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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러 Mar 11. 2019

혁오 EP [24] 리뷰

청춘의 사랑과 행복 찬가


혁오 EP [24 : How to find true love and happiness]

2018


★★★★


 그동안 혁오는 대체로, 현재를 살아가는 20대 초반의 나이를 가진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느끼는 방황과 허무의 정서가 담긴 곡들을 대중 앞에 내보였다. 비틀비틀 걸으며 의미 없는 하루를 흘려보내는 '위잉위잉', 만남과 이별이 심드렁해져 가는 '와리가리', 행복하지만 그래서 불안한 'TOMBOY'… 많은 대중은 그러한 정서를 노래하는 혁오에게 열광했다. 그 과정에서 거대 기업의 프로모션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기획 밴드가 아니냐는 논란이 생길 정도로 혁오는 자연스럽게 대세 밴드가 되었고, 밴드 씬에서의 폭발적 인기 하나만으로 각종 대중매체에 모습을 드러내며 더 많은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그러한 인기 속에서 등장한 1집 [23]은 혁오가 그러한 하이프를 받을만한 밴드라는 것을 제대로 입증한 앨범이었다.


 시간이 흘렀다. 혁오의 멤버들은 20대 중반이 되었고, 대중매체 과다노출로 인한 하이프가 걷히고 나니 밴드는 어느덧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혁오는 수많은 경험을 했고, 그 경험 속에서 성장하며 이전의 방황에 대한 어느 정도의 해결책을 얻어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새로운 고민 또한 생겼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현재의 혁오는 이전의 혁오와 같지 않다. 이제 더 이상 혁오는 '위잉위잉'과 같은 곡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혁오는 그런 의미에서 영리한 밴드다. 자신들이 나갈 길이 무엇인지 정확히 찾아냈다는 점이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이걸 못해서 단명하는 밴드가 은근히 많지 않은가.


 How to find true love and happiness.

 진정한 사랑과 행복을 찾는 방법.


 처음으로 앨범에 부제가 달렸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제목에서부터 보여준다는 것은 청자로서는 참 친절하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이 앨범은 전체적으로 '진정한 사랑과 행복은 어떻게 하면 찾을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던진다는 생각으로 들으면 된다. 이러한 주제의 선택과 집중은 안정기에 접어든 밴드가 보여줄 수 있는 화법의 성숙함이기도 하다. 그동안 혁오가 20대 초반의 방황, 허무, 고독 따위를 전체적으로 노래했다면, [24 : How to find true love and happiness]의 혁오는 이때보다는 조금 여유 있는 모습으로 20대의 낭만을 노래한다. 방황의 정서는 소멸하지 않았지만, 혁오는 그 정서를 이전보다 조금 더 능숙하게 다루게 된 셈이다. 변화가 확실하게 눈에 보인다.


 앨범은 'Graduation'으로 시작한다. 'Graduation'은 인생에 자유가 주어지던 첫날에 대한 회고의 정서다. 담벼락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며,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해방감과 동시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불안감의 교차. 이러한 자유와 불안의 교차는 어쩌면 한 개인이 인생의 분기점에 멈춰 섰을 때 보편적으로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느긋한 벌스와 빠른 싸비의 반복 배치라는 구성은 이러한 감정을 극대화한다. 곡이 끝나면 아기공룡 둘리에서 샘플링한 대화가 잠시 등장한다. 타임 코스모스를 타고 미래에 왔지만, 어떻게 온 지 몰라 당황한 듯한 대화이다. 방황은 여전하지만, 어쨌든 과거는 과거인 것으로 끝난 셈이다.


 이후의 트랙들은 청자에게 혁오가 이전의 모습에 대한 졸업을 선언하였음을 확실하게 각인시켜주는데, 타이틀인 'LOVE YA!'가 그 점을 제대로 보여준다. 이렇게 로맨틱한 모습으로 사랑을 노래하는 낭만파 혁오라니. 고독과 허무를 심드렁하게 노래하던 이전의 혁오를 생각해보면 커다란 변화다. '수천 단어의 말보단 단지 널 사랑한다고 말할게' 라고 외치는 싸비는 마치 젊은 우리들의 송가와 같은 인상을 주는데, 이는 혁오가 'TOMBOY', 'Die Alone'과 같은 곡에서 보여왔던, 많은 사람이 함께 부르기 좋은 곡을 만드는 것에 대한 열망과 같은 것이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물론 딱히 그러한 의도가 없었을진 몰라도, 'LOVE YA!'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젊은 우리가 행복한 마음으로 따라부르기 가장 좋은 사랑 찬가이다.


 마지막 트랙 'Goodbye Seoul'까지 듣고 나면 이 앨범이 가진 긍정적 에너지에 감탄하게 된다. 그러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이유는 단순히 가사에 담긴 정서뿐만 아니라 사운드 면에서 진보한 모습을 보여서다. 혁오의 기존 EP [20]이나 [21]의 그 나른함, 혹은 Kings of Convenience를 연상케 하는 'Panda Bear'를 생각해보면 [24 : How to find true love and happiness]는 앨범아트처럼 다채롭고 활기 넘친다. 모두가 행복한 축제 같은 사운드를 선보이는 'LOVE YA!', 에너지가 끓어오르다 못해 넘쳐흐르는 'Citizen Kane', 아련하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서울에 대한 애착을 표현한 'Goodbye Seoul'… 모든 트랙이 곡이 표현하고자 하는 정서에 맞는 멋진 사운드 구성으로 청자를 사로잡는다.


 [24 : How to find love and happiness]는 무겁지 않아서 성공적인 앨범이다. 만약 혁오가 이번 EP도 고독과 허무를 그저 나른하게 읊조리며 기존의 성공 방식을 반복하려 했다면 분명히 실패했을 것이다. 그러한 반복은 새로움이 없어 지루하고 실망스러울뿐더러, 현재의 혁오와의 괴리감도 크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내면 변화에 대한 솔직함을 음악적 변화로 녹여 새로운 음악을 들려준 점은, 대중이 혁오에게 요구하는 '보편적 음악'에 대해 예리하게 간파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어찌 되었든, 모든 트랙이 새롭고 좋은 앨범을 싫어할 이유가 없다. 멋진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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