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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월차선 Apr 24. 2024

흰 운동화의 최후

하루살이

거실에 앉아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었다.

분명 뉴스를 보려고 했는데 정신 차려보니 쇼핑 카테고리에 들어가 있었다.

때마침 신발이 필요하긴 했다.

과학의 발전은 이런 내 마음을 이미 알고 있다.

어느 순간 나를 쇼핑으로 이끌었다.

눈앞에는 수많은 신발들이 펼쳐진다.

세상, 참 좋아졌다.


그러던 중 한 신발이 눈에 띈다.

색상은 흰색이며 중간에 까만 줄이 세 개 있다.

신발끈도 흰색이라 그야말로 흰 운동화다.

'흰색은 때가 잘 타는데 감당이 되려나?'

하얀색은 무난하면서도 어디에서나 잘 어울린다.

그렇지만 조금만 지저분해지면 티가 많이 난다.

신발을 신다가 얼룩이라도 생기면 마음이 아플 듯하다.

그런 생각들로 인해 구매를 잠시 머뭇거리게 된다.

하지만 다시 보아도 흰색만큼 이쁜 컬러가 없다.

몇 번의 고민 끝에 결국 질렀다.

결국 고민한 시간만큼 배송만 늦어지게 되었다.

드디어 신발이 도착했다.

파란색 신발 상자를 열어 보았다.

상자 안에 들어있는 흰 운동화는 너무 이쁘다.

색상이 하얗다 못해 푸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신고 다니면 튈 것 같은 부담도 생긴다.

우선 나는 이 녀석을 출근할 때 신어 보기로 한다.


다음날 아침, 출근시간이 되었다.

전날밤에 꺼내둔 신발이 '신어줘'라고 외치는 듯하다.

생각해 보니 신발끈 조절을 안 했다.

당연히 출근 전에 신발 끈을 조절할 여유 따윈 없다.

'발에 안 맞는데 그대로 신으면 구겨지지 않을까'라는 망설임도 생겼다.


하지만 '에이 한번 신어보자'하며 발을 욱여넣어본다.

마치 처음부터 내 것인 것 마냥 부드럽게 들어간다.

그리고 내 발을 덥석 안아준다.

'착 감긴다'라는 게 이런 느낌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집 밖을 나간다.


걷다가 신발을 한번 내려다본다.

흰색이 밝아서 눈에 크게 띈다.

주변 시선이 조금 부담되지만 기분은 좋다.

혹여나 신발에 얼룩이 묻을까 하는 마음에 평소보다 발을 높게 들어 걸어본다.


사무실에 도착하고 슬리퍼로 갈아 신는다.

신발은 가지런히 벗어서 책상 밑에 둔다.

열심히 일을 한다.


시간이 흘러 퇴근시간이다.

흰 운동화를 조심히 꺼내본다.

다행히 얼룩하나 없는 깨끗한 상태다.

슬리퍼 신는 동안 더러워졌을 양말이 신경 쓰인다.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거침없이 신발 속에 발을 욱여넣어본다.

그리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회사건물을 나선다.



아뿔싸 갑자기 이 무슨?!

밖에 비가 내리고 있다.

많이 내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은 양도 아니다.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바람이다.

우산을 아무리 잘 써도 신발은 젖을 수밖에 없.


새 신발을 신은 첫날부터 눈앞이 캄캄하다.

기껏 새 신발 신으면서 날씨조차 안 본 건지

나 자신이 한심하고 화가 난다.

이것이 진정 새 신발 징크스인 건가

어떻게 젖은 신발을 살릴 방법이 있을지 잠시 고민해 본다.

집으로 오는 동안 주위의 모든 비가 내 신발로 내려오는 기분이다.

새 신발이었는데 하루 만에 생을 마감한 것 같다.

내 잘못이라 누굴 탓할 수도 없이 속상하다.


신발아 미안하다

주인을 잘 못 만나 네가 고생하는구나

주인을 잘 못 만나 네가 고생하는구나

다음 생에는 나보다 더 좋은 주인을 만나렴

다시 한번 미안하다

이제라도 날씨를 반드시 확인하고 널 신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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