을 구경하며 뻘쭘하게 앉아 있으려니 나도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소심하게 몸을 흔들며 라이브 연주에 맞춰 춤을 춘다.


브라질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삼바다. 브라질에서 여러 파티나 모임에 갈 때마다 브라질 친구들에게 삼바 스텝을 배웠지만 아직도 익히지 못하였다. 친구들은 “봐, 쉽지?”하며 발재간을 부리지만 저기.. 나는 한국인이라구 라고 말하고 싶을 때가 많다. 그들에게 삼바는 그냥 태어날 때부터 장착된 재능 같아보였다. 그런 '삼바 천재'들은 나와 같은 '삼바 열등생'의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여 가르치기 쉽지 않다. 내 발이 왜 내맘대로 움직이지 않는지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니까! 그래서 난 삼바를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삼바 노래에 맞춰 내 마음가는대로의 춤을 추기로 했다.  

삼바 못 추면 뭐 어때? 그냥 신나게 즐기면 되지!



이국적인 리듬에 놀란 내 팔다리와 허리는 제각기 날뛰느라 주체가 안 됐다. 내 흥에 겨워 라이브 연주에 맞춰 온몸을 꿈틀대다보니 언뜻 내 주위에서 춤추는 사람들의 나이대가 정말 다양하다는 것을 느꼈다. 나처럼 젊은 외국인부터 60대는 되어보이는 할아버지까지..! 정말 남녀노소할 것 없이 다들 춤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던 중 현란한 발놀림으로 유독 눈에 띄던 베레모의 중년 남자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같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가 '내 리듬'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는 것이다. 삼바가 아닌 자유롭고 엉망인 나의 춤에! 역시 잘하는 자보다는 즐기는 자가 이기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춤을 따라하며 추다보니 어느 정도 겉보기에는 삼바를 추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내 착각이겠지만. 춤은 자신감이 반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이미 이 곳의 분위기에 흠뻑 심취해 열심히 엉덩이를 흔들어댔다. 그들은 지치지 않았고, 내가 사랑하는 이 나라에 한 층 더 가까워졌음을 온 몸으로 느꼈다. 

인생에 가장 지루한 때가 온다면 곧바로 떠올릴 것이다.


브라질에서 가장 화려하고 뜨거운 도시 리우에서 까리오까들과 삼바를 추던 이 순간을!



함께 삼바를 추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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