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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맛나러갑니다 May 29. 2021

고백합니다. 나는 함흥냉면 파입니다.

함흥냉면 좋아하는 게 어때서!

평양냉면보다 함흥냉면을 더 좋아한다고 하면 어린이 입맛 취급을 받는다.


극복해야 하는 맛이라고 여겨지는 평양냉면은 어른의 음식이자 미식가가 사랑하는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반면, 함흥냉면은 고깃집에서 후식으로 먹는 인스턴트 음식으로 포지셔닝되어 이걸 좋아한다고 하면 ‘초딩입맛’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슬프다. 원래 둘의 시작은 비슷하다. 옛날 먹을 게 없던 겨울, 평양냉면은 평양지방의 메밀을, 함흥은 메밀이 나지 않아 감자를 이용해 면을 뽑고 육수는 고기육수와 동치미를 섞어 만들어 먹던 음식이라고 한다. 육수 섞는 비율은 함흥이 동치미 비율이 더 많은 것 같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함흥냉면은 면이 얇아 매콤한 양념이 올라간 비빔이 잘 어울리다 보니 그게 메인이 되고 여기서부터 파생된 자극적인 양념이 듬뿍 올라간 칡냉면이 유행하면서 함흥냉면은 분식점에서도 심지어 마트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메뉴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함흥냉면은 조미료 많이 들어간 소위 ‘초딩입맛’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자리를 잡은 것 같다.


반면, 평양냉면은 그동안 아직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몇 곳 외에는 그렇게 쉽게 접할 수 있는 메뉴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본연의 맛이 잘 유지된 것 같고 함흥냉면보다 덜 대중적이면서 뭔가 매우 성숙한 입맛을 가진 어른이 먹는 음식으로 포지셔닝이 된 것 같다. 최근에는 20대들 사이에서 유행하면서 평양냉면은 힙한 사람의 음식이 되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뉴트로 열풍의 하나인 건가... 불닭볶음면을 먹는 세대가 평양냉면에 열광한다니 이게 무슨 모순인가.




나는 평양냉면도 먹는다.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걸 먹고 체했던 기억과 어릴 적부터 우리 집은 집에서도 함흥냉면을 만들어 먹어 나에겐 함흥냉면이 더 익숙하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엄마는 냉면이 너무 먹고 싶어 눈 오는 날 무거운 몸을 이끌고 냉면집을 갔었다고 한다. 물론 함흥냉면이었다.


함흥냉면은 고기육수보다 동치미가 더 많이 들어간다. (가게에 따라 비율이 다를 수도 있지만 난 평양냉면의 고기 향만 가득하면서 밍밍한 그 국물이 싫다) 식초와 겨자의 도움이 없어도 충분히 새콤하고 시원하다. 소화는 또 얼마나 잘되는가. 고구마 전분으로 뽑아낸 실 같이 얇은 면은 가게마다 두께의 차이는 있지만 평양냉면보다 얇아 쫄깃쫄깃하고 비빔으로 먹어도 양념이 잘 베어 참 맛있다. 나의 외국인 친구들은 항상 물어봤다. “죠앤, 이거 고무야? 씹어서 삼키는 거 맞지?”




내가 서울에서 가장 좋아한 냉면집은 ‘산봉면옥’이었다. 과거형인 이유는 오늘 오랜만에 갔더니 건물이 없어졌더라... 대치동 그랜드백화점 (현 롯데백화점 강남점)에서 시작한 ‘산봉냉면’은 다른 냉면집보다 면이 더 투명하고 얇고 국물은 동치미 비율이 높아 정말 깔끔하고 시원했다. 내가 유일하게 물냉으로 주문해서 먹던 곳이었다. 2000년대 초에 지점을 꽤 늘리다 얼마 전까지는 이름을 ‘산봉면옥’으로 바꾸고 신사동에 가게 하나만 남겨놨었는데 그마저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평양냉면의 인기에 밀려 몇 개 안 남은 잘하는 함흥냉면집이 또 사라지다니 이러다 다 없어지는 거 아니겠지?


아쉬운 마음에 근처 ‘강남면옥’ 을 찾았다. ‘강남면옥’은 지점이 많아서 종종 찾는 곳이다. 이 집은 갈비찜과 회냉면을 먹으러 가는 곳이지만 오늘은 물냉면이 먹고 싶어 물냉면을 시켰다. ‘산봉면옥’과는 다른 맛이지만 진한 국물은 감칠맛 가득하고 맛있다. 삼십 년 넘게 롱런하고 있는 집이다. 허투루 만든 맛은 아니다.




함흥냉면 맛집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강남면옥’은 지점을 늘려가도 지금과 같은 맛 계속 유지되었으면 좋겠고 명동에 위치한 ‘명동함흥면옥’ 이나 논현동 ‘신사면옥’ 같은 꽤 오래된 집들도 롱런하기를 희망한다.


제대로 된 함흥냉면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공은 평양냉면의 그것과 동일하다. 인스턴트로도 만날 수 있다고 싸구려 음식 취급하지 말아 달라. 또 함흥냉면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맛을 끌어내리지 말아 달라. 우리 어린이 입맛 아니에요. 취향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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