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반짝임을 알게 된 건 20대에 다니던 교회에서 여름선교를 갔던 해였다. 한 여름 제주도에서 만난 아이들이 서울에서 언니 오빠들이 왔다고 좋아하며 신나했던 기억들이 난다. 아이들과 함께 찬양과 율동을 하고 맛있는 것도 만들어 내어주고 게임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어떤 아이는 내 얼굴을 그려주기도 했고 서울 가면 꼭 연락하라고 손을 흔들었다. 번호를 알려주었더니 서울로 가는 날 버스에서 전화가 왔었다. 잘 가고 있냐며 언제 또 오게 되는지 물어보았다. 아이들이 주는 기쁨은 어른과 관계를 맺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사랑을 전해주려 갔는데 아이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 환대해 주었다. 그 때 받았던 사랑을 잊지 못하고 마음 어딘가에 꾹꾹 담아 둔 채 살았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교회에서 알고 지내던 동생의 권유로 주일에 교회에서 유아부 보조교사를 하게 되었다. 담임선생님이 계시니 나는 옆에서 공과 공부할 때 혼자 하기 힘든 것들을 챙겨드리고 아이들이 오고 갈 때, 부모님과 인사할 때, 아이들이 안전하게 있을 수 있도록 케어 하는 정도였다. 사역의 자리는 항상 부족했기 때문에 기존에 계신 선생님들은 더 많은 선생님들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그 곳에서 처음 대면한 아이들은 귀엽고 어여뻤다.
낯선 선생님을 봐서 그런지 쑥스러워하면서도 관심을 보였다. 반 아이들이 클 때까지 계속 볼 수 있는 건 아니었고 2년이 지나면 유치부로 올라가 또 다른 유아부 아이들을 만나는 과정이 있었다. 그 안에도 만남과 헤어짐이 존재했다. 5년간의 주일학교 선생님으로 보낸 시간은 나에게 햇살 같은 시간이었다.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더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책임감이 들었다. 아이들은 마냥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였지만 어떤 상황에 주어졌을 때 하는 행동은 각기 달랐다. 엄마, 아빠와 떨어져 있어도 잘 적응하는 아이,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엄마를 찾으며 올 때까지 울음을 그치지 않는 아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다가 시간이 지나고 나중에 힘들어 하는 아이. 아이가 적응하기까지의 과정을 아이, 부모님, 선생님들 모두 함께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또래 아이들에 비해 언어능력이 높은 아이, 민감한 아이, 순한 아이 등 아이들은 각기 다른 특징이 있었다. 함께 했던 같은 반 선생님은 심리 상담을 하시는 분이라 아이들에 대해 더 세심히 눈여겨보시고 상호작용을 하셨다.
‘오은영’ 박사님이 마법을 부리는 것처럼 아이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말을 잘 듣지 않은 아이는 어느새 대답도 잘하고 칭찬을 받는 아이가 되었고 아이들은 더 많이 웃고 적극적으로 변했다. 나도 더 좋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아이들이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어른.
갑작스레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우리에게 찾아왔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 세계인이 공포감에 휩싸였다. 일상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때 내가 택한 건 보육교사 공부였다. 이 시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 더 좋은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어른으로. 그렇게 시작하게 되었다. 아이들을 이해하고 알게 되는 것뿐 아니라 보육교사 공부는 나의 어린 시절을 마주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를 이해하고 부모님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과정을 담은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